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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움 Dec 23. 2019

<이참에 읽어볼까나> 독서모임 회고

2019년 회고 시리즈. 염치에 대해 생각하다.

하반기에는 빌라 선샤인에서 <이참에 읽어볼까나>라는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김보름 님과 함께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 불평등에 대한 책들을 쭉 읽어보기 위해서였다. 그전부터 읽어보고 싶다 생각은 했지만 사두기만 하거나 완독 못했던 책들을 모아서 독서 리스트를 짰고 사람들과 모여서 9월부터 12월까지 4달간 5권의 책을 읽었다.


<책 리스트>

로버트 퍼트넘의 <우리 아이들>

J.D 밴스 <힐빌리의 노래>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발자크 <고리오 영감>

리처드 리브스 <20 VS80의 사회>


보름님의 표현을 빌자면 생각의 출발선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독서모임이어서 마음껏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현실에서 마주한 관련 이슈들과 이에 대한 생각들을 가감 없이 나누었다.


일련의 책들을 읽고 난 나의 키워드는 ‘염치’다. 점점 더 걍팍해지는 제로썸의 게임에서 자신이 서있는 바닥이 더 내려갈까 봐 겁에 질려있는 모습이 요즘의 우리 사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서로가 약자라며 내가 더 힘들다고, 나한테 너무 불공평한 사회라고 외쳐댄다.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올해의 몇몇 뉴스들…) 나에게 이 문제는 '염치'의 영역이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20 vs 80의 사회>에서 리브스는 상위 1%가 아니라 상위 20%가 문제라고 말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교육과 기회 사재기를 통해 계급은 세습되고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계급 경직성은 강화되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계층의 문제 외에도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빈약한지, 자신이 타고난 특권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해 올해 여러 사건을 보며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특권은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 중 하나였다.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안 되니 약자로서의 자신만을 정체화한다. 그래서 다들 억울하다. 하지만 계층, 성별을 비롯한 다양한 자신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 중에서 우리는 때로는 특권층이고 때로는 약자다. 여러 정체성이 교차되어 만들어진 우리가 약자로서만 존재하거나 특권층으로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사회적 범주에서 바라보며 자신의 좌표를 객관적으로 살피고 함부로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 것. 내가 받은 혜택, 특권을 바로 인식하고 제대로 평가할 것.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 것. 이것이 내가 요즘 생각하는 ‘염치'다.


하나 더. 아무래도 이번에 읽은 책들 중 두 권이 교육이 어떻게 계급을 재생산하는지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 대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내가 다음 세대의 문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4개월 동안 책을 읽으면서 종종 스스로에게 물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전쟁, 빈부 격차, 환경오염으로 참혹한 세계에서 인류에게 다음 세대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 묻고 있었다. 출생률 0%의 사회를 영화를 통해 상상할 수 있었다. 인류의 멸종만이 예비된 세상엔 생기가 없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는 것과 인류에게 다음 세대가 없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다음 세대가 좀 더 나은 사회에서 살길 바라는 건 내가 누군가의 부모여서가 아니라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앞선 세대에게 받은 만큼 또 다음 세대에게 기여해야 하기 때문이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9년의 하반기에 읽은 이 책들은 사회 속의 내 좌표를 생각해보게끔 했다. 그 좌표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무엇보다 이렇게 큰 주제에 대해 맥락을 가지고 계속 토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좋았다. 우리의 토론이 입에 발린 옳은 말들이 아니라 자신이 발 붙이고 있는 현실로 책을 끌어와서 적용해보고, 자신을 반성하면서 서로에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읽고 나면 토론을 해야 한다.  


내년에도 <이참에 읽어볼까나>를 계속할 생각이다. 2020년에도 독서와 토론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나의 현재를 점검하고 생각을 다듬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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