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차 자가면역질환자의 생활기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를 28년, 항암치료를 14년이나 받았는데…
“그렇게 오래 치료받으면서 정상적인 일상이 가능할까?”
저도 그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날엔,
그 질문이 저를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스테로이드는 제게 너무 익숙한 단어입니다.
캘코트정, 소론도정, 덱사메타손…
면역억제제는 사이폴엔, 산디문.
고등학교 중반 이후론 리툭시맙이라는 표적 항암 치료제도 매년 받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앓고 있는 병은 자가면역질환, 그리고 그중에서도 약물의존성이 매우 높은 증후군입니다.
속된 말로, ‘약발도 잘 받고, 약발도 잘 떨어지는’ 병이죠. 그래서 저는 늘 재발을 안고 살아갑니다.
보통 가을 무렵이면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그 시기가 되면 긴장하고, 예민해지고,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혹시 재발인가?”라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 정도를 병원에서 보내곤 합니다. 그 시간은 제게서 온전히 ‘일상’이란 것을 빼앗아 가는 계절입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한 9개월은요?
서울대병원 의사들도 놀라워할 만큼, 모든 기능이 정상입니다. 재발했을 때 수치는 천장 뚫을 듯 치솟지만, 평상시 수치는 평범한 사람보다도 더 말끔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대학 시절에는 축구도 했고, 풋살도 했습니다.
하프 마라톤도 뛰었고,
해외여행도 여러 나라를 돌았습니다.
풀코스는 몸에 무리가 갈까 봐 의도적으로 피했지만, 하프 마라톤까지는 제법 잘 뛰는 러너이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해외에 머물며 폐렴에 걸려 복압이 올라갔고, 기존에 좋지 않던 디스크가 터지며 왼쪽 다리에 마비가 왔습니다. 그때는 디스크 수술도 받고, 병도 재발해서 오랜 시간 침대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움직이지 않다 보니 체중도 10킬로나 늘었습니다.
원래는 55kg였던 체중이 65kg이 되었죠.
하지만 지금은요?
3월부터 몸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4월부터는 다시 러닝화를 꺼냈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길에서 저를 마주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환자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그만큼 저는 보통의 얼굴로,
보통의 옷을 입고,
보통의 속도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물론, 이 모든 건 언제 무너질지 모를 일상 위에서의 기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의 ‘평범함’을
무조건적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