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3년 전부터 서울 외곽에서 LPG가스충전소를 임차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이 있지만 업무 특성상 같이 식사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로 혼 밥을 하게 된다. 고맙게도 집사람이 도시락을 싸주어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던 어느 날이다. 반찬이 양념 깻잎이었는데 깻잎이 서로 잘 달라붙어 떼어서 먹는 것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혼자서 끙끙거리며 떼어서 먹다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깻잎을 떼느라 뒤적이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서 아래 깻잎을 잡아주던 누군가의 젓가락이 생각난 것이다. ‘식사를 같이 하면서 깻잎을 잡아줄 사람도 없네’. 양념 깻잎이 나의 외로움을 저격했다.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았다.
돌아보면 살면서 외로웠던 시간이 몇 번 있었다. 카투사로 하던 군 생활 말년에 동료 병사들은 다 외출, 외박 나갔는데 혼자 텅 빈 막사에서 지내다 쓸쓸히 잠을 청할 때 외로웠던 것 같다. 일본에서 2년간 연수하면서 친절하고 상냥한 일본 동료들이지만, 내가 다가가면 슬쩍 물러서는 기분을 느낄 때도 외로웠다. 눈빛만 교환해도 알아차리고 퇴근 후 자연스럽게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던 서울의 동료들이 생각 나 많이 외로웠다. 회사를 30년 넘게 다니면서 마음 편히 지내던 동기들이 하나, 둘 씩 주위에서 사라지고, 그중에서도 특히 회사 일과 사람들의 뒷담화를 하며 낄낄 대던 친하게 지내던 동기가 퇴직하고 나니 더 많이 쓸쓸하고 외로웠다.
혼자 있을 때 외롭지만 누군가 같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직원들과 업무 이외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직급의 차이가 있어서 인정하는 것, 인정받는 것이지 진심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상사에 대해 그랬기 때문에. 그래서 외로웠던 것 같다. 집사람이 말 벗이 되어 주어 그래도 말년의 황량한 회사 생활을 조금은 편안하게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조그만 한인 교회를 다녔는데 젊은 유학생들이 많았다. 밥도 사주고 같이 여행도 가곤 했는데, 장소, 시간에 따라 자기 들끼리 만 어울리고 싶어 하는 때가 있었다. 슬며시 빠져 주긴 했지만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거기에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가 없었고, 젊은이들은 친구가 되기는 어려웠다.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외로워진다고 한다. 외로움은 물리적이고 원초적 감정이지만, 극복하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지배당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느꼈던 외로움을 생각해보며 앞으로 다가올 외로움을 준비해 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정하자. 상황의 문제가 아닌 원초적 감정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외로움이 덜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사람들에게 다정해야 한다. 그런데 다정해지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그게 보통의 자기 인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생각과 다르면 여지없이 내 생각을 드러내고 만다. 아무리 참아도 얼굴로 몸짓으로 표현된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은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아무 생각 없이 그런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다정해야 한다. 오랫동안 같이 지낼 사람들이니까. 외로워도 소신껏 사는 게 좋은 지 인간관계에서 인내하고 다정하며 덜 외로운 게 좋은 지 선택해야 한다. 내 생각을 좀 접더라도 다른 사람의 삶에 위로가 되면 더 좋지 않은가? 젊은이의 의견이 유치할 때도 있지만 젊은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이니 그들의 뜻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없어지더라도 나의 삶의 모습이 남아야지 件件이 의견을 내는 것은 옳지 못하다. 특히 나이가 들면 자기 생각이 더 완고해져서 고집만 늘고 목소리만 높아져 다른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고 관계가 소원해진다. 우리 세대의 남자들이 살아온 삶은 물질적인 기반을 갖추느라 효율만을 중시했다. 다른 사람의 입장보다는 목표 달성이 더 중요했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연습이 부족하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과 취미를 찾고 그 일과 취미를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연대감을 높인다. 일과 취미로 시작한 관계지만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관계까지 이어지면 더 좋을 것이다. 생각을 나누고 공감할 사람들,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지낸다. 멀리서도 후원하는 그런 동지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외로움을 긍정의 에너지로 전환해 보자. 어차피 매일 누군가에 둘러싸여 있어도 나를 찾지 못하면 외롭다. 배고픔처럼 주기적으로 외로움이 찾아올 테니까. 지금은 집사람과 딸이 같이 살지만 딸도 떠나고 집사람이나 나나 누군가는 혼자가 될 터이다. 나는 집사람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싶다. 떠나는 사람이 먼저 가면서 걱정하지 않고 편안히 갈 수 있게 내가 혼자서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외로움을 긍정의 에너지로 전환하고자 한다. 나의 내면에 있는 본질을 찾고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어보는 시간으로 외로움을 사용한다.
나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은 어떤 지, 언제 당황하는지, 언제 감동하는지, 무슨 일에 슬퍼하는지, 눈물은 언제 흘리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게 사람들하고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까지 인간은 모두 똑같다고 생각했다. 열외는 나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내 감정을 알고 나니 사람마다 다른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지 못해도 존중할 수 있다. 아니 존중하려고 한다. 마치 유체이탈한 듯이 나를 바라보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외로워도 두렵지 않다. 내가 옆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