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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진 May 04. 2023

삶은 B와 D 사이의 C

강원 평창, Mill Bridge

 나는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런 내게 마땅한 자아라고 부를만한 것이 생겨난 이후로_14살쯤 되었을까_처음으로 발견한 '나'라는 존재의 의도와 목적은 공부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는 것, 그로 인해 기뻐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것. 앞으로 나아갈 길이 분명히 보였기에 이 때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혼란과 불안의 내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말한 의도와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이후에 시작되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는, 길을 잃은 기분. 그리고 무언가를 따라가는 방식에 길들여져있던만큼 크게 느껴졌던 상실감까지. 이러한 감정의 기원은 무엇이었을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_장 폴 사르트르


 의자는 앉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펜은 글씨를 쓰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것이 의자와 펜이 만들어진 의도이자 목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의도와 목적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할 지 정해진 것이 없다. 인간은 우선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이 무엇으로 정의가 되느냐는 그 후의 일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라는 큰 틀 속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나의 본질을 만들어나간다. 그렇다. 그토록 애집하던 것을 이룬 뒤에 오히려 혼돈의 질곡 속에 유폐되었던 것은 내가 본격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있다.
_장 폴 사르트르


 삶은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한다.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날 것인지,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선택지 앞에 놓여있다. 선택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하며, 이것은 삶을 고달프게 만들기도 한다. 선택을 포기함으로써 비참한 탈출을 꾀하기도 하지만 선택을 하지 않는 것조차 선택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결과 역시 존재한다. 결국 어느 누구도 이 겁박아닌 겁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택은 언제나 불안을 수반했다.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덧없이 스러졌던 과거의 절망스러운 경험은 현재 어떤 것을 선택할 때에 어김없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선택이라는 배낭의 무게보다 더욱 육중하게 어깨를 짓눌렀던 건, 선택한 후에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날개를 펴는 것이었다. '오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을까.' 고개를 저으며 애써 발을 뗐지만 선택의 근원적 불확실성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살수록 단순하게 살고자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런 수순이리라. 선택은 자유임과 동시에 불안이라는 굴레이니까.


나는 나의 선택이다.
인간은 이미 가진 것의 합이 아니라,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 갖게될 것의 총합이다.
_장 폴 사르트르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선택을 통해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선택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광대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선택적으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재화뿐만이 아니다. 불가시적인 상황이나 현상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감정과 느낌까지도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선택의 쳇바퀴 안에 놓여있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내 삶은 지옥이 될 수도, 천국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선택의 스펙트럼을 얼마나 더 넓은 시야로 관찰할 수 있느냐이다.


 결국 불투명한 현실 속에서 궁극적으로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 선택의 중압감에 힘없이 내리눌리고 말것인가. 불안의 대용물을 자꾸 모음으로 지질한 도피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선택을 마주하자. 오늘 이 순간조차도 선택의 불안에 압도되어 눈앞에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을 더욱 크고 넓은 세계 속에서 바라보고, 더욱 많은 것을 능동적으로 선택함으로서 선택을 이겨내야 한다. 나는 스스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많은 것들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자기발생적-대자(對自) 존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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