23. 소는 다 떠났는데, 외양간만 짓고 있기.
그런데, 이거 누가 해요?
어딜 가나 좁지 않은 바닥이 어디 있겠냐만은, 소아응급 분야는 정말 전직 대통령이 청문회 나와서 한 말처럼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이다. 한 다리 건너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그나마도 거의 서울 경기에 모여 있고, 그 외에는 거의 지역에 병원 하나 수준으로 지역사회를 오롯이 떠받들고 있는 수준이다. 학회 가면 그 얼굴들이 그 얼굴들인걸 뭐. 신규 유입도 없고, 소아세부전문의 제도를 신설하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많지만 실제로 소아응급 분야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은 많지 않다. 정말 한 줌 아니 한 톨단이다. 그나마도 (한 때의 나를 포함) 이 바닥을 떠나려는 사람들만 많고, 새로 하려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없는 빈 외양간이 되어가는데 나라에서는 자꾸 외양간만 짓는단다. 소아응급 볼 사람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라는 둥, 소아응급센터를 늘리라는 둥, 24시간 상담소를 만들어서 운영하라는 둥, 대안들은 내놓는데 쓴웃음만 나온다. 이제는 외양간을 지어도 안 들어오니 소들을 대거 만들어 주겠단다.
일단 소아응급이라는 분과가 따로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아는 사람. 얼마나 있나요. 소아과 전문의와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아는 분. 얼마나 있을까요. 아니 소아과면 소아과고, 응급의학과면 응급의학과지 그게 뭔데 싶지 않나요들. 소아응급 전문의라고 스스로 소개해도, 대개 나를 소아과 의사라고만 기억하시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인데도. 마치 우리 강아지(정알리, 5세) 품종을 베들링턴 테리어라고 소개해도 대부분 아 그 배드민턴 회색강아지라고 기억하시는 것과 비슷하다. 뭐 그럴 수 있지.
내 직업에 대해서 소개할 때 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고, 소아응급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소아응급 세부전문의 제도는 2022년 9월에 생겼고, 작년에 세부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그전부터 소아응급 수련을 하는 곳은 서울의 빅 3 병원 정도에는 있었는데, 1년에 많아봤자 5명이나 나올까 말까 하는 아주 좁은 바닥이다. 서울대와 아산병원이 가장 많은데, 보통 1년에 한두 명 들어갈까. 내가 수련받던 시기에 3명이 한 번에 서울대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는데, 그때가 소아응급의 르네상스라고들 그랬다. 군의관 갔던 친구들 중에서도 소아응급 관심 있어하는 친구들 제법 많다고, 전임의 과정에 관해서 물어보던 친구들도 많았고 세부전문의 교육도 꽤 인기 있었다. 그때가 딱,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흥했던 시기였다.
소아응급의 길을 2019년부터 걸어 이제 어느 정도 연차가 있는데도 내 밑으로 후배가 두어 명 되나. 이 친구들 밑으로는 더 없다. 새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소아응급 세부전문의를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응급실 소아 전담의로 가는 분들이 꽤 있지만, 이 분들도 많이 떠났다. 구인공고는 많다. tmi지만 나는 2024년 1월, 한 달 사이 스카우트만 무려 6군데에서 받았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많이 떠나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어서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 분과는 소아과에서도 응급의학과에서도 숙명적으로 마이너리티일 수밖에. 소아과 의사들 아니 대부분 사람들은 다 당직을 서고 싶지 않아 한다. 특히나 로딩의 상한선이 없는 응급실은 하물며. 소아응급 분과 수련에는 소아 외상을 보는 과정도 있는데, 수련 기간 동안 외상을 보는 일을 하지 않던 소아과 의사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응급의학과 사람들이라고 당직이 좋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교대근무 자체에는 익숙해져 있는데 대신 그들의 대부분은 소아를 보는 걸 원하지 않는다. 소아 자체도 약 쓰기도 까다롭고(몇 세 미만은 써도 되고 안 되고 금기도 많고, 용량도 몸무게당으로 계산해야 되고 등등) 생명의 위협이나 큰 장애가 남을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아 보호자들은 항상 예민한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어디서 외양간 짓는다는 정책들이 나올 때마다 같은 필드에 계신 선생님들과 이야기하곤 한다
근데 그거, 누가 해요?
운영하라고 강제만 하면 끝이고, 센터만 지어놓으면 사람은 저절로 모이나. 그리고, 소아응급센터만 있으면 소아 환자들은 무조건 다 수용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우리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볼까. 첫 번째, 언론에서 어디 지방에 연봉을 몇 억을 주는데도 의사들이 돈에 미쳐서 안 간다고 하는데 그 진짜 이유를 말해주겠다.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 한 명의 고군분투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병원, 아니 그 병원이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필요한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로 꾸려진 제대로 된 팀이다. 지역의 큰 병원들을 소아전문응급센터로 지정을 하면 만사형통일까, 거기 의사만 뽑히면, 지역사회의 소아 환아들은 응급실 뺑뺑이를 돌지 않아도 될까? 아니요.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순간을 넘겨줄 수 있는 선에서의 처치다. 더 많은 검사와 시간을 들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아들은 결국 배후진료과가 갖춰지지 않으면 진료의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장 중첩증 이야기를 해볼까. 환아의 증상을 듣고, 주의 깊게 검진한 다음 의심하고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여 진단해 내기, 여기까지는 소아응급 전문의인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나는 장 중첩증 환아의 치료인 공기정복술은 할 수 없다. 이것에는 공기정복술을 시행하면서 말려 들어간 장이 풀어지는지를 실시간으로 볼 투시 검사실이 필요하고, 소아 영상의학과 의사와 보조를 해 줄 영상 기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공기정복술에서 흔하지 않지만 생길 수 있는 장 천공(공기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터질 수 있다)의 경우, 혹은 공기정복술에 실패할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여기서부터는 소아외과의 영역이다. 전신 마취 후에 수술을 해야 하니, 소아 마취과도 있어야 한다. 진단도 치료도 어려운 병은 아니지만, 이것에 이미 4개의 과가 연결되어 있다. 내가 일하는 병원도 예전에는 장 중첩증 환아들을 어렵지 않게 진료했었지만, 소아외과 백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상의학과에서 공기정복술 시행은 어렵다는 답변을 최근에 받았다. 이제는 의심 소견서를 들고 오면 우리 병원에서 진단만 가능하고, 치료는 불가하며, 환아를 전원 하기까지 하룻밤 가까이 걸리는 상황으로 처음부터 백업이 다 되어 있는 병원으로 가도록 종용할 수밖에 없어졌다. 그렇게 몇 안 되는 빅 5 병원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서울이 이런데, 지방은 정말 지역사회 거점 병원 한 군데 정도가 겨우겨우 떠맡아서 버티는 수준인 것이다. 이것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이고.
소아과 안에서도 굉장히 많은 분과가 있다는 것을 알까. 소화기, 호흡기, 심장, 신경, 면역, 감염, 신생아, 내분비, 신장, 혈액종양 등등. 이 다양한 분과들은 한꺼번에 소아과라고 묶여있지만 전문화된 영역으로 들어가기에, 서로 진료할 수 있는 질병이 다르다. 소아과 전문의들이 감기나 장염 정도는 당연히 어느 분과 전공을 했든 볼 수 있지만, 식도 이물을 내시경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소화기 분과 의사가 아닌 사람이 할 수 없는 노릇이며, 경련하는 환아를 신경분과가 아닌 사람이 항경련제를 지어줄 수는 없고, 당뇨병성 케톤산증 환아를 내분비 전공이 아닌 사람이 치료할 수는 없다. 이 분과들 중에서도 병원마다 없는 분과가 있다. 이런 배후 진료과가 없을 때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건, 전원 갈 곳을 찾아서 온갖 곳에 전화하며 읍소를 하고, 그 사이 살리는 정도일 뿐이다. 전원 하나를 보내는 것이 성인에 비해서도 훨씬 어렵기에, 결국 배후 진료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응급실만 크게 지어준들,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 알기에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외양간을 지을 거면, 제대로 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이 각종 소아 관련된 과들과 소아 분과들이 왜 그렇게 구멍이 날까. 소아 중환자실 베드 하나당 연간 적자가 1억이라고 한다. 운영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인데, 병원 입장에서도 이 소아 중환자실을 적극적으로 늘릴 이유가 없고, 소아 중환자를 보던 의사들도 대학병원에 자리가 없으니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그런 선배들의 전례를 보면서 이 일을 누가 하려고 할까.
재작년 겨울부터 말하는 '소아과 대란'들에서, 솔직히 감기 걸리고 장염 걸렸는데 옛날처럼 의사 골라가며 못 다니는 상황인 것은 애초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애타는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진료를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보호자의 마음과 별개로 정말 응급실에 와야 할 아이들이 아닌 경증 환아들이 대학병원 응급실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는데 그게 대란이라고 할 건 뭔가. 진짜 문제는 중환자다. 전원 한 명 시키는데 그나마 서울 경기권에 그 많은 병원들이 있는데도, 받아줄 수 있는 병원들 자체가 몇 군데 되지 않아 제발 받아달라고 거절당한 뒤에도 몇 번씩 읍소해서 보냈던 경험이 정말 많다. 그 병원 선생님들께도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크다. 다들 아시는 거다. 우리가 안 받아주면, 정말로 환자가 죽겠구나, 하는 인류애로 어떻게든 받아서 버텨주시는 걸. 소아 수술과 나 소아 마취, 영상의학과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신경 써야 할 것은 많고, 보상은 크지 않고, 조금만 잘못되어도 소송 위험이 도사리는 일을 누가 선뜻 할 수 있겠나. '소아' 붙은 것 중에서 값 잘 쳐주는 과가 있었던가 싶다. 소아응급 전문의 뽑는다고 공고를 봐도, 성인 응급에 비해서 연봉이 짜다. 소아 수가 자체가 헐값이라 돈을 벌어올 수 없는 구조인데, 병원 입장에서 돈을 많이 쓸 이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명목상으로 외양간들만 마구 짓는다고? 국평 84m2 방셋화둘 신축 아파트까지 지어달라 소리는 아니지만, 고시원 같은 방만 마구 지어놓고 거기다 소들보고 들어오라고 하면서, 배가 불렀다는 둥, 소를 더 많이 키워야 잘 방이 없어서 기어들어오게 되어 있다는 둥의 소리나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아 물론, 가장 답이 없는 것은 사명감도 없으면서 이 바닥에 발 담그고 있는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