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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나를 위해 엄마를 보냈다

28년차 자가면역질환자의 생활기

by 나바드

나는 한때

내가 할 수 있는 말 중

가장 날카롭고

가장 무심한 말을

엄마에게 뱉었습니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건강하게 좀 나아주지 그랬어.”


그 한 문장 속에는

수많은 병실의 새벽,

몸이 꺾이고,

마음이 꺾이던 순간들이

소리 없이 녹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내가 아니라

엄마의 심장을 베었습니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눈동자에 파문처럼 번지던 침묵이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사는 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몸이 내 고통을 이기지 못할 때마다

나는 마음 한편에

사과나무 하나를 키웠습니다.


죄책감과 절망,

아무도 모를 분노를

뿌리 삼아 자라난 나무.


그 사과는 붉고 단단했습니다.

먹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는 결국 베어 물었고, 그 단맛은

엄마에게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신이 모든 걸 돌볼 수 없어서

이 세상에 엄마를 보냈다는 그 말이

진실이었다는 것을요.


엄마는 나의 신이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버려도

엄마는 나를 안았고,

세상이 나를 외면해도

엄마는 끝까지 나를 바라봤습니다.


그날, 나는 엄마의 마음을 베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나는 내 마음을 열어

엄마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엄마,

그 말은 내가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어요.

나는 엄마의 아들로 태어난 게

내 삶의 유일한 자랑이에요.


병든 몸으로,

무너진 마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루라도 더 살아보고 싶은 이유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에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엄마의 아들이라서

정말 행복해요.


오늘 밤,

이 말이 별처럼 빛나

엄마의 마음에

늦게나마 닿기를

조용히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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