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길인데 지날 수가 없었다.
일방통행이었고 차로만 있었다.
사실 대체진입로에 대한 안내판과 진입금지 안내판은 나중에 눈에 들어왔다.
길을 덮고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땅 위를 차지할 권리와 도로를 따라 지나갈 권리,
이 둘이 위아래 나란히 병치되어 있었다. 시각적으로 너무나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 나를 머뭇거리게 한 건 안내판의 지시어들이 아니라 낯설게 하기였다.
익숙한 것들의 병치가 만드는 낯설게 하기..
언덕을 오른다는 건 길을 따라가는 것이고
숲을 만난다는 것이다.
산에서 길을 간다는 것은
숲과 나무들이 내어놓은 간격에 서보는 것이다.
언덕 위에서 광장을 만난다는 것은
숲이 내어놓은 자리에 당황하며 서는 순간이다.
거리를 재고
움직이는 것들과 멈춰있는 것들의 크기를 재고
관심두지 않고 있었던 오늘의 날씨도 생각해 보고
바람을 타고 부딪히는 미미한 공기의 촉감에 민감해하고
언덕을 오르는 동안 무던했던 내 오감이 부지런해지는 순간이다.
길은 비어있고
하늘에 케이블카가 부지런히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오후다.
커피 팔면서 돈가스 팔고
설렁탕 팔면서 돈가스 팔고
산채비빔밥 팔면서 돈가스 팔고
복잡해졌다.
항상 있는 것과 어쩌다 있을 수 있는 것들이 혼재하는 곳이 도시라면
참 차분한 혼재가 아닐 수 없다.
가파른 경사가 있는 곳은 시선을 예측하기 힘들다.
내가 살던 동네가 아니라면 그렇다.
긴 담장을 돌아설 때와 골목 끝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 설 때면
도시의 저 멀리까지 한순간에 내 시선이 닿아버린다.
언덕 위 집들
삼 형제 아니.. 사 형제? 오 형제?
이 중 한 녀석이라도
어느 날 갑자기 키가 쑥 자라 버리면 어쩌나 싶은..
도심을 출입하는 곳은 차선이 넘친다. 때로는 그것도 막힌다.
그곳을 바라보는 골목은 왕복 1차선이다. 그래도 항상 비어있다.
누군가 떠나는 날 막히고 살러 들어오는 날 막힌다.
골목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