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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해리 Aug 25. 2023

24시간 영업 심야 분식점 떡볶이 혼밥 침입, 짜릿해

로제떡볶이 그게 뭔데? 소심하지만 인생과 도전은 셀프다.


“죄송하지만 밑반찬 좀 주실 수 있나요?”

“아, 우리 매장은 물 반찬 모두 셀프예요. ^^”


10개 넘는 테이블을 갖춘 매장. 강남 어느 오피스 상권. 밤 11시 49분. 강남 메인 거리 (강남에 대해 아는 건 지도 앱에서 몇 번 정도 살펴본 게 전부임. 정확히 강남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지만 밤낮으로 사람들이 붐비는 것처럼 보이는 거리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아닌 곳에 위치한 어느 분식집. 물과 반찬이 셀프, 인생은 셀프…


강남에 도착한 건 오전 8시였습니다. 오전 8시부터 그때까지 먹은 거라곤 오리지널 클래식 김밥 한 줄. 지도앱에서‘음식점’을 검색했습니다. 00 국밥집, 00 고깃집, 00 치킨집. 이면도로에 있는 피자집까지.. 강남에 위치한 숙소 주변에 있는 음식점 앞까지 갔지만 문을 열기 어려웠습니다. 나는 일행 없는 혼자이고, 식당 내부와 외부에는 술과 담배 냄새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음식점 문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왔을 때 알았습니다.


‘낮 강남’ 씨와 ‘밤 강남’ 씨는 다르다는 것을요, 빌딩숲 골목 네온사인은 술의 힘을 빌리기를 원했습니다. 깔끔한 도시는 광란의 밤을 품고 있었습니다. 가로등이 없는 골목에서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누군가가 불빛이 있는 골목에 서있는 고독한 야식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쫄보는 그 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나옵니다.


다시 숙소로 향합니다. 숙소 로비입니다. 강남 주민이 아닌 사람이, 강남 모 숙소에서 근무하는 직원 분께 식당추천을 부탁합니다. 다행히 상대는 친절하였고 기꺼이 24시간 영업 분식집을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숙소에서 도보 10분 거리. 횡단보도 2번을 건너서 도착합니다. 유리문 바깥에서 분식집 안을 빠르게 스캔합니다. 마치 안전함을 찾는 소년처럼. 문쪽에 위치한 테이블은 외국에서 오신듯한 관광객 2분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왼쪽 대각선 앞에는 저처럼 혼밥 하는 분이 보였고요. 주방 근처에는 배달 라이더 아저씨 1분께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습니다. 얼른 테이블 하나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평소부터 궁금했던 ‘그’ 메뉴를 주문합니다.


“죄송하지만 밑반찬 좀 주실 수 있나요? “

“아, 우리 매장은 물 반찬 모두 셀프에요. ^^”


사실 그랬습니다. 선택지는 꽤나 다양하였습니다. 배달음식, 편의점도 있었고, (아니면 술과 담배를 싫어하지만) 철판 깔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당당하게 혼밥 하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요? 배달음식이 당기지 않았습니다. 좁은 숙소에서 홀로 양이 푸짐한 배달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어요. 다 먹지 못하고 남겨도 추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오늘 하루 진짜 고생이 많았는데 편의점 냉동음식 배 채우기는 싫었습니다. 강남 네온사인에 취해 한잔 기울일 수 있었지만 그조차 결말이 보이는 영화 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숙소 직원분의 추천 (적어도 나보다는 많이 알 것이라고 생각함) 24시간 영업 분식점이 좋았습니다. 물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어요. 잠도 자야 하니 시간도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식사한다고 비싼 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4시간 영업 강남 분식집에서 혼밥으로 주문한 메뉴는 무엇일까요? 떡볶이를 시켰습니다. 그냥 떡볶이도 아니고 로제 떡볶이를 주문했습니다. 7000원 정도 했는데 그 정도면 평소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충분하고도 남는 돈이었습니다. 하도 주변에서 로제, 로제, 로제 떡볶이 노래를 부르길래 도대체 그게 무슨 떡볶이길래 저라나 싶어서 주문했습니다.


분식집은 보통 식사, 분식, 사이드, 음료 이렇게 메뉴를 준비하죠. 식사류에는 소울푸드 제육볶음, 돈가스, 찌개 등이 있고요. 분식류 카테고리 대표 선수는 김밥, 라면, 떡볶이인 것 같아요. 김밥은 간식으로 먹었고, 라면은 최근 먹었으니 선택은 의외로 간단했어요. 바로 떡볶이였죠.


솔직히 저는 밀떡, 쌀떡 가리지 않아요. 그냥 떡볶이를 좋아해요. 빨간 떡볶이요. 배부르게 먹고 싶으면 라볶이처럼 면이 첨가된 떡볶이도 좋고,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을 때 그냥 클래식하게 떡 위주 떡볶이도 없어서 못 먹습니다. 라면만큼 떡볶이도 좋아해요.


누군가는 떡볶이를 식사로 안 보실 수 있어요. 아 동의합니다. 솔직히 떡볶이 먹고, ‘엄청 배부르다’ 이런 느낌은 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떡볶이 하나만 먹기엔 뭔가 아쉽고, 이것저것 토핑해서 먹자니 부디 나의 소화능력이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죠. 하지만 또 떡볶이 만한 것도 없습니다.


적당한 매콤달달 양념, 포만감 보장 떡과 오뎅, 어떤 조합으로 먹어도 맛있게 만드는 마성의 음식. 겨울처럼 추운 날씨에 이성끼리 같이 먹으면 낭만이, 봄 & 가을처럼 선선할 때 먹으면 소풍 나온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여름처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먹는 떡볶이는 스트레스도 날려줍니다. 어느 정도 매운 음식을 먹을 줄 아는 외국인 친구가 떡볶이를 싫어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정 가까운 시간, 고독한 강남, 24시간 영업 조용한 분식집에서 호기심 한 스푼이 첨가된 로제 떡볶이라뇨. 못 참죠. 고된 하루를 마치고 이것도 기념이다, 로제 떡볶이 ‘로제’라는 단어 뜻을 찾아봤어요.


로제소스라 불리는 것은 크림소스 + 토마토소스를 합친 소스로, 붉은 소스와 하얀 소스가 합쳐져 분홍색 (이탈리아어로 분홍을 뜻하는 rose)이 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위키가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로제떡볶이가 인기이긴 한가 봅니다. 로제떡볶이 만들기, 로제떡볶이 밀키트, 로제떡볶이 맛집, 로제떡볶이 추천, 로제떡볶이 분말. 그리고 셀프 물을 들이켜다가 살짝 뿜었습니다.

로제떡볶이 관심만큼 지울 수 없는 단어 때문에요. 로제떡볶이 칼로리. ㅋㅋ (역시 떡볶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칼로리를 안 보기란 쉽지 않지! 다른 사람도 다 똑같구나.)


로제떡볶이를 먹어본 적 없는 저로서 예상되는 로제떡볶이는 이랬습니다. ’이탈리아‘ ’토마토‘ ’크림‘ ’떡볶이‘ 조합이니까, 로제떡볶이라 하면 피자맛이 나면서 + 토마토 크림 맛에 + 내가 좋아하는 매콤 떡볶이 느낌이겠구나 싶었어요. 24시간 영업 강남 분식집 로제 떡볶이 조합은 꽤나 근사하고 괜찮은 선택이었던 거예요.


그나저나 24시간 영업 분식집이라서 그런가? 난생처음 로제 떡볶이를 기다리며 살펴본 음식점은 끊이지 않고 배달 전화가 많았어요. 음식 배달 업체가 다양하다는 것도 알았고, 음식은 나왔는데 배달해 주시는 분이 도착하지 않아서 주방 이모님께서 유선상으로 고객에게 아쉬운 소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죠.


지금보다 10kg 더 쪘을 때,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을 때가 갑자기 생각났어요. 맨날 어떤 식당에 가든지, 모퉁이나 구석자리에 앉아서 혼자 n명 분의 양은 먹어야 속이 후련해하던 곰탱이 같은 자신이 생각났습니다. 지나고 나서 알았지만 당시 저는 감당하지 못하는 음식을 습관처럼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폭식하고 있었어요.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습니다. 화장실 거울에서 나를 마주보면 진짜 보기 싫은 사람 한 명이 서 있었죠. ‘나 참, 그때 나는 맛도 못 느낄 정도로 왜 미련하게 먹고 또 먹었나 모르겠네?’


20대 중반 어느 날 칙칙한 옷을 입고 분식만 축내던 푸드파이터 과거에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구석 또는 모퉁이가 아닌 중앙 테이블에 앉아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기까지 했어요. (많이 늦었지만) 늦은 식사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지만, 그날은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일하였습니다. 늦은 식사지만 나에게는 국밥, 치킨, 피자, 배달음식 못지않게 커다란 보상이었어요. 게다가 (폭식했을 때처럼) 이것저것  다 시키지 않고, 호기심 있던 음식만 기다리며 절제할 줄 아니까 ‘오늘은 누구 뭐라 해도 스스로 떡볶이 값만큼은 보람찼다’ 싶더라고요.


이렇게 적고 보니까 마치 복싱 만화 ‘더 파이팅’에 나오는 주인공 같았어요. 왜 그 만화에서 그러잖아요? 펀치한번 내지르는데 몇 장을 차지할 정도로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로제떡볶이 시키고 그 짧은 시간에 저도,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24시간 영업 분식집에 도착할 때까지 / 분식집 문을 열고 주문하기까지 / 주문 하고서 음식이 나올 때까지.


로제떡볶이가 나왔습니다. 로제떡볶이 첫인상은 스파게티 같았어요. ‘빨간’ 떡볶이에 익숙해서 그랬나? 로제 색깔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음식은. 먹어봐야죠. 한입 베어 물고 첫마디는요. ‘와우! 맛이 이렇구나!’ 제가 갔던 분식집 스타일 로제떡볶이는 매콤매콤은 아니고 크림맛이 강했어요. (다른 로제떡볶이도 원래 그런가요?)


느끼하다? 이런 느낌은 아니고요. 떡볶이보다는 식사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대충 때운다? 아니요. 강남 이면 도로에서 만난 무서움을 뒤로하고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고, 거북 하거나 포만감 있는 느낌보다 맛난 식사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원래 먹던 빨간 떡볶이는 아니지만, 떡볶이는 그래도 떡볶이였어요. 부족함이 없는 한 끼였습니다. 먹고 나서 숙소에 가서 캔맥주 한 캔 마셨는데, 입 안에 남은 로제의 맛과 시원한 맥주가 섞여서 깔끔했어요.


숙소 침대에 누웠을 때 수중에 진짜 돈이 너무 없었을 때가 생각났어요. 그때 진짜 한 끼 식사할 돈조차 없었을 때가 있었는데요. 떡볶이는 최고의 메뉴였어요. 식사 한 끼보다는 저렴하고, 식사처럼 포만감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또 무슨 일이 있으면 기념하고 싶은데, 어떤 식당에 들어가서 비싼 음식을 먹기에는 돈이 여유롭지는 않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들어가자니 아쉬웠던 그 기분은 떡볶이 최고 토핑 메뉴였습니다.


24시간 영업 강남 어느 분식집. 홀 테이블에서 자정에 먹는 떡볶이.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날 먹은 떡볶이는 최고의 메뉴였습니다. 떡볶이는 지금도 저의 최애 메뉴입니다.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은 시간, 혼밥 해야 한다?

그러면 24시간 영업 분식집 떡볶이 1인분 공략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24시간 영업 강남 분식집에서 먹은 로제떡볶이!



떡볶이 생각나서 부산어묵과 떡, 계란으로 만든 집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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