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라비 Nov 19. 2021

[공무원/퇴사일기] 공무원 = 제너럴리스트.

1, 2년마다 새로운 직장에 취업한 기분을 내고 싶다면

공무원 = 제너럴리스트


합격하고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신규직원 전체와 구청장이 함께 점심식사 시간을 가지며 앞으로의 공직 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행사에 참여했었다. (물론 코로나 이전이라 행사 목적으로 다수가 모이는 것이 가능했다.)


점심식사를 하러가기 전, 인사팀 주사님이 버스 통로에 자리잡고 좌석을 팔걸이 삼아 턱 하니 팔을 얹은 채 이런 말을 했었다. 


"아니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요즘은 면접 보기 전에 다같이 무슨 학원같은 거 다녀요?"


우리는 신규직원으로서 용서받을 수 있는 정도의 어리바리함과 바보같음 사이의 "네?"라는, 그 질문을 왜 하는 것인지, 우리를 혼내려는 것인지 등에 대한 많은 것이 함축된 한 마디의 대답 뒤, 인사팀 주사님은 이렇게 얘기했다. 면접 질문 중 공무원에게 필요한 덕목과 능력을 묻는 문항에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은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었단다. 


하지만 면접을 준비했던 공시생들은 가족이나 친구가 공무원이 아닌 이상 공무원 면접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리 전혀 없었고, 구청 홈페이지의 조직도나 구정백서를 뚫어지게 쳐다봐도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다라고 정확하게 얘기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나는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공무원 개개인의 업무목록을 보며 거의 소설을 쓰는 식으로 공무원의 업무를 상상해보는 수준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방식으로 끼리끼리 모여 면접 스터디를 준비했던 공시생들은 어디선가 준비해 온 몇 년씩 지난 공무원 준비용 면접 책을 끼고서 면접에 나올만한 질문들을 골라 소위 '모범' 답변을 참고하여 그에 대한 대답을 달달 외웠다. 


그 몇 년 지난 공무원 준비용 면접 책의 모범 답변은 공무원이 가져야 할 덕목과 능력 중 1순위가 청렴함이라 적혀있었다. 그래서 많은 공시생들은 '공무원의 제1순위 덕목 = 청렴함'이라고 굳게 믿고 그에 대한 대답을 달달 외워가 면접위원들의 아쉬움을 이끌어냈으며, 나 또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청렴함'을 언급해 그 아쉬움에 +1을 더했더랬다.


그렇게 신입이었던 나는 공무원 업무에 대해 하나도 모른 상태에서 처음으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전문성'에 관련한 것이다보니 공무원의 업무가 굉장히 전문적이고 깊이 들어가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1~2년 사이에 보직이 휙휙 바뀌었다. 주민센터 민원대에서 일하며 인감이나 등초본을 뗐던 업무를 하다가도 갑자기 청으로 발령이 나 장애인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고, 청에서 열심히 체육시설 관리와 행사를 준비했다가도 갑자기 주민센터로 발령이 나 주민자치회, 통장님들과 씨름해야하기도 한다.


전문성의 'ㅈ'이라고는 하나도 구경할 수 없는 업무 환경이었다. 본인 업무에 대해 좀 더 익숙해지고, 전문성의 'ㅈ' 정도는 가질 때가 되면 어김없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3년은 되어야 전문성의 'ㅈ'이라도 가지고 일을 할텐데 그게 대체 되질 않는다. 


기존에 맡았던 업무와 비슷하거나 연계되어 있는 업무를 맡는다면 억울하지도 않다. 어제까지 나는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법과 인감증명법,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가지고 업무를 처리했는데, 오늘부터는 청으로 발령 나 교통안전법이나 공동주택관리법을 공부하고 그에 맞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나는 공무원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법률과 지침을 가지고 씨름해야 되는 줄 상상도 못했다.


'공무원은 1, 2년 정도에 한 번씩 보직이 바뀌어요.' 


이 말... 깊게 새겨들었어야 했다. 그냥 '아, 자리 좀 자주 바뀌는 편이구나'라고 생각이 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었다. 2년 만에 합격했다는 그 사실에 흠뻑 심취해있었던 나는 그 이후의 일은 그 이후에 생각하자고 단순하게 저 말의 후폭풍을 생각하지 않은 채 발을 들인 것이다.


특히 내 직렬인 '일반행정'은 복지국에서도, 환경국에서도, 교통국에서도, 도시국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처음 일하게 된 복지 관련 팀 안에서는 단 한 사람, 내 사수를 빼고는 팀장님부터 차석 주사님, 서무 주사님 모두가 일반행정직이었다. 거의 모든 분야의 일을 해낼 수 있어야 했다.(물론 소수 직렬도 마찬가지의 환경이다.)


"공무원은 도대체 무슨 업무를 하는 거지?"에 질문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공무원은 "제너럴리스트"이다.

작가의 이전글 [공무원/퇴사일기] 허겁지겁과 얼떨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