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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한 도담이 Nov 12. 2022

캐나다 물 유목민의 슬픈 이야기(2)

무슨 ‘물’을 먹을 것인가?

지난 12월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전기 주전자의 레버를 내려 물을 끓이려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약 삼 년 전, 캐나다에 왔을 때 초기에 들었던 곧 ‘폭발할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사용하던 전기주전자라서 이번에는 진짜 변압기에 오래 사용해서, 혹은 오래 사용해서 바꿀 시기가 온 것인가…하며 얼른 끄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여담이지만 내 손에 들어온 전자제품은 좀처럼 고장이 나질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취하며 쓰던 전자렌지가 아직도 작동할 정도라, 뭔가 고장이 나서 바꾸게 되면 약간 신이 난다.^^;;)


  그러나…내 기대(?)와는 달리 주전자 내부에는 예의 그 ‘하얀 가루’들이 뽀얗게 쌓여있었다. 이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얼른 식초와 물을 붓고 끓이고 깨끗하게 씻었다. 아마도 아이들이 생수를 꺼내오기 귀찮아서 수돗물이나 브리타 물을 그냥 부어서 끓였다고 여기면서 ‘내 이 녀석들 오기만 해 봐!’라고 벼르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냥 잊었던 것 같다. 막상 아이들 실어 나르고 식사 준비하고 하다 보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들은 쉽사리 기억 저 편으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밤.


  매일 밤마다 워터픽으로 양치질을 마무리하면서 차가운 물 보다 미지근한 물이 좋아 전기 주전자에 생수를 끓여 브리타 물과 섞어 사용하는데, 그날 따라 끓여 부은 물이 우윳빛깔이었다. ‘어라, 뭐지?’하면서도 너무 늦어서 그냥 정리하고 잠들었다. (그때 까지도 나는 한 치의 의심이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전기 주전자에서 소리가 났고, 뚜껑을 열어 보니 정체 모를 기름 같은 것과 하얀 가루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전 날 간식으로 컵라면을 먹겠다고 했던 일이 떠올라 ‘이 녀석들!’ 하며 씻어내고 다시 물을 끓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도대체 왜 전기주전자에 수돗물 끓인 거야? 아님 브리타를 끓였어?” 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아이들은 금시초문이라 했다. 미궁에 빠지고 다시 그날 밤. 물을 끓여 부은 나는 또다시 기겁했다. 둥둥~떠다니는 하얀 가루들을 보며 그제야 생수를 강력하게 의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난 몇 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정말 잘 마시던 생수였는데.


  날이 밝자마자 나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실험을 감행했다. 직접 끓여서 남는 석회를 확인해 보기로 한 것이다.

*실험을 하다- 생수의 배신


1. 준비물 - 검은 코팅 프라이팬, 여러 종류 물, 하이라이트. 끝.

2. 방법 - 일정량의 물을 프라이팬에 끓여서 남은 흰색 물질(?) 관찰. 끝.


결과는 참담했다.

  흰 물질은 물론이고, 희한하게도 알 수 없는 기름 같은 것이 떠돌다가 말라 버렸다. 한 병을 다 끓인 것이  아니라 200ml만 끓인 결과였다. 믿었던 ‘돈 주고 산’ 물에 또다시 배신당했다. 그동안은 정말 괜찮았는데. 수원지를 바꿨던 건지 설비를 바꿨던 건지. 하얀 석회(로 추정되는) 보다 더 찝찝하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름 같은 물질. 허얼………. 네슬레도 나를 배신하는구나.

대기업(?) 물의 배신.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해서 비교를 해보자’하며 시작된 무한 물 끓이기. 끓이고, 찍고, 깨끗하게 닦고 다시 끓이기.


우와아… 정말…..끝내준다.


세상에 믿을 물은 무엇인가!!!!!!


그리고 끝내 찾아낸 더 ‘비싼’ 물.


  거듭된 실망 덕분에 깨끗한 프라이팬이 오히려 더 놀라웠다. 드디어 정착할 물을 찾았다. 그래, 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더 비싼 가격 때문인지 늘 재고가 있던 이 물이 우리가 물을 바꾼 이후 재고 찾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졌다. 그리고 원래 먹던 생수는 마트마다 남아돈다. 사람들도 물 맛의 변화를 눈치챈 것일까? 뭔가 믿을만한 물을 드디어 찾았지만 수시로 물건이 들어오지 않는 이 시골마을에서 재고가 달리는 물을 매번 찾기가 어렵다. 눈에 띌 때마다 사서 쌓아 놓을 수밖에. 아마도 나의 실험은 낯선 생수를 찾아서 계속 시도될 것 같다.


산 너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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