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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작가 Apr 11. 2024

이젠 밥 없인 못 살아

<아내와 글쓰기 프로젝트 #7. 밥>

어린 시절 난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어린이의 본분은 열심히 뛰어노는 것.

난 해가 질 때까지 밖에서 놀다 들어오는

놀기에 진심인 어린이였다.

그런 내게 밥은 아주 귀찮은 존재였다.


놀다가도 불려 와 밥을 먹어야 했는데

난 그 시간이 그렇게 아까워 묘수를 냈다.

밥에 케첩을 비벼 먹으면 숟가락에 고봉밥이 올라갔고

목 막힘 없이 몇 숟가락만에 다 먹어 치울 수 있었다.

난 늘 왜 밥 대신 먹는 알약이 없는 건지 안타까워했고

내가 꼭 개발해서 대박을 치고 말리라 다짐했다.


씹지도 않고 삼키고 바로 뛰어놀던 습관 때문인지

고등학교 때 위에 문제가 생겨 고생을 했다.

밥을 먹으면 오바이트가 쏠렸다.

밥 먹다가 화장실로 뛰어가 게워내는 날들이 계속됐다.

걱정된 부모님은 날 한의원에 데려가셨고

한의사는 '위하수'라는 어려운 병명을 말해주었다.

쉽게 말해 내 위가 쳐져 있다고 했다.

한약 덕분인지 구토 증상은 없어졌지만

나에게 밥은 더욱더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밥은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그나마 남아있던 미각까지 상실하고야 만다.

결혼하고 첫 집밥을 먹은 날이었다.


신혼집에서 맞은 첫 주말이었던 것 같다.

아내는 신혼 첫 요리로 샌드위치를 준비했고

나도 옆에서 토마토를 자르며 거들었다.

열심히 칼질을 하고 있는 와중에

아내가 입에 샌드위치 조각을 넣어주었다.

샌드위치를 오물오물 씹으며 칼질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집안에 쎄한 바람이 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내가 앉아서 울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아내는 자기가 꿈꿨던 신혼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다며

처음으로 아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도

어떻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냐며 울었다.

살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8년을 사귀고 결혼을 했지만 

내가 아내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억울했다.

나도 분명 토마토를 자르며 함께 만들고 있었고

식탁에 앉아 완성품을 먹은 것도 아니고

불시에 입에 훅 들어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는데...

나도 같이 앉아 울고 싶었다.


그날 이후 난 미각을 상실했다.

어떤 음식이든 무조건 맛있게 먹고 반응했다.

맛을 느끼기도 전에 반응이 먼저 나왔다.

밥은 내가 감히 평가할 수 없는 최고 존엄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났고 아내와 역할 분담을 했다.

아내는 비교적 퇴근이 늦는 내게

집에 오면 아이와 함께 놀며 교감하길 바랐다.

그 시간에 아내는 식사를 준비했다.


난 밥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었고

밥은 먹는 것마저 귀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먹는 게 귀찮으면 하는 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내는 늘 가족들에게 뭘 먹일지 걱정했고

장 보는 것부터 요리까지 아내의 몫이었다.

난 그냥 사 먹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사 먹는 밥에 죄책감을 느꼈다.


아내가 밥을 하는 동안 나도 놀고 있지 않았다.

집안일이건 육아건 뭐든 했고, 서로 잘하는 걸 하면

된다는 생각에 우린 서로 불만 없이 잘 지냈다.

하지만 매일 밥을 준비하는 건 버겁고 귀찮은 일이었다.

코로나 때 내가 재택근무를 하는 날 아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말했다.


나도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그날 이후 요리를 시작했고

내 반성의 포스팅은 조회수 3만 5천 회를 넘겼다.

(https://naver.me/5pHz1NB3)

댓글엔 날 질책하는 글이 넘쳐났다.


밥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민감한 주제였다.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 골로 갈 수 있는...

나를 조선시대에서 온 꼰대로 생각하는 듯한

날 선 댓글들을 보며 아내가 더 속상해했지만

어차피 욕먹을 각오하고 쓴 반성문이고

글만 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서

정작 나는 웃어넘겼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꼈다.

밥은 진짜 최고 존엄이 맞구나...



유튜브를 보며 요리를 시작한 지 5년 째다.

재미있고 보람됐고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주말엔 내가 장을 보고, 모든 식사를 준비한다.

매일 밤 술안주와 손님맞이 특식도 내 담당이다.

아이들은 엄마보다 아빠 요리가 맛있다며

엄마와 한 편을 먹고 나를 부추긴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중 하나는

단연코 요리를 시작한 것이다.

요리를 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할 것들을 느낀다.


밥 다 됐으니 빨리 와서 먹으라고 부르시던

할머니와 엄마의 마음을 이젠 알 것 같고

밥을 푸며 한 번 주면 정 없다며

기어코 한 번을 더 주셨던 그 마음도 알 것 같다.


내가 음식을 만들어 보니 알겠다.

요리는 사랑과 행복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시간과 정성을 쏟는 일이다.

가족의 입맛을 생각하며 메뉴를 선정하고

가족의 반응을 상상하며 음식을 만들고

가장 맛있을 때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싶고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안 먹어도 배부른...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中 -


내가 야구에 빠져 살 수 있는 것도 요리 덕분이다.

주말엔 내가 밥을 전담하니 아내는 밥 걱정 없이

약속을 잡거나 편하게 주말을 보내고, 

덕분에 난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아침 일찍 야구 경기가 잡힌 날이면

새벽에 일어나 주먹밥이라도 만들어 놓고 나가며

최소한의 염치를 챙긴다.

먹는 것마저 귀찮고 부담스러웠던 밥이라는 존재는

이제 내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4년 전 조선시대에서 온 꼰대 남편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그때 그 노여움을 거두시길...


눈칫밥 먹으며 집을 나서는 야구인들이여,

요리를 시작하세요~

마음이 편해지면 타율도 오릅니다.

혹시 압니까? 리그 하나 더 뛸 수 있을지...

(또 욕먹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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