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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한 도담이 Jan 12. 2023

크리스마스이브. 눈밭에서 구출되다!

캐나다에서 인류애를 발견한 이야기

어김없이 돌아온 연말 휴가.

캐나다에 와서 매년 그랬듯이 올해도 에드먼튼 쪽으로 떠났다. 올해 겨울엔 12월 중순까지는 눈도 별로 많이 오지 않아 도로 사정도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기온도 떨어지고, 눈도 갑자기 많이 오기 시작해서 장거리 운행이 걱정되었다.


그렇지만.

‘뭐. 천천히 조심히 가면 되겠지. 언제는 안그랬나?’하며 호기롭게 출발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그리고 여기는 캐나다 외곽.

대부분의 식당들도 문을 닫아서(심지어 ‘버거킹’이 문을 닫았을 정도이니.) 몇 차례 허탕을 친 후 중간에 들른 편의점에서 간신히 먹거리를 구해 아쉬운 대로 일단 허기를 채웠다. 에드먼튼에 도착해서 먹을 맛난 음식들을 상상하면서 서로를 독려(!)하며 열심히 달려갔다.

(이 때는 미처 몰랐다. 이 편의점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 양식이었는지를!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더니.)


그렇게 전체 일곱 시간 정도의 이 날의 여정 중 어느새 두어 시간 정도만을 남긴 시점에서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Fox creek’이라는 곳을 지나 ’White court’로 가는 길의 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눈이 쌓이고 그 눈이 얼어있었는데, 아직 제설 차량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도로는 자못 위험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덮인 캐나다 도로에 대한 경험치가 이미 4년. 속도를 낮추고 조심조심 달려가면 된다며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한 치 앞을 몰랐던 우리.

원래 이런 도로에서는 조심하는 남편이 하필 이 날, 앞서가던 트럭이 속도가 느렸던지 추월을 시도했는데 트럭이 갑자기 속도를 내면서 추월이 여의치 않게 되었다.

“어! 어~~~~~~~~~~~!”

바퀴가 미끌리며 도로를 이탈해 양쪽 통행차로 중간의 눈 밭에 들어가 버렸다.

(상, 하행 사이에 넓은? 공간 가득 눈이 쌓여 있었다.)


이런.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 눈에 막혀 차가 멈춰버리고 와이퍼가 거칠게 움직이고. 눈발은 내 주먹만 하게 날리고(과장이 좀 있다.^^;;) 이미 날이 저물어 사방은 어두컴컴. 주위를 둘러보아도 불빛하나 없고 오로지 나무들만 무성했다.

한숨이 나오는 풍경. 다시 봐도 아득하다.


다행히(?!) 어딘가에 걸리거나 부서진 소리가 나지 않아서 우리끼리 차 앞의 눈을 치우고 어떻게든 차를 빼 보려고 했지만 경사에 눈까지 쌓여 차는 요지부동.


크리스마스이브에, 갈 길은 멀고. 소도시와 소도시 사이의 고속도로라 도움을 요청할 곳도 마땅히 없는 곳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정말 막막했다.


그. 러. 나…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났다!


차가 멈춰 선 지 불과 오 분 만에 지나가던 차들이 멈춰 서서 상황을 물어보고, 직접 연락해 견인차를 연결해 주고, 그중 한 분은 경찰차가 올 때까지 멈춰서 기다려주었다. 뒤이어 이십 분? 정도 지나 도착한 경찰은 보험증을 확인하고 견인차가 도착해 우리 차가 무사히 출발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떠나지 않고 지켜주었다.


견인차가 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는 차로 삼십 분 남짓. 우리는 차가 멈춰 서고 대략 한 시간이 지나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발할 수가 있었다!

이 날 눈발은 정말 심상치가 않았다.
다양한 손길들을, 나는 오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눈발이 성성하게 날리고 날도 무척 추웠지만, 우리는 그날 아무도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 춥고, 인구가 적어 때로는 한없이 외로운 지역에서 사람들이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꽤 시간이 흘러 뒤늦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들의 따뜻함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다. 아마도 평생 기억하게 되겠지.


그리고 다시 굳게 다짐을 한다.


앞으로 더욱더 착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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