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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8년을 자가면역질환자로 살아왔다.

28년차 자가면역질환자의 생활기

by 나바드


고요한 밤, 나를 지탱하는 것들


나는 28년 동안 자가면역질환자로 살아왔다.
그리고 불과 3개월 전, 또다시 항암 치료를 받았다.
나는 하루 1.7~17mg/dL의 단백뇨를 배출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최대 측정 가능한 600mg/dL을 넘나 든다.
이를 숫자로 설명하면, 나는 평균적인 피로감을 35배 이상 더 느낀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믿는 것뿐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평범해 보이는 환자


나는 겉으로 보기에 건강하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건 아니지만, 하프 마라톤(21.1km)은 충분히 달릴 수 있는 러너다.
그래서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환자일 거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몸은 항상 나만 알고 있는 신호를 보낸다.
특유의 무력감, 형용할 수 없는 피로, 사라지지 않는 불안…
그리고 그 신호는 어느 날 갑자기 폭풍처럼 밀려와,
나를 다시 병원이라는 고립된 세계로 데려간다.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

예전에는 연애를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애를 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하겠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늘 묻곤 했다.
"왜 이렇게 피곤해? 나랑 있을 때만 그런 거야?"
나는 그때마다 97년부터 시작된 신의 실수 같은 내 삶을 설명해야 했다.
몇 번은 괜찮았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건
내게 또 다른 트라우마를 되새김질하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익숙한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다행히도,

내 곁에는 오랜 시간 함께해 준 사람들이 있다.
내 이야기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의 침묵에도 이유를 묻지 않아도,
나의 모든 선택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
그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다.
나는 그들의 이해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고맙고, 미안하고, 또 고맙다.


오늘 밤, 그들에게 보내는 마음


지금도 내 몸은 크고 작은 약물 부작용으로 얼룩져 있다. 불면증, 불안, 우울…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마주할 ‘사형선고’ 같은 재발의 순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간다.
날이 뜨고, 지는 것처럼…
또다시 병원에서 "또 재발했네요, 치료합시다"라는 말을 듣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적당히 열심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볼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밤, 내 곁에 있어 준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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