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알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지인으로부터 사귀자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쁜 정도를 넘어 더럽기까지 하다.
다시 생각해도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잠시 화를 가라앉히고 지금부터 황당하고 열 통 터지는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그 사람은 대략 6개월 전부터 마주치는 사람마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새해에는 꼭 연애를 해야겠으니 빠른 시간 내에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녔다.
연상이면 좋겠지만 연하라도 굳이 상관은 없다고... 이상하지만 않은 사람이면 된다고...
처음엔 ‘장난인가 보다, 그래, 사람이 외로울 때도 있지!’ 하며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빈도가 잦아지는 것을 보며 적당히 좀 하지,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라는 마음을 넘어서서 급기야 나이 먹고 사람이 참 추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진심으로 화가 나는 이유는 바로 지금부터다.
늦은 시각, 갑자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 사람이었다.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연애 한 번 해 볼 생각이 없느냐”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느낌이 싸~했다, 대뜸 “그 사람 집 있어요? 돈은 많아요?”라는 질문을 총알같이 내던졌다.
“병아리씨 그런 사람이야? 집 따지고 돈 따지고 그렇게 연애하는 사람이었어?”
“그럼요, 저도 낼모레가 마흔인데, 손 잡고 떡볶이만 먹어도 행복할 나이는 지났죠. 그리고 지금은 그 누구와도 연애할 생각 없어요, 그러니까 두 번 다시 이런 얘기 꺼내지 말아 주세요.”
“나보다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계획도 뚜렷하고 생활력도 강하고, 체구도 자그마한 사람이 열심히 사는 모습에 점점 내 마음이 모래알처럼 쌓여 갔어. 집도 없고, 모아 놓은 돈은 없지만 나 인간성 하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어쩜 사귀자는 말을 ‘심심하면 밥이나 한 끼 하자.’처럼 저렇게 가볍고도 쉽게 팔랑팔랑 내뱉을 수가 있을까.
사방팔방 소개팅 해 달라고 떠들고 다니는 걸 내가 직접 봤는데 모래알이 뭐 어쩌고 어째? 다시 떠올려 봐도 뱃속에서 심장이 부글부글 요동친다.
뜨거운 주전자 뚜껑으로 주둥이를 한 대 ‘탁’ 때려주고 싶었다.
거절한 날로부터 일주일 동안 총 네 번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는 것을 보고 몸서리가 쳐졌다.
또다시 한번 화가 나는 이유는 고백을 했다는 사실과 자신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란다.
그리고 거절을 한 바로 다음 주,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작업을 거는 그를 발견했다. 오만 정이 떨어지고, 목소리도 듣기 싫었다.
혹여 나도 외로운 마음에 저런 사람과 잘못 엮이기라도 했었더라면... 하는 섬뜩한 생각을 하니 또다시 몸서리가 쳐졌다.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사람이 월세살이에 기초생활수급자란다, 눈치가 없으면 양심이라도 있어야지. 아, 이제 하다 하다 이런 똥파리까지, 아마 내가 전생에 잘못을 저질러도 어지간히 크게도 저질렀나 보다.
어디든 가서 돈을 주고서라도 남편을 하나 사 와야 하려나?
남자 친구 없고 남편 없는 게 이럴 땐 정말이지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