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깃든 길
밤이 깊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은은한 달빛이 흘렀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낮은 숨결처럼 속삭였다. 거북선 의병들이 다시 한번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 그들의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그 속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일본군의 보급로가 나온다.”
장혁이 손으로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김명규와 박차정, 그리고 의병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 모두가 눈빛을 교환했다. 그 속에는 두려움도, 후회도 없었다.
“목표는 단 하나, 보급선을 차단하는 것이다.”
김갑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작전은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숫자가 많지 않다. 일본군이 눈치채기 전에 끝내야 한다.”
박차정이 폭탄을 손에 쥐었다. 불꽃이 그녀의 손끝에서 깜빡였다. 그녀는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리가 여길 지나가면, 이 길은 불꽃으로 물들겠지.”
바람이 한순간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거북선 의병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급선을 따라 늘어선 일본군 초소를 지나, 짐을 실은 마차들이 정체된 길목으로 향했다. 일본군 병사들은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경계를 늦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_텅._
어둠 속에서 작은 소리가 터졌다. 박차정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붉은 불꽃이 하늘을 가르며 타올랐다. 일본군이 놀라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의병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이다!”
장혁의 외침과 동시에, 숲속에서 의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명규가 칼을 휘둘러 일본군 한 명을 쓰러뜨렸다. 김갑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불꽃이 튀었다.
“모두 뛰어라!”
폭탄이 터졌다. 일본군의 보급 마차가 불길에 휩싸였다. 검은 연기가 밤하늘로 치솟았다. 혼란이 퍼졌다. 의병들은 어둠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보급품을 불태우고, 일본군을 몰아붙였다.
후세 다쓰지가 칼을 뽑아 들었다. 그는 일본인이었지만, 조선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조용히 맹세가 울려 퍼졌다.
_“이곳이 내 전장이다.”_
불길이 타오르는 길 위에서, 거북선 깃발이 힘차게 나부꼈다.
그들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지나간 길은 불꽃으로 남아 역사의 한 줄로 새겨질 것이었다.
역사적 사실 및 인물 각주
1. 독립군의 보급선 차단 작전 - 실제로 독립군과 의병들은 일본군의 군수품 보급로를 차단하는 전술을 사용했으며, 이는 일본군의 작전 수행에 큰 타격을 주었다.
2. 박차정 (1910년~1944년) - 의열단의 주요 여성 독립운동가로, 폭탄 투척과 직접 전투에도 참여하며 일본군 시설과 보급로를 파괴하는 활동을 펼쳤다.
3. 후세 다쓰지 (1879년~1953년) - 일본 출신의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로, 조선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여러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