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가 그만두는 게 맞는 건지.
결심의 날은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힘들고,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하루를 보냈지만 그만두는 절차는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너무나도 착착 진행되었다.
D-30
그렇게 쏟아냈던 눈물콧물을 정리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내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팀장님이 한 달 사이에 내 마음을 돌려보겠다고 새로운 업무 분장도 제안했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D-23
또다시 언제쯤 얘기해야 좋을까를 수백 번 고민하다 아침 일찍 인사팀 담당 주사님에게 메신저 채팅을 걸었다. 10분 만에 의원면직을 위한 만남(?)이 성사됐고, 담당 주사님은 회의실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사직서 양식과 볼펜을 내밀었다. 얼른 쓰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픈 마음 반, 무언가 내키지 않은 마음 반을 가지고 사직서의 빈칸에 '개인 일신상'의 사유로 그만둔다는 내용과 내 이름 석자를 적어냈다.
D-15
이쯤 되니 시간 정말 안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이 여러 개 남아있었다. 팀장님은 내 마음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접어둔 채 내가 떠나기 전 일 하나라도 더 마무리하기 위해 점차 압박을 주기 시작했다.
D-8
어느 정도 나의 선에서 업무의 마무리가 진행됐다. 밀렸던 업무들은 최대한 빠르게 정리했고, 과장님에게 5번씩 반려당해 진행되지 못하던 업무도 진전을 보였다.
D-day
그리고 마지막은 담백했다. 제시간에 출근했고, 자리에 앉으며 팀원들에게 여느 때와 똑같은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만둔다는 것이 실감되지 않았다. 남아 있는 나의 일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모든 것이 다른 날과 같았다.
다만, 단 하나 다른 것은 보는 사람들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지? 수고했어."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는 "너무 아쉽다~. 왜 가는 거야~."와 같이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말들로 내가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인 듯 위로했겠지만, 적당히 거리 두고 적당히 맞춰 지내는 공무원 동료들 사이에서는 딱 이 정도의 말들로 나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의원면직의 'ㅇ'자만 나와도 눈물콧물을 줄줄 흘렸던 한 달 전 결심의 날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만두냐는 말에 하하 웃으며 "아, 네 그렇게 됐습니다." 하고 받아칠 정도도 되었다. 부럽다는 말에는 "저처럼 사직서만 쓴다면 언제든 탈공무원 할 수 있습니다~."라고 농담도 할 줄 알게 되었다.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더 슬프고 더 허전할 줄 알았지만 모든 것이 그저 그랬다. 남아 있는 일들만 잘 정리하고, 내 업무를 인수인계할 생각만 했다.
결정은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을 하고 나서의 마지막 모습은 단순하고 쉬웠다. 감정의 큰 변화도 없었으며, 진짜로 그만두게 되는 것인가와 같은 의심과 싱숭생숭한 마음만이 남았을 뿐이다. 마치 그만두는 것 자체가 꿈이라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데 자리를 비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자꾸 책상 정리를 하며 미적거렸다. 그런 나를 보며 팀장님은 "ㅇ주사, 미련이 남은 거야? 왜 못 가고 있어~"라며 농담을 건넸다.
나는 외투를 입고,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멘 채 팀장님께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손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던 과장님과도.
잘 지내라는 말, 나가서도 잘 됐으면 한다는 말을 뒤로하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나와 반대로, 남은 사람들에게는 오늘 하루도 평범한 하루일 것이었다. 나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망하는 조직도 아니고, 나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안 돌아갈 팀도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주사님들도 사람 하나 그만둔다고 해서 공무원 생활의 한 켠이 무너질 것도 아니었다. 잘 굴러가는 톱니바퀴들 속에서 조그만 나사로 열심히 일하다가 튕겨 나왔어도 톱니바퀴들은 잘만 굴러갔다. 내 안에서는 내 마지막이 다이내믹하다고 느꼈지만 외부에서 보는 나의 마지막은 평범하고도 평범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운전을 하면서도 나는 싱숭생숭하고도 생경한 느낌과 감각, 그 안에 갇혀있었다. 시작은 뜨겁고 차갑고, 소위 이것저것 다 했지만 마지막은 뜨뜻미지근하게 나의 공무원 생활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