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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작가 Feb 22. 2024

"나 죽으면 엄마한테 잘해드려라."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버지는 다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셨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병원보다는 집이 편하다고 하셨다.

병원은 아버지에게도, 엄마에게도 감옥이었다.


아버지는 점점 더 야위어 갔다.

목뼈가 부러져 입원해 계신 동안 근육은 더 빠졌고

이젠 걷는 것은 물론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다.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려 아버지를 지켜보는

엄마의 시름은 점점 깊어져 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시기는

아들인 나에게 제일 편한 시기이기도 했다.

아버지 건강이 회복돼도 걱정,

(택시운전이다, 정치다 자꾸 나가려 하실 테니)

건강이 악화돼도 걱정이었다.

그냥 별 탈 없이 지금처럼 현상만 유지되길 바랐다.


아버지가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텨내고 계신 엄마에겐 너무 가혹한 생각이지만

모처럼 찾아온 평화,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이 시간이 내겐 감사하고 소중했다.

어쩌면 이러한 소강상태가 최대한 길어지는 것이,

이 안에서 각자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이기적인 마음, 솔직한 본능이 올라올 때면

뒤따라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해서는 안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건강이 회복되는 것도, 악화되는 것도,

이도 저도 아닌 것도...

그 어떤 것도 바라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상황.

어떤 방향으로 생각이 뻗어도 마음이 무거워져

난 가급적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 소강상태도 그리 길게 가진 못했다.

의사는 아버지 암이 전이된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아버지께 이 소식을 전할 용기가 없었다.

당사자인 아버지만 전이 사실을 모른 채,

검진일이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을 찾았다.

아침부터 하루종일 세 명의 교수를 만나야 했다.

첫 번째 교수는 9년 전 하인두암을 수술했던 담당의였다.


"제가 수술했던 곳은

전이도 없고 이상 없습니다."


아버지는 교수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나와

상기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봐라, 이제 다 나았다고 하지?"


아버지의 밝은 모습에 엄마는 더 괴로워하시며

"아직 몰라. 다른 교수님 말씀도 들어봐야 알아."

라고 에둘러 말씀하셨지만 아버지는 방금 들어놓고

무슨 소리냐며 버럭 화를 내셨다.

아버지의 포인트는 "이상 없습니다"였지만

우리의 포인트는 "제가 수술했던 곳은"이었다.


"아버지, 교수님은 하인두암말씀하신 거고

식도암은 전이가 됐을 수도 있대요.

그래서 오늘 교수님께 직접 들으러 온 거예요."


아버지는 당황하신 듯 물으셨다.


"따로 연락을 받은 거냐?"


우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완화의료치료센터였다.

의사 면담 전에 만난 간호사는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본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을 때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는 서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임종', '마무리' 같은 무거운 단어가 나올 때마다

부모님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당황한 엄마는 말을 끊고 물었다.


"이걸 왜 지금 저희한테 말씀해 주시는 거죠?"


꼭 지금 동의서에 서명하라는 게 아니라는 말도,

성인 누구나 쓸 수 있는 거란 말도,

2018년 법이 시행된 아무리 좋은 취지도

부모님 귀엔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 처음 들으시는 건가요?

교수님께서 안내를 드리라고 하셔서..."


간호사의 기어들어가는 이 말 한마디만

'쿵'하고 무겁게 가슴에 떨어졌다.

훌쩍이는 엄마 앞에서 간호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하루에도 우리 같은 사람을 수십 명을 볼 텐데

이 일도 참 극한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겁을 먹은 채로 교수님을 만났다.

엄마는 저 멀리 구석에 서서 고개를 떨구고 계셨다.

피하고 안 들으면 없던 일이 될 수 있을 것처럼...

 

갈비뼈 쪽에 암이 전이되어 혹이 생겼고

췌장에도 암으로 의심되는 혹이 있다고 했다.


"이 정도면 많이 아프실 텐데 괜찮으세요?"


"통증이 심하면 바로 연락 주시고 오세요."


아직 별다른 통증을 못 느끼는 아버지였지만

교수님의 말에 없던 통증도 생길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다 나았다고 상기됐던 아버지는

이제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말이 없었다.


아버지 몸상태로는 항암치료도, 방사선 치료도

불가능했고 암 전이속도가 느리기만을,

췌장에서 발견된 것이 암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다음 진료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울며 기도하는 엄마, 긴 침묵 중인 아버지.


"이제 교회 가서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다.

내가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흑흑..."


지금까지 의연해 보였던 아버지는 무너졌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자기는 운이 좋아. 다 비껴갈 수 있어.

지금까지 죽을 고비 넘기고 다 이겨냈잖아."


사람들은 손을 잡고 울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을

안타까운 듯, 사연이 궁금한 쳐다보았다.


"암에 뭐가 좋다고 했지? 채소는 뭘 먹어야 하지?"


갑자기 아버지는 삶에 의지를 보이셨다.

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엉뚱한 쪽으로 생각이 진행됐다.


살고 싶은 건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능인가?

하루 대부분을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인데,

누구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지금까지 두 번의 암 수술, 뇌졸중, 병원생활,

지난하게 이어지는 검진과 추적관찰,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르는 추가 수술까지...

이 고생을 하며 이어나가는 삶의 의미는 뭘까?

이런 삶을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아버지에겐, 또 우리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 곁에서 손잡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

아버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면 좋았겠지만

난 그저 3인칭 관찰자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식이란 놈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정상적인 사고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 안타까움 때문일 수도 있다.

아버지 때문에 온 가족이 매달린 상황에서도

여전히 담배를 찾고, 반찬 투정을 하고,

귀찮다 힘들다며 운동하려는 의지도 없으면서

택시운전이다, 정치다, 대학원에 가겠다며

허황된 꿈만 늘어놓는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작은 노력들을 해나가는 아버지였다면 달랐을까?


현실적인 꿈을 꾸고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야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만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뭐라고 한 사람의, 그것도 아버지의

삶의 의미를 내 멋대로 판단하고 있는가?

그러는 나는 또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길래...



세 번째로 만난 교수는 식도암 수술 주치의였다.

췌장 전이 여부는 추가 검사를 해봐야 알고

만약 가슴 쪽에만 암이 전이된 거라면

간단한 수술로 제거가 가능하다며 희망을 줬다.

하지만 췌장에도 전이가 된 거라면

그땐 통증 완화치료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부모님을 용산역에 모셔드리는 차 안에선

정적이 흘렀고 나도 마음이 복잡했다.

용산역에서 아버지 손을 잡고 말했다.


"아버지, 저 갈게요. 아직 모르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운동도 하시고 몸 관리 잘하셔야 해요."


나 죽으면 엄마한테 잘해드려라.


아버지는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펑펑 우셨다.

하지만 엄마는 이번엔 같이 울지 않으셨다.

무슨 약한 소리를 하고 있냐고,

마음 단단히 먹으라며 아버지를 다그치셨다.

그런 엄마를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실까?

죽음이 두려운 걸까?

내가 아버지라면 어떤 마음이 들까?

나의 남은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난 죽음이 두려울 것 같진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난다는 것,

그들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

더 잘해주지 못했던 것,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마음 아프고 미안하고 후회될 것 같다.

아버지 역시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결국 삶의 의미, 더 살아야 하는 이유,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사랑이 아닐까?


아버지가 곁에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을 내고

아버지 없는 삶은 상상도 못 하는 엄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버지 삶은 이미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인생은 짧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안겨주지도 못할 만큼 짧다.

- 톨스토이


내가 누군가의 삶의 의미가 되고 있는지,

나는 그만큼의 사랑을 주고 표현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하루하루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아버지는 또 내게 큰 물음을 던져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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