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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05. 2024

26. 하늘이 살린 아이.

내 정성을 오롯이 쏟았던 날들. 

소아응급 중환자실 주치의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아응급 전임의를 하게 된 계기도 중환자를 배우겠다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1년차 여름에 보내주겠다던 소아응급 중환자실 근무가, 차일피일 밀려서 1년차가 끝나갈 때 겨우 한 달씩 파견을 시작했다. 나머지는 2년차 전임의를 해야 시켜주겠다고 말이 바뀌시면서 왔던 스카웃도 거절하고 나는 2년차 전임의를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짓이긴 했다만은. 아무튼. 


2020년 2월 한 달 6월부터 석 달, 총 넉 달을 했다. 중간에 파업과 코로나 이슈 등으로 중환자실 트레이닝이 더 어렵겠다는 윗분들 결정, 1년 더 굴러야 6개월 기간을 채워 내가 중환자 세부전문의가 될 요건을 채워주시겠다는데, 솔직히 그 말씀까지 듣고 나니 정말로 덧정없었다. 사람을 도구로 굴려먹는 것도 정도껏이지. 


그래도 내게 소아응급 중환자실 주치의는 참 힘들었지만 소중한 기억이기도 했고, 이후에 어디를 가든 진료를 볼 때 덜 겁나게 만들 수 있는 경험의 토대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과정은 혹독했다. 응급실에 모든 오는 KTAS level 1(심정지, 의식저하, 저혈압, 산소포화도 저하, 경련 중인 환자들 등 초응급 상태) 환자들을 1차로 보고, 소아응급 중환자실에 입원시켜서 주치의 노릇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주 3일 24시간 당직. 당직 마치고도 다음날 오후까지 퇴근 없이 전공의랑 같이 중환자들 보는 그런 일이었다. 아마 주 120시간은 훌쩍 넘게 일을 했을 거야. 다 식은 도시락이나 불어터진 컵라면, 패티가 뻣뻣해진 햄버거가 주식이던 시절. 


어느 날이었나, 언제나 내공은 자만하면 안 되는 법인데, 오늘은 일찍 퇴근을 해볼 수도 있겠군, 하고 속으로 생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응급실 당직 교수님께 전화가 왔다. 빌라 4층에서 추락한 4세 아이가 오고 있다고. 며칠 못 잤으니 낮잠이나 자볼까 하던 상태였는데 정신이 화들짝 돌아오면서 응급실로 가서 환자를 받을 준비를 시작했다. 

중증 외상으로 분류해야 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소아의 경우 자기 키 2배이상 높이에서 추락시는 중증외상으로 간주하고 접근한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흔이 얼마 없어 보여도 머리나 심장, 폐, 간이나 비장같은 복부 장기의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수 있는 기전이기 때문이다. 


빌라 4층이라면 성인도 쉽게 생각할 높이는 당연히 아니고. 수액처치 및 기도삽관할 준비, 경추보호대 등을 준비하고 있노라니 얼마 안 되어 환아가 도착했다. 얼굴과 코, 입 주변으로 피가 다량 묻어 있어 안면 기저부 골절 가능성도 배제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고, 의식은 있었으나 환아가 계속 울고 있는 상황. 다행히 검진시 흉곽 주변이나 복부나 골반쪽 손상이 커 보이지는 않았다. 동공반사 정상, 환아가 계속 울고 있어 손을 들어보라 하는 등의 지시사항을 따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우선 기도 확보를 하고 중증 외상에 준해 머리,경추 및 가슴,폐 CT 및 골반쪽 엑스레이 검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기전에 비해 환아가 다른 부분의 손상은 크지 않아보여 구급대원님에게 물어보니 4층에서 떨어지면서 한번 나무에 걸렸다가 떨어진 것 같다고 하시더라. 

입 안과 기도 주변에 피가 다량 고여 있어서 기도 확보가 생각보다 어려운 아이였다. 안면부나 두개골 기저부 골절이 심하게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으니까. 어렵사리 기도 삽관을 하고 정맥주사 확보 후 씨티실로 갔다. 다행히 걱정했던 두개골 골절이나 출혈은 없었고, 안면부의 골절이 있었지만 어긋남이 심해서 응급 수술을 요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골반골절이나 갈비뼈의 다발성 골절이나 긴장성 기흉, 혈흉 등은 없이 폐 좌상만 동반, 경추부 손상이나 복부장기 출혈이나 손상은 동반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라고 할 정도의 소견이기는 하였으나 기전이 기전인지라 환아는 우선 소아응급 중환자실로 입원하기로 했고, 중심정맥관 및 동맥관 삽입 및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입원한 하룻밤은 진정제를 써서 재우고 인공호흡기 및 정맥영양 공급을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았다. 다친 기전에 비해서는 정말 경미한 수준이라고 말씀드려도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 중환자실 앞에서 내내 밤을 새면서 울고 계셨다. 제발, 엄마 엄마 탓 아니니까 그만 울고, 한 시간 두 시간만에 뭐가 달라지지는 않으니까 제발 밥 먹고 잠 자고 엄마 스스로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잠 안 자고 밥 안 먹어도 내가 안 자고 안 먹지, 엄마가 그러는 거 아무 의미 없다고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는데도 막무가내셨다. 걱정한만큼 많이 다친 거 아니니까 제발, 우리 조금만 시간을 갖고 아이한테도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자고. 


사실은 나도 조금 무섭기는 했다. 환아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뇌출혈이나 두개골 골절 하나 없이 얼굴뼈에 살짝 금만 간 정도인 것도, 복부나 골반 장기가 다치거나 대량 출혈이 있지 않은 것도, 기도나 척추 등 다른 곳이 심하게 다친 곳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를 재우고 지켜보면서 작은 변화에도 괜찮을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나타나지 않는 지연성 출혈같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고, 나도 소아 중환을 입원시켜 보는 것이 손에 덜 익어 작은 변화에도 이게 괜찮은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부님께서 좀 한심해하셨다. 저거 언제 사람 될꼬. 그래도 항상 애 옆에 붙어있다는 거, 그거 하나는 참 좋게 봐주셨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했던 지청구가 

실은 나 스스로에게 했던 말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다행히 걱정했던 큰 일은 없이 지나갔다. 중간에 경련발작 의심 증상이 있어 뇌파와 MRI 검사를 시행했는데 다행히 정상이었고, 신경분과의 협진을 받으면서 환아는 순조롭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안면부 골절도 심한 수준은 아니라 수술적 치료 없이 경과를 보기로 했고, 추후 발견된 손가락의 골절 소견 역시 수술 없이 경과를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빌라 4층에서 떨어진 아이가 이만한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냥 이 아이가 처음부터 덜 다쳐서 왔던 덕분이었고, 나는 그저 이 아이의 옆에 있어줬을 뿐이었다. 

이후 환아는 신경분과 쪽으로 전과 및 일반병동으로 전동하였고, 퇴원까지 순조롭게 마쳤다. 아이가 퇴원하는 날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찾아오셨다. 고맙다고. 보통 보호자에게 내 연락처를 주지는 않는데, 이 아이는 나한테도 좀 특별한 경험이기도 했고, 걱정했던 것 보다 덜 다쳐줘서 고마웠던 마음이 컸었어서 연락처를 드렸었다. 우리 애 어른 되면 훌륭한 사람 되어서 꼭 내게 인사하러 오게 할 거라고. 어머니는 1년에 한두번쯤 내게 연락을 주신다. 아이는 처음 봤던 날, 퇴원하던 날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고, 어머니는 다 내 덕분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 때마다 하늘이 살린 아이일 뿐, 내 덕분이 아니라고 응수한다. 뭘 해도 될 아이일 것이라고, 연락이 끊겨도 좋고, 나를 잊어도 괜찮다. 평생 액땜 다 했으니,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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