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가 만든 해프닝.
아, 정말. 내가 아주 기가 막힌 걸 봤어.
어느 날 저녁 식탁에 앉아 여느 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생각난 듯 아들이 강한 어조로 말을 했다.
“왜, 무슨 일인데?”
“학교에서 학생 자체 행사를 하는데 무슨 ’ 스모대회‘를 한다고 포스터가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데, 글쎄 ’Rising sun’ 문양을 넣었더라고. 아주 내가 눈에 띌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고.”
아….
음….
수많은 외국의 전통 경기들 중 굳이 ‘스모’를 캐나다 고등학교에서 행사로 진행하겠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그 홍보를 위해 ‘전범기’를 활용하다니?
(개인적으로 스모의 비주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서양 문화권에서 나치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는 아주 금기시되는 상징으로, 일상생활에서조차 언급하기도 꺼려하는데 반해, 일제의 전범기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오히려 일본을 ‘힙’하게 상징하는 문양쯤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고 경험을 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럼, 네가 고쳐. 알려줘.”라는 나의 말에, 아들은 그래야겠다며 담당 선생님께 이메일로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비장하게(?) 결심을 하고 등교했던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결과를 알렸다. 이메일로 일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일제 전범기가 상징하는 의미가 나치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것임을 설명했다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학교의 무척이나 빠른 대처였다. 오전이 다 가기 전에 교내 붙여졌던 모든 스모 홍보 포스터가 ‘글래디에이터’로 바뀌어 붙여졌다고 한다.
물론, 고등학교에서 애초에 ‘전범기’에 대한 무지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뒤이어 보게 된 일련의 과정-학교가 학생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무언가 잘못이 인지된 순간 지체 없이 시정한 학교 측의 대처-를 보며 뭔가 신뢰감이 생기는 계기도 되었다.
정말 잘했어. 아주 뿌듯하다!
큰 일(?)을 해내고 온 아들에게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약 8여 년 간, 대부분 해외에서만 성장한 아이가 우리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이 정도의 이해가 있고,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캐나다 학교에 직접 행동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결과를 이끌어 냈다는 사실에, 나는 엄마로서 정말 뿌듯했다.
마음이 불편한 일도 해결이 되고, 아이도 대견하고.
내내 미소가 머금어지는, 그런 기분 좋은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