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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Jun 09. 2022

나무의 기도

          오늘 아침에도 나뭇잎은 노래한다

     

     다섯 달 정도를 쉬다가 겨우 직장을 구했다. 다시는 발 붙이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눈물을 머금고, 아니 나이도 많고 별 능력도 없는 나를 고용해 줄 직장을 찾지 못해 자괴감에 허덕이고 있는 나를 건져내 준 것에 감사하며, 이른 출근과 시간당 임금을 받는 파트타이머임에도 감지덕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앉아 있는 시간보다 서서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좀 많이 피곤하다. 걷는 것 때문에 피곤한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이, 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왔다 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왔다 가면서 내 기운을 앗아가는 듯하다. 진이 빠진다고 할까. 


     집에 오면 저녁을 해서 먹고 나면 잠이 온다. 피곤함이 밀려오고 당연히 핑계일 테지만, 책도 읽지 못하고 쓴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 2주 정도가 지나고 보니, 그래도 한숨은 돌린 듯하다. 그럼에도 사무실에서는 내 시간을 가질 수는 없다. 그것이 못내 아쉽다. 일이 없을 때에도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것. 책을 꺼낼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인가 큰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을 허비하고 있는 것 같다. 내게 맡겨진 일을 다하고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쩌랴. 책을 꺼내 읽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는 장소인 것을. 


     시간이 많을 때는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직장을 구하고 보니, 직장이라는 장소 때문에, 시간이 많을 때는 많아서, 시간이 없을 때는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는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 뭐든 핑곗거리를 만들어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내가 가엾고 애처롭다.


      출근은 8시 30분까지인데 8시 10분이면 도착한다. 도착하면 10분 정도 책을 읽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분 동안 주로 성경을 읽고 내가 해 두어야 할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밖에 나간다. 


     신호등을 중심으로 네 방향으로 서 있거나 움직이는 차들을 본다.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의 푸른 잎들이 한들한들 바람에 흔들리거나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본다.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푸른 하늘을 보고 새들을 보고 도로를 걸어가는 사람들을 본다. 세상이 바쁘게, 한가하게 움직이고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를 향해, 무엇을 위해 열심히 앞을 향해 나아간다. 세상의 움직임 속에서 나는 멈추어 서서,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네거리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면 세상은 날마다 변함없이 내가 없어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돌아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커피를 마시며 기도를 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열심히 살아가게 해 주시기를, 맡겨진 업무에 힘들어하지 않고 잘 헤쳐나가기를,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햇빛이 뜨거워 나무 그늘에서 커피를 홀짝이면서, 신호등을 건너기 위해 나무 그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나이 드신 어른들을 보며, 나무 그늘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신호등이 몇 번을 바뀌고 시간이 계속 흘러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고 싶었다. 나무 아래 쉬고 싶었다.


     나는 나무 그늘에 쉬고 싶은데, 나무는 누군가 사람들과 동물들, 의자와 풀과 세상의 모든 깃들이는 것들에게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는데, 무엇도 바라지 않고 베풀기만 하는데, 나는 나만을 위해 기도했고, 내가 누군가를 맞아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나무 그늘에서, 푸르게 덧입혀지는 나뭇잎들의 싱그러움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이제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에게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도움을 주고,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하루를 빛의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직장에서는 직장의 일과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집에 와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피곤하다고, 시간이 없다고, 할 일이 많다고 핑계 대지 않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안타까운 생활을 하지 않겠다.  열심히 살아야지, 웃으면서 살아야지,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살아야지, 언제까지나 책을 읽고 좋은 글을 쓰는 삶을 살아야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의 <서시>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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