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22
'엄마면 알았어야지. 내 얼굴 보고 알아챘어야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가슴이 철퍽하고 큰 돌멩이 하나가, 던져지는 말이다.
영화 내내 청소년이 된 나의 아이를 떠올렸다.
내 세계에는 내 이름보다는
엄마라는 이름이 더 크게 자리 잡은 이유다.
감독의 이전 작품 '우리들'도 그런 연유로 좋았다.
원래 잔잔한 물결 같은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엄마이기에 더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나도 지나왔던 시절이,
우리 아이에게는 버거울까
염려와 걱정과 애달픈 마음으로.
모든 것이 양분되어 큰 상처 없이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저분한 식탁 위, 꽃병 속 시든 꽃.
살림살이가 뒤섞인 거실, 테이블 중앙에 자리 잡은 꽃 뭉치.
시들어 고개를 한껏 꺾은 꽃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툭 치면 잎도 꽃도
툭툭 떨어져 버리겠지.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 향기를 뿜길 바랐을 나의 세계.
단정한 공간 속에 말간 얼굴로 피어나길,
나의 아이가 그런 꽃이길 바랐을 텐데.
영화 속 엄마가 나인 듯 아렸다.
돌보지 못한 꽃이
시들어 잎이 떨어지고 말라버린 꽃 머리가 떨어져도
나의 공간 그 한가운데 놓아두고픈,
그런 마음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길.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걸었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가 튀어나왔다.
십 대의 나로 갈 수 없고
기억은 미화되었는지 훼손되었는지도 가물가물해서
그 나이의 에너지를 느낀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하물며
겪지 않은 일, 발 디뎌 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누군가의 세계를 평가하고 위로하고 재단할 수 있을까.
내겐 옳은 일이 네겐 옳지 않을 수 있다.
모두 각자의 시선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걸 자주 망각한다.
안 아파? 이래도?
모를 수도 있다.
내가 아픈지 아닌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아프면 아프다고 해도 괜찮다.
그렇게 하자.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곳,
선한 목자가 지켜보는 곳.
나의 세계에서.
https://youtu.be/NiXNY2 GwDak? si=kGrRjrgBjYfKVJY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