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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Jun 15. 2024

삶 또는 죽음에 관하여

삶과 죽음이 예 있음에 두려워


   오늘 몇 개의 죽음을 보았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본 주검들은 바짝 말라 있었다. 형체를 분간할 수 없이 깡마른 채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있다. 죽은 나무 막대기처럼, 그 죽음도 탁한 빛깔이다. 시멘트 바닥으로, 보도로 기어 나와 죽음을 맞이한 지렁이들. 납작해져서 바람이 불면 흔들거리기도 하면서, 다양한 몸짓과 형태로 죽어있다.     

 

   목련이 환하게 피었던 봄날, 도심 거리에서 지렁이를 살려준 적이 있다. 아니 그 후로 그 지렁이가 살았는지는 모른다.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나는 바닥에서 지렁이를 보았다. 지렁이는 거짓말 조금 보태면 뱀만큼이나 두껍고 길었다. 천천히 기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 지렁이가 기어가는 그곳이 햄버거를 파는 집이었고, 드리이브스루 때문에 차와 오토바이가 다니는 길이었다. 거기다 이 거리는 대학가여서 사람들의 발길도 잦았다. 지렁이를 보았지만, 나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어스름이 짙어지는 저물녘이어서 서둘러 집으로 가야 했다. 저곳에 그대로 있다가는 지렁이는 필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살려줘야 한다는 생각과 얼른 가야 한다는 생각과, 이 길거리에서 내가 굳이 지렁이를 인도 밖으로 데려다줘야 하는지, 제 스스로 갈 길을 찾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못 본 척, 지나쳤지만, 차마 계속 갈 수가 없었다.     

 

   일이 미터 되돌아서 다시 갔을 때, 지렁이가 온몸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차디찬 지렁이가 내 몸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모든 동물 중에 뱀을 싫어한다. 축축한 느낌도 싫고 기어 다니는 것도 싫고 혀를 날름거리는 것도 싫다. 지렁이도 뱀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뱀이나 지렁이가 꿈틀거릴 때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뭐랄까. 내 몸에서 징그러운 기다란 생물이 스멀거리는 것 같아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지렁이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조금 전에 지나갔던 오토바이가 지렁이 꼬리를 뭉갠 것 같았다. 지렁이가 온몸으로 애원했다. 지렁이가 내 몸을 기어다는 것처럼 징그러움에 치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지렁이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렁이를 집을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했다. 나뭇가지로 들어 올리기에는 지렁이가 너무 컸고, 내가 그 꿈틀거림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쓰레기가 쌓인 곳에서 종이골판지가 있었다. 골판지 위로 지렁이가 올라오도록 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야생식물이 무성한 작은 공터가 있어서 지렁이를 그곳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하는 동안 나는 몇 번을 멈추고 숨을 다시 쉬어야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지렁이를 살려주곤 했다. 내게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문학을 공부하면서,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알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한낱 미물의 생명도 소중하고, 누구나 무엇이나 생명은 똑같이 공평하다는 것을 배웠다.      

 



   오줌소태가 왔다. 5~6일 됐다. 약을 먹지 않고 버틴다. 민간요법이라고 대파 뿌리를 달여 마시면 좋다고 해서 어젯밤에 한 잔 마시고, 오늘 아침에 한 잔 마셨다. 아직까지 효능은 없는 듯, 찌릿찌릿하고 소변이 나올 듯 말 듯하다. 오른쪽 배가 쑤신다. 신장이 좋지 않나 의심해 본다. 별별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왕왕거린다. 아직 아이들을 다 키우지도 않았는데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부터 지금 당장 한 달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고, 무엇을 하며 한 달을 보낼까 하는 생각이, 돌들의 이마를 핥고 가는 강물처럼 빠르게 스쳐간다. ‘오줌소태’라는 어쩌면 소소한 질병 하나에서 죽음이라는 극단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좀 우습기도 하고,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우리는 흔히 죽음과 삶은 하나라고 말한다. 태어나면서 죽음은 정해져 있는 기정사실이고 사는 것은 한발 한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눈이 감기고 숨을 쉬지 않고 이 세상을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슬픔을 넘어 두렵고 가 닿지 않고 싶은 일일 수밖에 없다. 내가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것도 자식이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가 절대적인 믿음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었을 게다. 


   지난주에 남편의 이모님이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언니가 불쌍하다고 많이 우셨다. 가정 있는 남자의 첩이었던 이모님은 혼자 아들 하나를 낳아 키우셨다. 그 하나뿐이었던 아들이 결혼해서 얼마 안 된 30대의 젊은 나이에 하늘의 부름을 받았고, 그 후, 열 평 남짓한 주공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사셨다. 대신 조카들을 데려다 키우고 그 조카의 자식들까지 키워주셨다. 기초연금을 모아 조카들이 차를 구입하는데, 냉장고를 사는 데, 잡다한 살림살이에 일조하셨다. 이모님 아들과 한 살 차이인 남편도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까지 이모님이 맡아 키우신 조카 중 한 명이다. 한창 시절이었던 그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모부가 집에 와서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갔다고 한다. 남편은 이모부가 오는 날의 이모는 다른 날의 이모와 얼굴부터 달랐다고 했다. 그날은 상 위에서 보글보글 고깃국이 끓고, 이모님의 젓가락이 바빴다고. 한 가족이 모인 자리에 이방인으로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남편은 그날이 제일 싫었다고, 이모부가 정말 미웠다고, 명절 때 이모를 만나고 오면 그 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작년에 그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이모님은 삶의 끈을 놓아버린 듯했다. 어느 날 집을 나가신 후 다음날 전혀 연고도 없는 곳에 멍하니 계신 이모님을 경찰의 도움으로 집으로 모셔왔으니 말이다. 아들도 죽었고 남편도 죽은 마당에 삶에 미련이 얼마나 남아 있었을까. 이런 일련의 일들을 잘 알고 있는 시어머니는 언니의 영정사진을 보며 “아들 만나니까 좋겠네. 엄마도 만나고 남편도 만나고, 거기서 편하게 살아, 언니!”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혼자인 언니에게 요양보호사를 붙여주고 음식이나 옷을 사드리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요양병원으로 면회를 다니셨던 시어머니는 이모님의 외로움과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가슴 아파하셨다.      


   그러나 이모의 삶에서 한 발짝 비켜서서 그 삶을 엿본 나는 이모님의 삶이 시어머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외롭고 고통스럽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위로해 본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떤 삶인들 헛된 삶일 수 있으랴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모님의 삶이 너무 허무해지는 까닭이다. 한 사람의 생애가 고통과 외로움만으로 끝난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너무 애처롭지 않은가.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의 아들도 낳아서 기르며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한번씩 오는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마련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한 순간들이 있었다. 이 순간들이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모님의 삶은 아름답고 복된 삶이 아니었을까.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먼저 하늘로 보낸 것, 그것이 이모님한테는 가장 큰 충격이었고, 삶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후 이모님은 조카들과 그 조카들의 아이들까지 돌보셨다. 아들을 대신해서,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셨을 게다. 흔한 말로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랴마는, 그것으로 족하지 않으셨을까. 

     

   이모님은 아들의 묘지에 가서도 결코 눈물을 흘리거나 망연자실하지 않았다. 술을 휘휘 뿌리고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이 오죽하셨을까 하는 마음과 벌써 죽음을 초월하고 계셨던 듯싶기도 하다.    

 

   피붙이의 죽음 앞에서도 태연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잠시 나의 죽음도 초월할 수 있고, 자식들의 죽음도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신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날마다의 삶에 감사하고, 날마다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세상의 경이로움을,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고 있기에 지금 죽는다고 해도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사실 단정할 수는 없다.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내가 삶에 최선을 다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했는지 정말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그 대상에게, 그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미련과 후회가 남는 것 같다. 어려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삶에 수반되는 모든 것들에 최선을 다한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모든 삶을 사랑하고 감사한다면 죽음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짐짓 너스레를 떨어본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을 잃고 살아가는 것만은 자신이 없다.   

   

   저녁에 친정엄마께 이모님 소식을 전했다. 

“엄마, 엄마 돌아가시면 울지 않으려고 전화했어. 전화라도 날마다 해서 엄마 소식 듣고, 재미있는 이야기 해서 엄마 웃겨 드리고, 그러면 엄마한테 최선을 다했다고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그리고 지금까지도 엄마 많이 사랑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더 열심히 엄마 사랑해서 후회 안 할라고. 안 울라고.” 

엄마는 웃는다. 그러면서 친정엄마가 돌아가시면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자식이 제일 많이 운다고. 옛날부터 제 슬픔에 겨워 운다는 말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 우는 것은 망자의 삶이 애처로워서, 내가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후회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내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통곡하는 것은 아닐까. ‘삶과 죽음이 예 있으매 두려워’로 시작되는 월명사의 향가 <제망매가>가 불현듯 스치는 개구리울음소리 울창한 밤, “나는 가노란 말도 못다 이르고” 이 밤을, 이 생애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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