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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작가 Apr 15. 2024

파묘

<아내와 글쓰기 프로젝트 #8. 마다가스카르>

하다 하다 이번 글쓰기 주제는 '마다가스카르'다.

애니메이션도 본 적이 없고 도저히 말이 없어 

막막한 심정으로 녹색 창에 마다가스카르를 쳐봤다.


사람 손이 닿지 않아 온갖 동식물이 살고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에

여행 명소일 것 같은 추측을 깨고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암울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프랑스와 영국의 손에 넘어갔었고 나치 독일은

유대인들을 이 섬으로 추방할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세계에서 손꼽는 정치갈등 심한 나라,

아프리카에서도 경제적으로 최하위권 나라.


애니메이션의 귀여운 동물들과 예고편 덕분에 가졌던

멋지고 흥미진진한 미지의 세계 같은 이미지를

무색하게 하는 설명들이 이어졌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파묘'였다.

아직도 흑사병이 도사리고 있으며 간간히 전염이 확장되어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 정도. 마다가스카르에 지속적으로 흑사병이 발발하는 이유로 ‘파마디하나’라 불리는 이 나라의 독특한 장례문화가 꼽힌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7년마다 망자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새 옷을 입힌다. 그 후 옆에서 춤을 추며 신성한 의식을 치른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과거 흑사병에 걸렸던 망자의 체액에 노출되며 흑사병이 전염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출처 : 네이버 나무위키 -

7년마다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 치르는 의식 때문에

아직도 흑사병이 돌고 있다니...

얼마 전 영화 <파묘>가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인간에게 죽음, 매장, 사후세계도 두려운 영역인데

거기에 파묘는 온갖 불길한 상상력을 동원케 한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도 그 두려움 때문에

망자에게 예를 갖춘 의식을 치러왔을 텐데

오히려 그게 독이 된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역시 파묘는 불길해...



올해 설날이었다.

우리 가족에게도 '파묘'의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내가 5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인근 천주교 묘지로 모셨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잘 나가는 군인이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아버지는 큰 산과 같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자부심과 그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제일 잘 나갔던 시절에 대한 향수인 것도 같았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집안이었던 우리는

제사를 드리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나이가 드시며

제사를 지내야겠다는 말씀을 몇 차례 하셨다.

제사 때라도 한 자리에 모여야 가족이 잘 된다며

삶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을 제사와 관련짓는 것 같았다.

우린 일부러 못 들은 체하며 상황을 모면했다.


부모님, 형네와 우리 가족은 이번 설에도

여느 명절 때처럼 천주교 묘지로 향했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다음에도

부축을 받아서라도 기어이 묘 앞까지 올라가셨지만

식도암 수술 이후 건강이 악화된 올해 설에는

그마저도 어려울 것 같다며 차에서 지켜보기로 하셨다.


위로 7번째, 오른쪽으로 7번째 묘.

그런데... 묘가 사라졌다.

딱 그 자리만 봉분도 비석도 없이 평평했다.

어? 여기가 맞는데? 이상하다?

위치를 다시 확인해 봐도 여기가 맞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주변을 둘러보니 묘 여기저기에 팻말이 붙어 있었다.

사용기간(20년) 종료 재계약 대상 안내 문구였다.


재계약이 없으면 무연고 분묘로 간주되며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합니다.


우린 거의 4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엄마는 지금까지 관리비를 낸 적도 없었고

따로 연락을 받은 적도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께 연락이 갔는지 모르겠지만

병상에 계신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을 리 없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어떻게 처리된 건지,

유골이라도 찾을 수는 있는 건지... 불안했다.

그렇다고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파묘를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 건가? 가족 중 누가 승인한 건가?

그나저나 뒤에 아버지가 보고 계실 텐데...

이걸 아버지가 아시는 순간 뒷감당이 안 된다.

아버지에겐 이 사실을 숨겨야 했다.

아버지가 차에 계신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아버지가 차에서 보고 계실까 싶어 돌아보니

선팅 때문에 차 안에 계신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 성묘를 드리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엄마는 이미 겁을 먹고 울고 계셨고

우린 상을 까는 척, 기도드리는 척을 했다.

정초부터 뭐 이런 블랙코미디가...


형이 상황을 알아본다며 관리소에 전화를 하니

직원은 전산에 '파묘'라고 뜬다고 했다.

파묘 시기나 가족 연락처 등 다른 자세한 사항은

명절 이후에 담당 직원이 오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진짜네... 큰일 났다... 파묘라니...

하필이면 영화 <파묘>가 개봉을 앞둔 시점이었다.

영화 예고편이 떠오르며 등골이 오싹했다.

아버지가 뇌졸중과 식도암에 걸린 것도

파묘의 저주 때문인가?

작년 추석 때는 멀쩡히 묘가 있었으니

아버지 일과는 무관할 테고...

아직까지 큰 저주는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엄청난 똥꿈을 꾸고도 로또가 안 된 것 정도?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명절 이후 상황을 알아보기로 하고

우린 일단 철수했다.

새 가슴 엄마는 아버지를 볼 자신이 없어

차에 타지 못하고 밖을 서성였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차에 탔고

아버지 표정을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엄마는 그제야 차에 탔지만 내내 쥐 죽은 듯 계셨다.

엄마는 모든 게 얼굴에 티가 나는 한결같은 스타일이다.


명절이 끝나고 형과 나는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우린 우리 자신을 먼저 의심했다.


"그 자리가 할아버지 묘 위치 확실해?"


우리가 경황이 없어 위치를 헷갈린 건 아닌지

작년 추석 때 찍은 사진과 이번 설에 찍은 사진을

대조해 보고 주변 비석들을 확인해 보는 등

과학수사에 들어갔고 위치는 맞다는 결론을 냈다.


관리소 직원은 '파묘'라는 기록 외에는

아무 기록이 없다며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파묘하진 않았을 텐데 이상하다고 했다.

우리도, 관리소 측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관련법을 찾아보니 매장 기간이 끝난 무연고 시신은

유골을 화장해 장사시설 내 화장한 유골을 뿌릴 수 있는

시설에 뿌리거나 자연장을 한다고 나와 있었다.

자칫 유골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후손으로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었고

미신 같은 건 믿지 않지만 그냥 무시할 수도 없는

'파묘의 저주'에 대한 불길함을 떨칠 수 없었다.


형은 관리소 직원분께 봉분 위치를 설명드리며

다시 한번 파묘된 게 맞는지 확인을 부탁드렸다.

잠시 후 형에게 카톡이 왔다.


"역시 내 동생 짱

철두철미하고 계획적이고

매사 분명하고 냉철하지"


형이 갑자기 이럴 리가 없는데...

내 과학수사로 중요한 단서라도 잡은 건가?

그리고 잠시 후 할아버지 묘 사진이 올라왔다.

할아버지 묘는 신기하게도 제 위치에 잘 있었다.

당시 '우리가' 위치를 헷갈린 거였다.

아마도 묘지 확장공사를 하면서 몇 줄이 추가되며

세로 7번째, 가로 7번째 묘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


어찌 됐건 천만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 와중에 형은 나에게 덤터기를 씌웠고

가족 단톡방에 아내는

"저는 빼주세요~ 몇 번이고 이 자리가 맞냐고

물었습니다~ 억울해요"라며 혼자 살 길을 찾았다.

나는 나대로 관리소 측에서 책임을 덮으려고

그새 가짜 묘를 만든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묘 위치를 헛다리 짚은 '내가'

이 모든 사단의 원흉이 되어 해프닝이 마무리됐다.



관리소 측에서는 어떤 사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한 묘를 '파묘'라고 잘못 기록 관리하고 있었고

덕분에 우린 관리비 없이 공짜로 묘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발각(?)이 되어 그동안 밀린 벌초비를

다 물고 앞으로의 벌초비까지 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물론 당연히 내야 할 돈이지만 왜 이리 아깝냐...


이번 해프닝은 어쩌면 다 할아버지의 뜻일지 모른다.

기록 착오로 관리비를 안 내고 관리받고 있었지만

이런 무임승차는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그동안 무임승차 잘해오다가 왜 올해

그 의지를 표현하신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마다가스카르라는 난감한 주제어에도

글을 쓸 수 있는 에피소드를 던져주신

할아버지께 감사드리며 무사히 글을 마무리한다.

(할아버지는 거기 그냥 가만히 계셨을 뿐이고

내 설레발로 이렇게 된 거지만 아무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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