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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주맘 Aug 26. 2022

콘텐츠, 나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다

32세 나에게 찾아온 불행, 그리고 나를 다시 일으켜준 콘텐츠


 내 나이 20대 후반 1년을 조금 넘게 연애한 남편과 결혼했고, 목숨보다 소중한 첫째를 출산했다. 우리 가족은 평범하고 행복했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이곳저곳을 놀러 다녔고 가족끼리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30대 초반, 존재만으로도 귀여운 둘째가 태어났다. 우리는 네 가족이 되어 집을 넓히기 위해 서울에서 신도시의 한 아파트로 전세대출을 받아 이사하였다. 


 조금씩 성장해나가고 살림살이를 늘려 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고, 매일매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렇지만 결혼 6년 차 우리에게도 불행이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 남편이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남편의 기분이 날카로웠다. 나에게 이유는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직감으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 남편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구나..


 그 당시 우리 남편의 직업은 건축업 소장이었다. 오랜 벗과 같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공사 하나에 들어갈 때 사용되는 건축자재 등의 값이 비쌌고, 돈이 부족할 땐 한도가 높았던 나의 신용카드로 건축 자재 값을 결제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한 번 큰 공사에 들어갔을 때 나의 신용카드 여러 개의 한도를 꽉꽉 채워 공사대금을 마련했는데 동업자인 친구가 모든 공사대금을 갖고 잠적해버렸다.


 늘 가정적이고 웃음이 많던 남편은 그날부터 웃지 않았다.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일도 안 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망간 친구를 찾아다니기에 바빴다. 그 시기 나는 미술학원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렸고 주변에 오랜 시간 맡길 수 있는 기관이 없어서 짧은 시간만 일할 수 있고, 주말에 아이들을 봐야 하니 주말에는 출근을 안 하는 미술학원이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던 최적의 일이었다. 한 달에 170만 원~180만 원가량의 돈을 받고 일했고, 그 월급을 일단 아끼고 아껴서 아이 둘 원비와 생활비로 썼다. 그렇지만 네 가족 생활비에는 역시나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고, 남편은 여전히 생활비를 벌 생각이 없었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침이면 아이 둘을 준비시켜 등원시키고 나는 출근하고 출근시간 내내 서서 일하고 하원 시간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아이 둘을 하원 시키고 씻기고 밥 먹이고 재우고, 이 일상이 반복되었다.


 32살 이 시기의 나를 지금 만난다면 꼭 안아주고 싶다. 그 힘든 시기를 잘 견뎌주어서 고맙다고.. 정말 고생 많았다고..


 그렇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편이 내 신용카드로 몇 천만 원의 사업자금을 썼고 그를 갚지 못해 나의 신용이 바닥이 났다. 게다가 이를 오래 갚지 못하니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신혼 때 우리 친정부모님이 사주신 가전이 경매에 넘어갔다. 어린 시절 부잣집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공무원 부모님 밑에서 늘 안정적으로 살고 인생의 큰 굴곡을 겪어보지 못해 이 시기에 내가 받은 충격이 매우 컸다. 인생 처음으로 큰 우울증이 찾아왔다. 순식간에 내가 만져보지도 못한 돈으로 나에게 큰 빚이 생겼고, 친정에는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릴 수도 없었고,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사랑하는 아이 둘에게 매일매일 평범한 일상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 정말 힘들었다. 인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의 우울감이 나를 집어삼켰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렇지만 이런 나에게 이 무렵 그리기 시작했던 인스타툰 콘텐츠가 나에게 희망을 주었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우울감이 사라졌고 그림을 올리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가 올린 콘텐츠를 즐겁게 봐주고 응원해주면서 그 자체가 나에게 큰 삶의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중독처럼 힘들수록 콘텐츠 제작에 더욱 몰입했고, 그렇게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1년 만에 빠른 성장을 하여 1년 반이 채 되지도 않는 시간 내에 3만 팔로워가 넘는 계정이 되었다. 현재는 미술학원에서 일할 때의 2~3배의 수입을 벌며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또한 콘텐츠로 벌어들이는 내 수입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여전히 내가 우리 가족의 경제적 가장이지만 삶을 놓고 주저앉으려고 했던 내가 이제는 아이들 원비, 학원비, 아이가 갖고 싶은 것 등 모든 것을 내 수입으로 해결해 줄 수 있다. 게다가 콘텐츠 제작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아졌다. 내 아이들의 가장 예쁜 영유아기 시기를 내 눈에 하나하나 다 담아낼 수 있다는 건 인생의 큰 축복이자 행복이다.


 처음에는 남편의 사업이 망한 데에 남편과 남편의 친구 등 나의 주변 환경을 많이 원망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다. 인생에서 큰 힘듦을 겪었던 그 1년간의 순간 덕분에 나는 더 콘텐츠 제작과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고, 더욱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계정을 키워냈으며, 그로 인해 나는 현재 제2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콘텐츠는 나에게 인생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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