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타다오의 철학을 읽다
따라라라랏따~ 따라라라~
90년대를 살았다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문만 열리면 자동으로 재생되던 그 음악.
바로 MBC 러브하우스의 BGM이다.
러브하우스는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을 탈바꿈해 주는 프로젝트성 예능으로, 그 사연도 구구절절해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감동적인 예능이었다.
그 당시 건축업계에서 유명했던, 건축가들이 MBC와 협업하여 건축설계부터 시공을 담당했는데, 러브하우스의 간판 건축가는 단연 양진석이었다.
(노래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최근 21년에도 앨범을 냈다. 진심으로 한결같은 사람)
안도 타다오를 알게 된 건 건축가 양진석과 관계가 있다. 우연히 그의 책을 보다가 노출 콘크리트식 건축을 마주하게 된 것.
건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고등학생이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딘가 미완성된 느낌이긴 했지만, 상당히 절제된 표현과 회색빛 콘크리트가 주는 심플함이 한편으로는 꽤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안도 타다오라는 이름은 내 머릿속에서 잊혔다. 그리고 다시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알쓸신잡 시즌2 방송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가 설계한 건축물을 만나 볼 수 있는데, 때마침 올해 뮤지엄산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전시 안도 타다오: 청춘이 진행 중이다. (뮤지엄산은 2015년에 시작해 8년에 걸쳐 설계, 완성한 그의 대표 건축물이다.)
전시회를 가기 전에 그에 대해 이해해보고 싶어 자서전을 펼치게 되었고, 책에서 그의 건축 철학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자서전을 읽기 전까지는 안도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노출 콘크리트 밖에 없었지만, 왜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에 이름을 올리게 됐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은 불편한 것은 자연히 멀리하게 되고, 점점 편안함만을 찾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역세권을 넘어 슬세권, 팍세권을 넘어 숲세권 같은 말이 생기는 것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그가 건축가로 데뷔한 첫 설계 ‘스미요시 나가야’에서 그의 주거 철학을 정확하게 마주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안도를 향해 비난을 쏟아부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비가 오는 날 침실에서 화장실까지 가려면 난간도 없는 계단을 우산을 쓰고 가야 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안도는 철저하게 주거란 무엇인지 계산하고 설계한 건축이라고 했다.
“주거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 중략)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은 그 풍요뿐만 아니라 그 가혹함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내 돈을 주고 집을 짓는데, 왜 그런 불편함까지 감수하면서 그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충분히 들 수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안도의 말을 곱씹어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름에 덥고, 겨울이 추운 건 자연의 섭리인데 불편하다는 이유 만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자연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거부하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모두가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점에 안도의 주거 철학은 단순히 주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건물을 소모품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 안도의 의견에 매우 공감됐는데, 이 부분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적용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지을 것인가와 더불어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살려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자서전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탈리아의 고재 은행을 통해 이탈리아인들의 지혜도 엿볼 수 있었다.
이 은행은 르네상스 시기 전후에 지어진 건물을 해체할 때 건자재를 모아서 보존하는 곳인데, 역사적 건조물을 개수할 때는 이곳에서 자재를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르네상스의 문화 거점 베네치아가 해상도시라는 입지 때문에 늘 건자재 부족이라는 역사적인 사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활용 전통을 현대까지 살아 있게 만든 것이 옛것에서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후세에 전하는 것을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이탈리아 인의 뛰어난 국민성은 우리가 마땅히 본받을 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도시를 계획할 때 100년, 200년이라는 단위로 도시를 생각하는 이탈리아. 그 반면 한국은 도시계획을 단기간에 빠르게 해결하려는 태도가, 결국 또 다른
문제점을 낳게 한다. (김포 골드라인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상생활과 가치관의 문제까지 살펴서 궁리한다면 건축의 가능성은 더욱 넓어지며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의 건축 철학을 마주하며,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한계를 이미 명확하게 만들어두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했다. (편리함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인지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인생의 행복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참된 행복은 적어도 빛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본다.”
빛과 그림자의 건축, 안도 타다오
그 속에는 건축 세계에서 40년을 살아오며 그가 온몸으로 경험하고 축적한 철학이 담겨있었다.
노출 콘크리트 건축을 고집하는 것은 창조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라고 했던 안도를 보며, 삶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