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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움 Sep 23. 2019

안 써본 글들을 써보기로 했다

 글을 써온 시간을 돌아보았다

글을 쓰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앉았건만 멋쩍다. 얼마나 멋쩍냐 하면 뒷목이 살짝 뻣뻣한 것 같고 타이핑도 평소보다 느린 것 같고 어쩐지 몸까지 간지러운 느낌이다. 오늘 아침에 샤워했는데!


물론 나의 친구들은 반문할 것이다. 아니, 인스타그램에선 에세이(쎄쎄쎄)를 연재하고, 브런치에는 인터뷰(매직카펫 매거진)를 올리는 사람이 무슨 소리냐고.


하지만 쎄쎄쎄는 공동 운영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콘셉트가 주어져있기도 하고 매직카펫 매거진에서 나는 인터뷰어로서 나의 관점을 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글의 주인공은 인터뷰이인 걸. 

이쯤 되니 내 안의 ‘버럭’이가 성을 낸다. 웅얼거리지 마!

<인사이드 아웃>의 버럭이

 “도스토예프스키가 되지 못할 거면 글도 쓰지 말아야 하나요?”라고 말해준 사람도 있었다. 일단 쓰라고 나를 부추기던 사람이었다. 이 말에 한 방 얻어맞은 게 몇 년 전이고 지금은 글쓰기 프로젝트도 여럿 하는 중인데 이다지도 자신감이 없다니.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버릇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올해, 나의 지난 역사를 좀 더 애정하고 자부심, 자신감을 가질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돌아보는 사람들 앞에 내 글 내놓기의 역사.


대학 시절 인문대 교지편집부 시절

편집장도 했었다. 이때 처음 내 글이 인쇄되어 나오는 걸 경험했다. 그 중압감이 어마어마했는데 나의 글이 실린 첫 교지를 챙겨두고는 한 번도 열어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나의 첫 인터뷰도 이때였다. 인터뷰란 늘 기분 좋은 긴장감을 준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인터뷰이 선배를 만나러 가던 여름날, 예의를 차리느라 갖고 있던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갔던 기억이 난다. 풀리지 않던 글이 마감 직전에 술술 써지던 기적을 경험했던 새벽도.


역시나 대학시절 미장센 단편영화제 데일리지

국내 단편영화제 중에 가장 주목받는 영화제. 한창 영화에 빠져있던 시절이라 영화제 기간 동안 매일 지면으로 인쇄되는 데일리지의 특성상 마감을 하고 밤늦게 항상 집에 들어가는데도 신나게 일했다. 지면의 한계상 신문의 단신 정도 분량의 기사로 관객과의 대화 현장,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이때의 글은 온라인에도 동시 게재되었는데 찾아보니 여전히 검색된다. 오호. 나홍진 님(이메일 인터뷰) 양익준 님과도 인터뷰를 했던 걸 구글링을 통해 알아낸 나의 기억력이란...


언론 홍보하는 직장인

물론 이 시절에 쓴 글은 보도자료다. 가장 많이 글을 연습했고 고민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단문으로 끊어 쓰는 문장, 정보의 중요성에 따라 문장을 만들고 배치하는 방법 등등. 아마도 내 이름을 대고 쓰는 글을 쑥스러워하게 된 건 이 시기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물론 같은 훈련을 받았어도 쓸 사람은 모두 쓰는 법이니 이런 해석은 무용하다.


글쓰기 모임

매월 한 권의 책을 읽고 소재를 정해 글을 쓰는 모임을 1년 간 했었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관심이 많던 사람들이었고 항상 서로의 글에 피드백을 해주었다. 이때 썼던 글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브런치에 올린 글은 페이스북에도 다시 공유했다. 이게 2018년. 이때부터 나는 온라인상에 나의 글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의 쎄쎄쎄와 매직카펫 매거진까지.


다시 한번, 자신감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기 객관화가 지나쳐서 문제였지 모자라서 문제였던 적은 없었다. 내가 머리를 쥐어짜며 써왔던 시간들, 그렇게 쌓인 글들의 숫자를 있는 그대로만 봐도 괜찮을 일이다. 그리고 글에 담길 나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다. 괜찮다. 더 예뻐하자. 


이 글은 그동안 써왔던 글과는 또 다른 글들을 써가기 위한 시작, 마음다짐과 같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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