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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의 불면증과 불안,우울,강박, 그럼에도 살아간다.

28년차 자가면역질환자의 생활기

by 나바드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


1997년, 기억이란 걸 시작할 무렵,

나는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악물 의존성이 높은 신증후군”


이후로 28년, 나는 환자로 살아왔다.

처음부터 치료 방법이 명확한 병이 아니었다.


적당한 항암 치료도 없었고,
고용량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수십 년, 약을 먹었다.
그리고,

부작용들은 형용할 수 없는 형태로 나를 바꿔갔다.

불면증, 수전증, 우울증, 신경증

만성 피로, 극도의 예민함, 부정맥

스테로이드로 인한 ‘문페이스’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ET처럼 변한 얼굴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냥 살아간다’는 것


요즘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 가족중 나를 제외한 남매들의 대부분은 공무원이거나 공기업에 다닌다.

우리 집에서 유일한 흠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 일 것이다.


그리고 가끔, 죽는 것도 생각한다.


너무 매정한 이야기지만, 내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그 이후로는 남겨진 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몰상식한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든다.


‘한 번도 개운한 적이 없었다’


나는 1997년 이후,

단 한 번도 개운하게 깨어난 적이 없다.


살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아, 오늘 참 개운하다.”

라는 그 말, 그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몸이 피로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가족들은 모른다.
나는 지금 너무 위태로운 상태라는 걸.


‘세 번의 기회’


살면서 누구에게나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다.
그 기회가 지금 나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 기회가 ‘회복’이든,
그 기회가 ‘새로운 삶’이든,
아니면 ‘완전한 끝’이든.


나는 여전히, 그 선택지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버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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