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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작가 Dec 12. 2023

꼼짝마, 움직이면 쓴다!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

여보랑 비슷한 사람인 것 같애.


김민섭 작가 강의를 듣고 온 아내가 내게 한 말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어떤 점이 비슷하길래...

호기심이 생겨 영상을 찾아보고, 책을 사봤다.


오늘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아내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것.

작가는 선하고 좋은 사람이었고

(내 본성과는 비슷하다. 나는 성선설을 믿는다.)

행동하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나와 큰 차이가...)

분명한 건 아내는 나를 실제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미안하고 고마웠다.

평생 이렇게 속이고 사는 것도 방법이겠다.


100% 공감되는 강렬한 프롤로그가 좋았다.

이 책을 쓰는 까닭은,
모두가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그때 그들은 비로소 '두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두렵다.
그러나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람만큼 
두려운 사람은 없다.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입과 손가락을 가진
존중할 만한 한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한다.

얼마 전 타 기관과 회식 자리에서

부장님은 나를 '작가'라고 소개해주셨다.

상대방의 첫마디는 놀랍게도

"글쟁이들이 제일 무서운데..."였다.

마침 이 책 초반을 읽던 시기였는데

신기하기도, 으쓱하기도, 짜릿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제일 막내였던 내가

어쩌면 가장 두려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라는 책을 쓴
고등학생 노정석 작가에게 
"책을 내고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하고 묻자
그는
"선생님들이 저를 조금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하고 답했다. 
교사와 학생,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 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위계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사람이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면,
그래서 평가하는 사람이 자신 역시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감각하고 나면,
그 순간 관계의 역전이 일어난다.
그 학생은 세계의 기록자로서
교사와 동등한 타인이 된다.

"언젠가는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어요.

 회사생활 하면서 다양한 분들 많이 만나잖아요.

 캐릭터 살려서 등장인물에 녹여내면 

재밌을 것 같아요."


가끔 회사 사람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한 이 말이,

상대에겐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감각'하게 하는

간담 서늘한 말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기울어진 관계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아예 요즘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해버릴까 보다.


그러나 그 글이 타인에게 인정받고
책으로 출간되고부터 
그는 두려운 사람이 되었다. 
그와 관계된 모두가 그의 서사의
등장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세계 안에서 타인의 언어로
자신이 규정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모두에게
그 앞에서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해준다.

여기서 김민섭 작가와의 차이를 느꼈다.

난 내가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는 것,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까지만 생각했다면

저자는 상대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변화되는 것까지 생각이 미쳤다.

진심으로 타인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글 곳곳에서 그 마음이 묻어 나왔다.


저자는 식당 주인들에게도 글을 쓰라고 권한다.

파워블로거가 권력을 갖고 자신을 평가하듯

그들 역시 평가받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된다는 건
타인에게 내가 존중받을 만한 개인임을
자각하게 하는 일이다.


미국 여행을 갔다 와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누구나 친절하게 인사하는 거였다고 하니

누군가는 그게 다 '총' 때문이라고 했다.

총을 뽑지 않겠다, 안심해도 좋다는 의미로

오른손을 맞잡았던 것이 악수가 되었고

상대가 언제 총을 뽑을지 모르니

상대방에게 적대감이 없다는 것을 보이는 게

인사와 친절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거다.

믿거나 말거나였지만 그럴듯했다.


글을 쓴다는 건 합법적 총기 소지 아닐까?

조심해~ 나 '쓸' 수 있는 사람이야~

건드리지 마~ 확 갈겨버린다~


이렇게 선한 사람의 글을 읽고

'확 갈겨버린다'로 마무리하는 나를

김민섭 작가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아내에게 다시한번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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