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꺼돌아빠 Dec 21. 2021

아빠에게도 아빠가 있었단다

아빠의 아빠 - 할아버지 이야기



1. 아빠의 아빠


꺼돌이에게는 할아버지가 있었단다. 아빠의 할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는 할아버지가 있는 집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어 그런데 우리 꺼돌이도 아빠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벌써 맘이 아프기도 하네. 이 글이 그래도 우리 꺼돌이에게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다면 좋을 거 같다

아빠의 아빠는 복수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로 가만 생각하면 이름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살다 가셨나 싶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대가족에서 막내로 자라셨었데 형제들 대학도 못 나올 때 혼자 대학도 나오시고 ( 비록 그래서 할아버지께 유산도 제일 적게 받으셨다 하더라 ㅎㅎ) 젊어서는 시계 영업 사원을 하셨는데 엄청 잘 되실 때도 있었데. 비록 나중에 회사가 어려워지고 안 좋은 일들이 있어서 빚도 많이 지고 가족이 힘들 때가 있었지.





2. 할아버지와 좋았던 기억

    아빠가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 기억나는 가장 좋았던 기억은 어렸을 때 뭔가 아빠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을 때 항상 최대한 알려 주려고 하셨을 때였던 거 같아. 우리 꺼돌이도 조금 크면 그렇겠지만 아이들은 항상 호기심이 왕성할 때가 생기고 세상 무엇이든 궁금해지는 때가 오거든? 그럴 때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이것저것 잘 알려 주셨던 것 같아. 덕분에 어릴 적부터 여러 스포츠 규칙 같은걸 잘 알고 있게 돼서 집에서 농구/축구/올림픽 경기 등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잘 알고 보게 되었던 것 같아. 지금은 기억이 오래되어 어떤 식으로 설명해주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까지 좋은 기억으로 아빠의 머리에 남아 있어.


어떤 더운 여름 날로 기억하는데, 그날은 아빠랑 할아버지랑 낮에 수원에 있는 야구장에 갔던 적도 있었어. 그날 더블헤더 경기가 있어서 낮부터 저녁까지 야구가 하는 날이 었는데, 처음 아빠 손을 잡고 둘이 야구장에 갔었고 더웠지만 되게 재미있게 야구를 봤었던 거 같아. 그리고 아빠가 커서 회사에 들어갔을 때 회사 야구단이 플레이오프에 갔을 때 할아버지랑 다시 야구장을 갈 때까지 다시는 같이 간 적은 없었지만 말이지,. 조금 더 자주 데려가 주셨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 ㅎㅎ


아빠는 중학교를 되게 멀리 다녔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그냥 전학을 갔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 왜 그냥 거길 다녔을까? ㅎㅎ 버스 타고 30분 정도라서 그 동네에서 그 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아빠밖에 없었고 등하굣길에 혼자 다니는 시간이 많았었어. 그때는 학교 등교 시간도 빨라서 겨울에 아침에 등교하는 게 정말 힘들었었는데, 마침 아빠가 직장을 새로 다니시면서 차를 하나 중고로 사셨고, 아침마다 차로 학교 까지 태워 주셨었어. 어찌나 편하고 좋던지? 그 이후에도 그래도 그런 일은 불평 없이 할아버지가 아빠 학교나 지하철 까지 잘 데려다주시고 했었는데 ㅎㅎ 언제나 아빠 차를 타고 가는 길은 좋았거든. 차를 조금만 일찍 사셨으면 어땠을까 ㅎㅎ


우리 꺼돌이도 조금 크게 되면 공부를 시작하고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도 가게 되겠지? 아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교에 가기 위해 시험을 봐야 하는 날이 있었어. 학교가 집에서 멀리 있고 가는 길도 험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할 때 흔쾌히 아버지가 그날 데려다 주신 다고 하셨고, 시험을 보러 가는 길부터 시험을 보고 나와서 다시 집에 가늘 길까지 아버지와 하루 종일을 함께 했지. 아주 어릴 적을 생각해봐도 그날처럼 아버지와 단둘이 하루 종일 있었던 적은 잘 없었던 거 같아. 운전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얘기도 해주시고 그 당시에는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길도 직접 찾아서 막 가셨던 거 같은데.. 


아빠는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보자마자 면허를 땄었다. 면허를 따고 운전을 할 일이 없었고 나중에 아빠 차가 생기는 대략 10년 후 까지는 제대로 운전을 하지 못했었어. 그래도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시려고 직접 옆에서 운전도 가르쳐 주시고 했었는데 그날 뭔가 서투르고 어려웠는데 옆에서 다그치지 않고 잘 설명해주시던 아빠의 그 조언들이 아직도 운전할 때 생각이 나기도 해.




3. 할아버지와의 아쉬웠던 기억

생각해보면 하지 못해서 아쉬운 것들도 많고, 이미 지나가버린 아쉬움 들이지만 우리 꺼돌이는 아빠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한번 적어 볼게.


어릴 적에는 자주 아빠와 함께 같이 목욕탕에 가서 때도 밀어주시고 하셨었어. 아빠들의 로망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은 일인데 어느 새인가 할아버지와 목욕탕을 가지 않게 되었던 거 같아. 그리고 아빠가 좀 더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그때도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가끔 목욕탕을 가셨었어. 가면 목욕탕에 딸린 이발소에서 머리도 자르시고 염색도 하시고 하셨었지. 가끔 아빠에게 같이 가자고 말씀하셨었는데, 그때는 한 번도 같이 가지 않았지.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랑 같이 목욕탕을 갔으면 더 재미있는 좋은 기억들이 , 부자만의 대화에서 생긴 즐거운 추억들이 생겼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워. 어렸을 때 나의 등을 밀어주시던 할아버지의 손길에 아빠가 할아버지의 등을 밀어 들이면서 보답을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제는 다시 그럴 수 없는 사라진 기회라는 게 참 아쉽다.


할아버지는 항상 가게에서 할머니보다 먼저 들어오셔서 혼자 식사를 많이 하셨었어. 그럴 때 아빠도 집에 있으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셨었지. 그때는 왜 인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랑 같이 저녁 먹는 게 싫어서 불편해서 잘 같이 안 먹었던 때가 있었어. 만약 우리 꺼돌이가 그런 다면 아빠는 마음이 많이 아플 거 같은데 할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좀 더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할아버지를 존중했어야 하는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말이지.. 언제나 사람은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한 걸 모르고 이렇게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단다.


지금 아빠가 가지고 있는 허리띠와 지갑이 있어. 그건 아빠랑 엄마랑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가서 사 온 선물이었는데, 그게 할아버지의 유품이 되어 버렸단다. 회사에 다니면서 돈도 벌고 결혼을 할 때까지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해드리지도 못했었던 같은데, 그게 또 유품이 되어서 아빠에게 돌아왔어. 항상 지갑이 아닌 주머니에 현금을 꼭 넣어 다니시던 할아버지였는데, 그 지갑에 돈을 채워 들고 다니시기도 전에 돌아가셨네. 아들이라고 애교도 없고 저런 선물도 잘해드리지 못했었는데 정말 할아버지가 받고 싶으셨던 선물은 뭐였을까? 나중에 결혼해서 아기 낳으면 본인이 봐주겠다고 웃으면서 엄마한테 말씀하셨다던데.. 대신 천국에서, 기도 하시던 하나님 곁에서 우리 꺼돌이를 잘 지켜 주고 계실 거라 믿어.




4. 아빠는 이런 아빠가 되고 싶다

아빠의 아빠를 생각해보면 그래도 나쁜 기억들 보다는 좋은 기억들이, 그리고 같이 함께 많은 것을 더 하지 못해서 아쉬운 생각들이 많이 나게 되네. 아빠는 우리 꺼돌이가 나중에 아빠를 생각하면 언제나 지금처럼 웃음이 나고, 그래도 행복했던 기억들만 생각이 나면 좋겠어. 


우리 꺼돌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아빠가 알고 있는 거 , 모르는 거 열심히 설명해주고 같이 알아 가고 경험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어린 너의 질문이 때로는 귀찮고 지겹겠지만 언제나 다정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줄게.  같이 즐기는 스포츠, 문화활동, 게임, 운동, 공부 어느거 하나 아빠는 재미있게 가르쳐 주고 싶어.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아빠에게 공부를 강요하시거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셔서 정말 자유롭게 공부도 하고 게임도 하고 마음껏 놀기도 했었는데, 아빠도 우리 꺼돌이에게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 우리 꺼돌이가 아빠처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필요하면 아빠의 도움을 언제나 받을 수 있도록 가까운 사이가 되어서 옆에 있어 줄게.


주말이면 쉬고 싶은 마음은 잠시 뒤로 하고 우리 꺼돌이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 다녀보자. 여름에는 물놀이도 가고 겨울에는 스키도 타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어. 할아버지와는 많은 여행을 다녀 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들이 많거든.


사랑을 많이 표현해줄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표현을 잘 못하시는 분들이셔서 아빠는 그런 가정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우리 꺼돌이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행복한 아이로,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좋은 사람으로 자라도록 하고 싶다.


일도 열심히 해서 우리 꺼돌이가 자라는 동안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할아버지의 힘든 모습들을 보면 아빠도 많이 힘들었었거든. 그러려면 우리 꺼돌이를 키우면서 열심히 일도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겠지? 


사랑한다 우리 꺼돌이. 사랑해요 아버지. 행복하게 천국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시고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그리고 우리 꺼돌이 잘 지켜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아들이 생겼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