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대한 새로운 정의
”카톡!“
한국에 계신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춥다. 여기도 이제.
캐나다 시골에서 평생 겪을 추위란 추위를 한 번에 겪고 있는 딸인걸 알고 계시지만 아마도 한국이 갑자기 확! 추워져서 ‘여기도 추워졌어.‘ 뭐 대략 이런 의미로 보내신 것일 테다.
그에 대한 나의 답은? 달랑 스크린샷 한 장.
허.허.허
옛 조상님 들은 참으로 현명하시다. 이렇게 적절한 상황설명의 말을 전해주시다니 말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영하 25도가 넘어가면.
일단 밖에서 숨을 쉬면 내게 ‘콧 털’이 존재함을 알 수 있고,
입으로 숨을 쉬면 폐로 곧바로 찬기가 몰려 위험하므로 코로 조심조심 쉬어야 하며,
집 유리창들이 일제히 얼어붙어 열리지 않고, (환기 불가)
내가 내쉰 숨에 섞인 습기가 머리카락에 하얗게 얼어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시 도착한 엄마의 톡.
어떻게 사냐!
이 기온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면, 여기 포센존에 겨울 시즌 동안 방문하면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퍽’ 잘 살아가고 있음을 말이다. 이 기온에도 일하고, 학교에 가고, 식료품을 사고. 일상은 계속된다. 신기하지만, 한 편으로는 당연하게도.
어느새 다섯 번째 포센존의 겨울.
“오, 내일은 영하 16도 밖에(?!) 안되네. 따뜻하겠어.”
허세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