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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스 Mar 02. 2022

21세기에 소환된 키예프 공국  

일상과 세계 01


서로가 많이 가까워진 세계는 과거와는 달리 지리적 정보들이 많이 공유되는 편이다.  

지리정보시스템이 꾸준히 발전해온 데다, 특히 지난 몇 년간 빅데이터를 기반한 사물과 사람, 장소에 대한 수많은 얘기들이 축적되어옴에 따라 세상이 더욱 촘촘한 얼개로 구조적인 조정을 숨 가쁘게 해온 결과이다. 그 얼개 속에 내가 놓임으로써 멀리 있던 세계가 나에게 불쑥 다가오고, 내가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도 한다. 개인의 일상과 세계 사이에 지리 정보는 더 이상 과거의 유통경로를 거치지 않는다.  


세상의 수많은 역사적인 사실과 관계들 또한 이미 주어진 정보들이 넘치고 공유되고 있다. 지리적 정보와 조금 다른 것은 한 단계 더 들어가야 알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대체로 분쟁이 발생했을 때다.


분쟁이 일어나게 되면 그 지역의 사회적 문제의 단면이 드러나게 된다. 대체로 그 배경과 원인이 과거의 역사적인 상황들과 관계되는 경우들이 많다. 자연스레 매체를 통해 그러한 것들이 이슈화 되면서 약간의 노력만으로 숨겨졌던 문제들을 알게 되고,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지역의 과거 문제들을 알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수개월 전부터 전쟁이 예고되다시피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시간은 푸틴이 미국과 나토가 어느 선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감을 잡는 시간이었다. 러시아의 필요에 의한 침공은 애초에 정해진 것이었고, 단지 시간문제였다.   




푸틴 때문에 확실히 각인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직전까지 우크라이나 국기가 어떤 것인지 세상 사람들은 알지도 관심도 없었지만,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국기의 조명들이 세계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다. 도시에서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과 장소를 활용해 한순간에 이미지를 전달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운동선수의 가슴과 등판, 팔뚝의 견장에까지.. 그리고 플필사진과 각종 아이콘까지 시각적인 매체를 탈 만한 것들은 블루와 옐로 일색이다. 그러니 '세상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반문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국기는 대부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비슷한 유럽 국가들의 국기들이 많아 헷갈리는 데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1일 현재 세계는 'We stand with Ukraine'을 외치며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색으로 마음을 모으고 있다.  [포털취합.편집]


둘째는 러시아의 뿌리가 키예프 공국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 분리 독립한 나라가 한두 나라가 아닌데, '러시아는 왜 세계의 왕따를 당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못 잡아먹어 저럴까?' 하는 의구심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역사를 보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러시아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정확히는 지금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속한 키예프 루스(Kievan Rus)의 수도가 키예프였고, 나중 키예프 공국을 비롯해서 10개의 공국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니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문화는 곧 러시아의 그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쉽게 보내지 못하는 이유이다. 물론 여기에 흑해를 끼고 있는 크림반도(부동항 세바스토폴 등)가 가지는 의미가 군사적으로 또 지정학적으로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열대 기후이면서 바다를 끼고 있으니 푸틴의 별장이 있기도 하다.)     


역사를 보면서 몽골의 확장 시기를 보게 되었는데, 여기에 꽤 유의미한 부분이 있다.


당시 몽골은 지금의 유럽 깊숙이 침략해 들어오면서 이곳 키예프 루스(Kievan Rus)를 침공했다. 키예프 루스의 일부인 키예프 공국과 모스크바 공국(몽골 침략 당시에는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을 거쳐가게 되는데, 이때 두 지역의 운명이 갈렸다.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이 있는 지역은 몽골제국(당시 킵차크-칸국 관할지역)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조공을 받으며 간접 통치하였으며, 키예프 공국 지역은 직접통치를 하였다. 몽골은 자신들의 힘에 굴복하고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곳에는 관대했지만, 저항하는 지역은 끊임없이 군사를 보내 초토화시켜버리는 정책을 폈다고 한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이후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 지역은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다시 일어나 주변 공국들을 통합해나갈 수 있었고, 키예프 공국은 몽골에 대한 저항의 후유증으로 이후 오랜 기간 주변 국가들(리투아니아,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의 통치 아래 있게 된다. 근대에 들어 일부 지역이 러시아에 속하게 되고, 20세기 초 일부가 소비에트 연방에 속하면서 지금까지 독립했다가 합쳐지는 일들을 반복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쿠빌라이 칸 시대 1원 4칸 국. 키예프는 킵차크 칸국에 속한 반면 모스크바 쪽은 원정은 갔지만 통치영역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미지:조선일보]


당시 세계에서 몽골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는 민족은 드물었지 싶다. 그런 중에 고려가 그랬고 키예프 공국이 그랬다. 우리는 바다를 끼고 싸우면서 몽골을 괴롭힐 수 있었지만, 키예프 공국은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곡창지대라고 불리기도 했던 대초원에서 기마민족 몽골에 맞서 싸웠던 걸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러시아로서는 부끄러운 역사고 우크라이나로서는 지금 세대가 자랑스러워할 역사다.


역사를 잠깐 돌아봐도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바깥에 두기가 부담스럽다.

오늘은 3.1절이다. 한 민족을 지구 상에서 지우려 드는 폭력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이 우리로서는 전혀 낯설지 않다. 그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어떤지 조금이나마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푸틴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어떤 곳이며 왜 우크라이나인지 세계가 알아버렸다. 푸틴은 여기서 더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고, 발을 빼고 물러나기에도 민망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와중에 푸틴은 핵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고, 동시에 러시아 내 군부에서 회군 조짐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비공식적인 얘기다. 하지만 스위프트(SWIFT) 제재로 국제금융결제망에서 러시아 은행들을 배제시키면서 러시아 루블화가 휴지조각이 되었다. 군 수뇌부들의 해외 은닉 자금도 휴지조각이 된 것에 불만이 나올 수도..      


어떴든 간에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전쟁으로 많은 민간인, 군인들이 희생되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멈춰야 한다. #stopputin  


그리고 우리에겐 키예프 공국이 강하게 소환되었다. 이 또한 되돌릴 수 없는 현상으로 남았다.



('키예프'는 러시아식 발음이고, 우크라이나식 발음은 '키이우'입니다. 다만, 지도에 표기된 것과 혼돈을 줄이려고 부득이 기존 표기를 유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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