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이 마음을 이끌 때 2025. 09. 08
"어린 날 그의 부모의 이야기가, 조금 졸려오던 한낮 여름 교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김복희,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 (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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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문고입니다."
"여보세요, 도서 문의드려요"
"어떤 책이요?"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
"…."
"있어요?"
"김복희 작가요"
"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산책만 시켜주고 그냥 보내려니 아쉬운 맘에 펼쳐 들었다. 함께 시를 읽고 서평도 나눠보는 동아리인 '시나브로'에서 김복희 시인의 『보조 영혼』이 정해졌을 때 상호대차까지 한 책인데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대여도서라 밑줄을 그을 수 없는데 첫 장부터 밑줄 긋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중 다행으로 새로 알게 된 앱이 떠올라 잔뜩 저장하던 그때,
저 문장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왜 마음에 닿았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내가 의외로 어려워하는 건 모르는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이다. 서비스센터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거는 것, 받는 것이 몹시 힘들다. 또박또박 잘할 것 같다고 그게 왜 어렵다고 다들 물어오지만 난, 그게 힘들다. 전화하기 전까지 꽤 꾸물거리거나 심호흡하기도 한다.
그런 내가, 바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우리 동네 스타벅스 옆에는 아들과 종종 이용하는 서점이 있다. 동네 특성상 서점의 절반 이상이 문제집으로 가득하지만, 다른 한쪽에 의외의 책들을 만날 때마다 신기했다. 이게 있을 줄이야.
지난번 아이와 들렀을 때, 어린이 책이 주로 있던 서가가 비어 있었다. 혹시나 서점이 없어지나? 덜컹하는 마음에 물었더니 사장님의 푸념이 이어졌다. 서점에서 보고 온라인으로 구매한다는, 쿠팡이 도서까지 손대니 어렵다는, 저 서가만 줄여도 몇천이라 하셨나 억이라 하셨나? 수에 약하고 기억력마저 형편없는 나는 정확하진 않으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낮 12시의 서점은 책과 사장님과 나뿐이었다.
"사장님, 금방 그 책 주세요."
옆 건물이라 2분 남짓 만에 도착해서 물었다.
"근데 찾아야 해요. 어딨는지 몰라."
"못 찾으세요? 기다릴게요."
벽 쪽 서가를 두리번거리던 아저씨는 곧 어디론가 전화했다.
"에세이예요. 사장님!"
성질이 급한 나는 얼른 덧붙인다.
"그거 어딨어? 에세이인데, 판타지 옆에 있어? 달 출판사. 어, 그래, 응. "
어느새 나도 옆에서 보물 찾기라도 하듯 눈으로 함께 찾고 있었다. 먼저 보물을 찾은 건 나였다.
"여기 있다!!"
그게 왜 그리 신나고 좋았는지 모른다.
진짜 보물이라도 찾은 듯.
"근데 어떻게 이 책도 가져다 놓으셨어요? 최고예요! "
"우리 부장은 모르는 게 없어. 다 알지."
"늘 계시는 여자분요?"
전화기 너머로 눈에 보이는 듯, 책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그분도 대단하게 여겨졌다.
갑자기 머릿속에서부터 소름이 돋은 건 그때.
"어우, 사장님. 저 소름 돋았어요. 멋있으십니다."
평소에 츤데레와 무뚝뚝의 어디쯤인 아저씨는
"아까 애가 물어보는 줄 알았잖아. 목소리가."
하면서 멋쩍게 웃었다.
오늘 아침, 잔뜩 찌그러진 얼굴과 물먹은 스펀지 같은 몸으로 소파에 멍하니 있었다. 나가야 좀 나아지겠지. 한걸음 나설 수 있을까. 아냐 그냥 웅크리고 있을까.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여러 번 마음을 고쳐먹고 나왔다.
그래, 그래, 나오길 잘했어.
오늘은 이걸로도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