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쯤 신장에 혹이 있어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조직검사를 해보니 악성종양이었다. 들어 놓았던 암 보험금을 타기 위해 보험회사 창구에 서류를 내었더니 서류를 받은 40대의 여직원이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전해 주었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서 어떡하냐고....
나는 수술 결정을 하고 담담했다. 물론 암인 줄은 몰랐지만 수술 날짜를 정하고 출근을 위해 반포대교를 건너는데 하늘이 너무 파랗고 예뻤다. 다른 기관도 아니고 신장이라서, 남들은 한쪽 다 떼어내고도 산다고 하는데 나는 그중 일부만 떼어내는 수술이라서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가 암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리 검진받고 수술도 하게 되었고 아주 초기여서 전이도 없었고, 항암치료도 필요하지 않았다. 거기다 보험금도 타고. 회사에서 당장 할 일도 많았고, 젊어서 그때만 해도 죽음은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회사에는 암이라고 얘기하지 않았고, 회식에서 술도 마시고 야근도, 출장도 예전처럼 열심히 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내가 내면이 단단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건 아니고 지금 돌아보면 잘 몰라서,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나만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죽음이 그렇게 두렵진 않은데 먼저 가면 아내가 걱정된다. 아기 같아서 내가 챙겨주지 못하면 이 복잡한 세상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걱정된다. 하긴 30년 전 결혼할 때 주위에서 그랬다. 남자도 여자도 그렇게 착해 빠져서 이 험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그래도 잘 살았으니 굳이 혼자 남을 아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세상은 복잡하지만 편리해졌고 험하다고 하지만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아니까. 거기다 외동딸이지만 잘 자라줬고 나름 당당하게 사회생활도 잘하고 있어서 딸에게도 조금은 의지할 수 있으니까.
내 나이 또래의 친구나 동료의 부모님 부고를 받고 문상을 가면 연로하신 부모님이 가끔 아주 가까운 기간에 연이어 돌아가신 것을 보게 된다. 물어보면 열이면 열 다 두 분의 금슬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배우자를 보내고 바로 죽음을 맞는 것이 슬픔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분이 같이 사는 동안 의지하고 삶의 에너지를 공유했기 때문에, 에너지가 여유가 있으신 분이 힘든 분에게 그 에너지를 나누었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에너지가 같이 고갈되어 같이 죽음을 맞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그렇게 해 보려고 한다. 물론 아내와 나 둘 중에서 누구의 에너지가 먼저 고갈될지 아직은 모른다. 아내는 내게 그렇게 할 것으로 믿는다. 내가 그렇게 살려면 나는 더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운명이 나의 삶을 흔들지 않도록 담담하고 평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