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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작가 Jun 17. 2024

아찔과 감사는 한끗차

<아내와 글쓰기 프로젝트 #14. 가장 아찔했던 순간>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란 글쓰기 주제를 받고

다시 한번 내 생을 돌아보았다.

내 인생에 그런 순간이 있었나?


기어 다니던 어린 시절 2층에서 떨어져

팔팔 끓던 1층 가마솥에 떨어졌을 때?

(다행히 내가 떨어졌을 땐 물을 끓이고 있지 않았고

본능적으로 낙법을 한 건지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하늘이 나를 살린 이유가 있을 텐데...

아직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막살고 있다.)

어쨌든 이건 내겐 기억이 없으니

부모님이 아찔했던 순간이었을 게다.


불장난하다가 남의 집을 태울 뻔한 적도,

소화기를 쏴 집 앞을 거품으로 뒤덮은 적도...

정작 난 사고를 치고 현장을 유유히 떠나버린 바람에

현장을 발견한 사람들이 더 아찔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미국 여행을 갔을 때도 비슷한 경우였다.

나보다도 아내가 더 식겁했던 순간이었다.

광활한 도로에서 운전만 몇 시간째 하는데

너무 지루하고 졸음이 쏟아졌다.

이렇게 잘 뚫린 도로, 카메라도 없는 도로에서

왜 다들 정속주행을 하는 거야?

미국이 이렇게 준법정신이 투철한 나라였나?

난 'Uptown Funk'를 틀고 볼륨을 높였고

뻥 뚫린 도로에서 신나게 액셀을 밟아댔다.


"미국 도로 좋~네! 이제야 좀 잠이 깨네!

Don't believe me just watch~

Hey, hey, hey, oh~

Stop, Wait a minute!"


뭐야?! 진짜 스탑, 웨이러 미닛!

백미러에 불빛을 번쩍거리는 경찰차가 보였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설마...'


속도를 줄이고 한 차로 옆으로 이동해 봤다.

내 뒤 경찰차도 옆으로 이동했다.

심장이 벌렁댔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진짜 나야? 어떻게 알고? 언제 나타난 거지?'


한 차로 더 옆으로 이동하며 속도를 줄였는데

뒤 경찰차도 바짝 따라 붙으며 속도를 줄였다.


'하아... 나 맞구나... 걸렸네...'


미국에서는 함부로 차에서 내리거나 움직이면

총을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꼼짝 않고 있으니 경찰이 창문을 내리란다.


"Do you know how many miles you just drove?"

(아마도 대충 이런 말이었을 거다.)


정답을 맞히면 봐주려나?

거짓말하다 총 맞을 수도 있으니 솔직하게 가자.


"Maybe... about 100 miles?"


경찰은 면허증을 보여달라고 했고 트렁크

여행가방면허증이 있다고 하니 내리란다.

급하게 캐리어를 빼서 열었는데 빨래가 쏟아져 나왔다.


"I'm sorry. Just a moment."


또 다른 캐리어를 열었는데 이번엔 속옷이...

못 찾으면 나라망신에 괘씸죄까지 걸린다는 생각에

도로 바닥에서 속옷을 헤집어가며

정신없이 면허증을 찾았다.

경찰은 팔짱을 낀 채 한심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경찰은 내게 따라오라더니 경찰차에 타라고 했다.


'오~ 미국 와서 경찰차도 타 보네?'


장갑차 같은 큰 경찰차에는 컴퓨터가 있었고

조서를 쓰듯 내 개인정보를 하나하나 물었다.

이때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한 번만 봐주세요'가 영어로 뭐였지?


이런 게 진짜 생활영어인데... 헛공부했네~

'한 번만 봐주세요' 표현들.
Let me off this once.
Let it slide please.
Give me a break.
외워뒀다 유용하게 써먹으시길...


"What's your email adress?"


나는 한메일, 네이버 메일을 불렀다.

경찰은 그런 거 말고 다른 메일은 없냐 물었다.

왜? 한국 메일 무시하냐?

난 구글 안 쓴다, 이게 다라고 하니

아까 캐리어에서 속옷을 봤을 때의 표정을 지었다.


결국 얼추 15만 원 정도의 딱지를 끊었고

다시 내 차로 돌아오니 아내는 왜 이리 오래 걸렸냐,

잡혀가는 알았다며 괜찮냐고 물었다.


"별거 아니야. 내가 한 마디 하려다가 참았네.

그나저나 저놈 때매 캐리어 빼다가 손목 삐었어.

짜식이 여행객 한번 봐주지 거 되게 빡빡하게 구네.

저 자식 저거 내가 가만 안 둬! 보험 청구 해?"


아내는 경찰과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이고~ 이제 와서 큰 소리는~

아까 뒤에서 굽실굽실하면서

'I'm sorry, Thank you' 거리는 거 다 봤어."


동방예의지국에서 왔는데 그 정도는 기본 아닌가?

그나저나 카메라도 없고 경찰 코빼기도 안 보였던

도로에서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따라왔지?

한인 슈퍼 사장님께 물어보니 위성으로 봤을 거란다.

미국에선 과속차량을 위성으로 감시하는데

무전을 쳐서 중간에 쏙 나타나 나를 잡았을 거라고...


와~ 미국 첩보영화에서나 보던 게 실제였어?

나 하나 잡으려고 위성을 보고 무전을 친 거야?

내가 그 주인공이라고? 오호~ 나쁘지 않네~


벌써 5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과태료를 내지 않으며

혼자만의 외로운 반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나저나 과태료 때문에 앞으로 미국 여행이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과태료도 이자가 붙나?


다행히 총도 맞지 않았고, 잡혀가지도 않았고,

심지어 아직 과태료도 내지 않았지만

그때 처신 잘못했으면 험한 꼴 당했을 수도...

안 낸 과태료 때문에 나중에 험한 꼴 당할라나?

이거 어떻게 처리되는 건지 아시는 분 있나요?



출처 : 다음 국어사전


'아찔하다'의 뜻에 가장 부합했던 경험이 있었으니

때는 고등학교 2학년 운동장 조회시간이었다.


아침똥을 때리러 화장지를 들고 복도를 걸어가는데

앞에서 교련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며 말했다.


"야, 뭐 해? 빨리 안 나가? 빨리 튀어 나가!"


햄릿의 심정이 이랬을까?


'참느냐 싸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잠시 몸을 피했다가 똥을 누고 갈 것이냐,

조회 끝날 때까지 참을 것이냐의 기로에 섰다.

교련 선생님의 호통에 뇌활동이 멈춘 건지

대장활동이 멈춘 건지 똥이 쏙 들어간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내려가자.


구령대 앞에 서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할 때의 심정이 이랬을까?


'배에서 다시 신호가 온다.

지금 이 계단을 내려가면 끝이다.

지금이라도 돌려야 한다.'


발길을 돌리려던 그때, 또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야! 너 어디가 인마! 빨리 안 내려와!!!"


운동장에 있던 체육선생님은 정확히 나를 지목했다.

두 번째 선택의 기로에 섰다.


'죽느냐 싸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내 머리는 '나중에 체육선생님께 맞아죽더라도

지금 발길을 돌려 똥싸러 가야한다'였지만

내 몸은 '운동장에서 똥을 싸더라도

일단 지금 살고 보는 게 먼저다'여서

다시 한번 똥이 쏙 들어가며 구령대를 내려왔다.


이런저런 식이 끝나고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됐다.

공포의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타임.

교장선생님과 내 괄약근과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똥꼬에 힘을 너무 주는 바람에

모든 피가 괄약근에 몰린 탓일까?

'갑자기 어지럽고 아뜩'했다.


"너무 어지러워서 너 좀 잡고 있을게."


난 눈을 감고 앞에 선 친구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잠시 후 눈을 떴는데 눈앞이 온통 하얬다.


'아... 이러다 쓰러지겠다.

잠깐! 여기서 쓰러지는 것까진 괜찮은데...

내가 만약... 똥을 싼다면...

누가 날 업고 가주지?

바로 여러분 

여러분은커녕 그런 분은 한 분도 없을 게 뻔하고

전교생 앞에서 개망신을 당할 순 없지.'


난 그냥 무작정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난 문화인이다. 똥은 화장실에서 싸야 한다.


"야, 장난하지 마!

너 그러다 선생님한테 걸려~"


앞으로 걸어 나가는 나를 보며 친구들이 웅성댔다.

친구들은 비틀거리는 날 보고 장난이 아니란 걸 알았다.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높은 구령대를 한 칸씩 올라갔다.

전교생의 눈은 교장선생님이 아닌 내게 쏠렸다.

구령대에 앉은 내게 선생님들이 달려오셨다.


"더위 먹었냐? 뭐여 이 새끼~

정신 좀 차려 봐!"


담임 선생님이 오시더니 내 뺨을 몇 대 때리고

귀를 만져보더니 진단을 내렸다.


"귀때기가 차디 찬 것이 이 새끼 체했구만~"


사람 귀때기는 원래 차디 찬 거 아니었나?

난 아니라고, 화장실만 가면 된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데리고 가셨다.


"교감선생님이 손 잘 따야~ 

손 따믄 금방 괜찮해져~"


교감선생님은 이런 일이 자주 있다는 듯

익숙한 동작으로 서랍에서 바늘을 꺼냈다.


"저 진짜 괜찮습니다. 다 나았어요.

화장실만 가면 됩니다."


담임 선생님은 일어나려는 나를 잡아 앉혔다.


"이 새끼 이거 겁 많은 거 봐야.

하나도 안 아픈께 가만있어!"


교감선생님은 내 약지를 바늘로 찔렀다.


"어? 피 색이 빨간디?"


검은 피가 나와야 한다며 새끼를 또 찔러보잔다.

나는 괜찮다며 화장실로 튀려고 했지만

교감선생님은 어디든 보이는 대로 찌를 기세로

바늘을 확 들어 올리며 나를 째려보았다.


"안 아퍼! 가만있어!"


결국, 당연히 새끼손가락에서도 맑은 피가 나왔고

교감선생님은 갸우뚱 거리며 내 다른 손을 쳐다보았다.


"이제 진짜 괜찮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잽싸게 튀어나와 내 오른손은 겨우 지킬 수 있었다.

똥 참다 아찔했던 순간에 이은

또 한 번의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이밖에도 크고 작은 아찔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군대에서 총기를 분실해 영창 갈 뻔 한 사건,

(새벽 경계근무 중 후임이 총을 놓고 잠들었는데

그걸 인사과장이 몰래 훔쳐 가버렸다.

위병조장인 나는 모든 책임을 지고 

말년에 험한 꼴을 당했다.)


엄마의 교통사고,

몰래 집 나간 아버지가 쓰러져 발견된 일...

(이건 이미 브런치에 글로 남겨서 패스~)


이 모든 일들이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만큼

이 행복을 모르고 살 뻔했거나 잃을 뻔했던

수많은 인생의 변곡점들을 떠올리면

'아찔했던 순간'들은 삶 곳곳에 숨어 있었다.


8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그때 헤어졌더라면 지금의 아내도,

사랑스러운 두 아들 윤이 준이도 없었겠지.)


양수가 터지고 48시간이 지나도

윤이가 나오지 못했을 때...

(윤이는 예상보다 너무 큰 아이였다.

의사가 3.7kg이라던 아이가 도저히 나오지 않자

결국 제왕절개로 꺼내보니 4.56kg였다.

자이언트 베이비는 감염 위험 때문에 한동안

몸에 비해 너무 좁은 인큐베이터 생활을 했다.)


오늘은 윤이의 14번째 생일이다.

매일 감동을 주는 이 아이가 없었다면

내 삶은 얼마나 건조하고 팍팍했을까?


아찔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다 보니

웃으며 보낼 수 있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더 내려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이가 뭉기적 거리며 할 일을 미뤄도

다 계획이 있겠거니...

지켜보기 답답하고 왜 저러나 싶을 때도

저러다 큰 인물이 되겠거니...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 6월에 어느 아찔했던 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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