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원이 밥그릇 싸움이 아닌 이유.
솔직하게 다 까고 말한다.
2000명 증원을 하든지 말든지, 그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든지 말든지, 그들이 미용으로 빠지든 나같은 낙수의사가 되든지 말든지, 나의 밥그릇에는 정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 정말로 지금 증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밥그릇은 아무런 영향이 없고, 오히려 제대로 교육받고 어느 수준 이상의 퀄리티가 면허번호만으로도 보장이 되어버리기에 몸값이 오르면 올랐지 내릴 일은 없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요즘은 소아응급 하면서 일자리 걱정은 없다. 마음 편하다. 하늘같은 교수님들께도 할말 다 할 수 있다. 나 없으면 어쩌실거냐고, 조금은 똥배짱이다. 한 달 사이에 스카웃만 6개를 받았다. 오라는 곳은 널렸고, 페이도 예전보다는 많이 올랐다. 우습지만 그래도 성인응급보다 페이가 짜다. 소아 수가가 워낙 낮아 수익을 창출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응급의학과?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죄다 응급실을 떠나서 요즘 응급의학과 페이도 많이 올랐다. 이런 와중에 증원을 해서 몇천명이 나오든, 이 일 하러 올 사람들이 없고 있다고 해도 나만한 실력이 안 될 게 뻔한데, 내가 무슨 밥그릇 걱정을 하나.
사람 손 부족하다며, 그래서 근무시간이 길고 일이 힘들다며, 그러면 사람 채워주면 되는 것 아니냐.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논리이기에 오히려 더 대중에게도 잘 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 손이 부족한 과는 어느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기 시작한 소위 '필수 의료' 다른 말로 하면 '바이탈' 요즘 식으로 하면 '낙수'과들이다. 식소사번한 일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이 길을 간다는 자부심과 전공과목에 대한 애정 하나로 버티던 것들을 건드렸기 때문. 소송에 언제 걸릴지 몰라서 떨어야 하고, 연차가 아무리 올라도 밤낮없이 당직을 서며 몸이 갈려나간다. 나의 경우만 해도 주 2-3회 5km 이상의 달리기를 하고, 건강한 식단을 챙겨먹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당직하고 난 다음날의 공복혈당은 100이 넘기 일쑤다. (잘 자고 난 다음날은 80대) 그렇게 고생해서 전문의가 되어도 전공과목을 살려서 설 자리가 없다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힘든 흉부외과 수련을 받아도 전공을 살려서 심장 수술 폐 수술하며 살 수 있는 자리가 없다. 미래가 안 보이는 일에 뛰어들라고 그 누가 강요할 수 있겠는가.
내 전공 소아응급 이야기를 해 보자면, 소아과에서도 응급의학과에서도 참 취향 독특한 사람들이 하는 전공이었다. 응급실이 좋다는 소수의 소아과 전문의, 애들은 예쁘고 귀여우니까, 혹은 나처럼 보호자들이 내가 의사인 줄은 알아봐주니까, 애들은 빨리 잘 나으니까, 애들은 검사에 마냥 의존하는 게 아니니까, 뭐 그런 꽤 사소하고 희한한 이유들로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전공이었다. 원래도 그랬다. 그래도 1년에 하겠다는 사람이 우리 의국에 한둘씩은 꼭 있었다. 묘하게 매니악하지만 계보가 끊기지 않는 그런 집안이었다. 소아응급 전문의들은 소아응급전문센터에서 일하거나, 센터가 아니라도 소아응급실에서 전공 살려서 일을 할 기회들이 더러 있기는 했다. 하지만, 소아응급실은 만들어서 사람을 뽑아두었는데 이제는 백업이 되어줘야 할 소아과의 여러 분과들, 그 과들이 무너졌다. 응급실만 키워놓으면 뭐하나, 뒷배가 다 무너졌는데. 그러다보니 소아응급 해보겠다고 뛰어든 사람들이 일자리가 그렇게 넘쳐나도 안 간다. 갔다가 다 나온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 응급실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는데 어쩌나.
한편 예전에 비해서 점차 커지는 인식. 못 해서 안 받으면 죄가 안 되는데, 받았다가 해결을 못 하면 죄가 된다. 크룹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건, 이라고 말하던 케이스만 해도 그랬다. 안 받아준 병원들은 아무 상관 없었지만 입원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전제로 진료를 봤던 의사는 보호자의 원망을 들었다. 면책? 없다.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점점 받아서 해결을 백 퍼센트 해낼 자신이 없으면 환자를 안 받으려고 한다. 내가 일하는 곳만 해도 소아 외과의 백업이 안 되어서 소아 장중첩증을 영상의학과에서 정복술을 시행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장 천공시 소아외과의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데, 백업이 안 되는 위험한 일을 굳이 떠맡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소견서를 들고 온 환아의 보호자에게 자괴감을 느끼며 설명하고, 가능한 병원으로 가시도록 종용한다. 이게 뭐라고. 가능한 병원들이래봤자, 서울 시내 안에서도 끽해야 빅5 정도다. 그곳은 이미 중환들로 미어터지고 있다. 그분들께 짐을 하나 더 얹어드려 송구한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사람을 많이 뽑으면 누군가는 할 일이라고? 인기과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서 하게 될 일들이라고?
전공의를 하지 않는 선택지라는 것이 있다는 걸 모르는지, 모른척 하는 것인지. 처우가 박하고 힘들게 일하고 소송 걸릴 위험에 떨면서 살고, 기껏 해도 전공 살려서 취업 잘 못하는 일들을 정말 갈 데 없어서 하게 될 거라고? 의사 될 기회라고 수능 특강은 펴지만, 의대 간 다음에 등록금 뽕 뽑아야 하니까 빨리 초기 자금 회수해야 한다는 사람들 투성이인데, 2000명 뽑으면 20명은 갈 거라고? 1980명은 미용을 하러 간다고 치자. 그럼 그들의 몸값이 떨어진다, 그래서 무한 경쟁이 되면서 보톡스 싸게 맞게 되어서 좋을 거라고들 생각하겠지만, 의사가 증원되면 의료비 지출 자체가 늘어나게 된다. 공급자 유인 수요라는 것이 있다. 두 번째. 이 20명이 경쟁에서 밀려나서 '낙수'과를 하게 된다고 치자. 정말로 생사를 오가는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싶은가. 이 20명 바라보고 증원을 하지 않고도 바이탈과 살리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왜 큰 돈을 쓰나. 세 번째, 2000명의 증원된 의대생의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고도로 전문화된 교육을 받았고, 책임이 큰 자리에 있기에 그만큼 사회적인 대우를 받고 돈을 버는 것인데, 증원된 의대생들을 정말로 다 지금처럼 교육할 수 있다고 믿는가.
의사 한 명이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일이 분업화, 전문화되어가는 세상에 의료라고 다를쏘냐. 응급실 뺑뻉이로 사람이 죽었다고 돈만 아는 의사들 대신 증원해서 일할 참의사들을 구한다고 하기 이전에, 지금 정말 근근히 이 무게를 짊어지는 이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고 하는데 그동안 싸고 좋은 한국 의료의 가성비를 담당하던 인턴과 전공의들의 처우부터 개선해야 한다. 수련의 질을 개선함은 물론이고, 이들이 다른 노동자에 비해서 지나치게 긴 업무시간과 업무강도를 감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 나머지 시간은 정말로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하며, 교수들도 단순히 부려먹을 수족이 아니라 교육해야 할 대상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전문의 위주로 병원이 돌아가야 하고, 이에 합당한 급여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수가 개선은 어쩔 수 없다. 진료에 협조가 안 되는 어린아이 진료 하나 보는데 9천원 받았다고 날강도 소리를 들으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수술이나 시술의 수가도 선진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싼 것도 문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값도 쳐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아무것도 안 해 주고 해열제나 먹으라는 소리 해놓고 왜 돈을 받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방 의료를 살린다고 지역 의대 증원을 할 게 아니라, 지역에 있는 병원들이 잘 돌아갈 수 있게 지원을 해야 한다. 전공의들 돌아와라 의료개혁 하고야 말겠다고 기싸움하는 홍보물에 세금 녹일 때가 아니란 이야기다.
정말 내 밥그릇을 생각한다면 증원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그들은 내 경쟁상대도 아니고, 나는 이미 자리를 잡은 전문의다. 그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한들, 내 분야로 진입은 안할 테지만 한다고 해도 나만한 실력은 절대 못 갖춘다고 자신한다. 지금 사직하고 떠나시는 교수님들도 마찬가지다. 이 분들이 연봉이 깎이고 경쟁에서 치일까 걱정하시겠나. 지금 전공의들? 마찬가지다. 이들이 본인들 밥그릇이 없어질까봐 사표를 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말 다들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놓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내몰리듯이 사표를 쓴 이들이야말로 모두 그리들 칭송하던 '참의사'들이었다. 오히려 가장 밥그릇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은 지금 나가 있는 미용 GP 정도일텐데, 그들은 별 타격없이 일 잘 하고 있다. 오히려 얼른 벌어서 빨리 개원해야 증원되어서 쏟아져 나오는 신규 인력들을 싼값에 고용할 수 있을테니 빨리 돈을 버는 것도 방법이겠지.
갑갑하다. 이 모든 것이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만 비치는 것이. 이 사태가 어떻게 종결되든 바이탈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섰다는 생각에 씁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