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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위태롭다고 느낀다.

28년 차 자가면역질환자의 생활기

by 나바드

약 기운이 도는 느낌은 아니었다.

최근 몇 해 동안 계속해서 죽음을 떠올렸다. 조금 전에도 잠결에, 아주 편하게 죽는 상상을 하며 깊이 잠겨 있었다. 누군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나는 그 생각 속에 빠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엄마였다.

늘 저녁이면, 엄마는 손수 씻은 말린 대추를 끓여 대추차를 만들고, 따뜻한 우유 한 잔과 함께 그것을 들고 올라오신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러셨다.


엄마는 요즘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걸 느끼신다. 그래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우울증 약도 늘리고, TMS 치료도 잘 받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금방 나아질 거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엄마 눈빛 속엔 걱정이 가득했다.


“앞서서 걱정하지 마, 마음 편히 먹어. 글도 쓰지 말고,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푹 쉬어.

요즘 너 너무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엄마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 말이 잔잔하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요즘의 나는, 강가의 호수처럼 평온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던진 돌멩이 하나로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잔잔하던 마음이 요란스럽게 흔들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도 잘 받고 있고, 나쁜 생각은 안 할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엄마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셨다. 그 눈빛에는 말보다 깊은 사랑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내려가셨다.


사실 요즘, 너무 버겁다.

많이 살아보지도 못한 이 삶이, 벌써 이렇게 지쳐 있다. 1997년에서 99년 사이, 중환자실을 겨우 퇴원하고 나서 나는 경주에 있는 무열왕릉 바로 옆의 작은 절에서, 스님과 단둘이 지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보름에서 한 달 남짓을 살았다.


스님의 법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분을 ‘경주스님’이라 부른다.

송광사에서 공부를 시작해 일본의 노스님 밑에서 수행했다는 경주스님은, 매일 아침마다 나를 업고 무열왕릉 꼭대기까지 오르셨다. 좋은 기운을 받아야 한다며, 힘든 날에도 어김없이 나를 업고 산을 오르셨다.


어느 날, 일본에서 그 노스님이 경주를 찾아왔다.

그분은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기복이 매우 심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으면 차츰 몸이 좋아지고, 마흔이 넘으면 몇 해 동안 태산 같은 돈을 벌고, 태산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 즈음, 큰 집을 지어 이사하게 될 것이다. 공부를 많이 시켜라. 이아이는 많은 사람을 도울 운명을 지녔다. 키우기 어려울 거다. 그래도 해야 한다. 마흔 이후에는 교육이나 병원을 짓거나, 사람을 살리는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아이의 길이다.”


그리고 정말 중학교 2학년 무렵, 우리는 이층 집을 짓고 이사를 갔다. 이상하리만큼, 그 노스님의 말들은 하나둘씩 현실이 되어갔다. 그 예언이 맞아떨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어깨가 무거워졌다.


나는 평범하고, 조용하고, 흔한 삶이면 충분히 감지덕지일 사람이다. 그런데 나에겐 늘 ‘태산 같은’ 무언가가 찾아오는 것 같다. 그 태산을 받기엔, 나는 아직너무 작고 연약해서, 깔려버릴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미 깔려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요즘의 나는 스스로도 위태롭다고 느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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