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은 재미가 없다. 자꾸 SNS를 들락거린다. 카카오톡을 켰다가 인스타그램을 쭉 스크롤했다가 페이스북에까지 들어가본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놀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저녁식사 자리에, 술 자리에 사람이 많을수록 흥이 나고 에너지가 생긴다. 주중국대사관 근무 시절에는 하루 저녁에 4개 일정에 간 적도 있다. 이른 저녁 시작하는 EU 대표부 리셉션, 카운터파트와의 저녁식사, 동료들과의 모임에 이어 늦은 밤 잠깐 들른 중국 친구 생일파티까지.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반나절 정도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 충분했다. 반 나절 이상 혼자 있으면 기운이 없었고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북경 근무 시절 야근도, 주말 출근도 꽤 자주 있었지만 어떻게 놀면 잘 놀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했다. 나이대가 비슷한 북경 주재 다른 국가 외교관 친구들과 자칭 <북경 젊은 외교관 모임 (BYD: Beijing Young Diplomats)>을 꾸려 열심히 쏘다녔다. 비슷한 업무를 하는 외교단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업무에도 도움이 되었다. 주말에 실내 암벽 등반장에서 나눈 이야기, 같이 자전거를 타면서 나눈 이야기 속에서도 전문(cable) 보고할 거리들이 종종 있었다. 사람 사귀고 친구 만드는 게 업(業)이니 참 잘 맞는 직업을 잘 찾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같이 즐기며 업무에 필요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니 그야 말로 덕업일치 아닌가.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도 좋아해서 틈만 나면 행사를 기획 했다. 단순히 같이 밥먹는 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직접 김치를 담가 먹는다는 주중 EU 대표부 카운터파트 말을 듣고 잠깐 북경에 오신 엄마까지 동원해서 다른 나라 외교관 친구들 열 명 정도를 불러 김치 만들기 수업을 열었다. 하면 제대로 하는 엄마는 모두가 김치 한 포기 씩은 집에가져갈 수 있도록 전날 부터 배추를 절였고, 수육을 삶았다. 영화 기생충이 전세계적으로 흥행일 때는 집에서 기생충 상영회를 하고 치맥 파티를 했다. (다 내돈으로)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까 치열한 고민은 미국 대학원 생활에서도 계속되었다. 한동안 업무를 하다가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니 천국 같았다.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이 되니 그냥 ‘잘’ 노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놀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와인 소믈리에,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고 세일링을 배웠다. 숙취가 있으면 다음 날 노는 데 지장이 있어 그 좋아하던 술도 줄이게 되었다.
이것 저것 배우고 도전하다보니 하루가 짧았다. 가끔은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하고 있어 배운 것을 조용히 복습하거나 음미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주어진 자유시간 안에 최대한의 것을 배우려면 그쯤은 타협해야한다고 결론 지었다.
그러던 중 2022년 여름, 멕시코 칸쿤 근처 마야 부족들이 거주하는 Puerto Morelos 지역의 정글에 위치한 요가원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하면서 200시간 동안 요가 강사 (YTT: Yoga Teacher Training) 과정에 참여했다. 하루 일과는 놀랍도록 단순했다: 아침 요가 - 식사 - 점심 요가 - 휴식 - 오후 요가 - 이른 저녁 식사. 다섯시에 저녁을 먹고 나면 해변까지 3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가서 땀에 흠뻑 젖은 요가복을 입고 그대로 바다에 들어가 노을을 보고 요가원으로 돌아왔다. 요가원까지 가로등이 없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려면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는 해변에서 출발해야 했기에 아무리 늦게 숙소로 돌아와도 저녁 7시였다.
7시부터 잠들기 전까지 약 3-4시간은 반 강제로 온전히 내 시간이 되었다. 그 날 배운 요가 동작을 복습하고, 산스크리트어로 된 요가 동작 이름을 외우고, 가족,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 통화해도 하루 3-4시간을 온전히 혼자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같이 수련하는 친구들은 저녁만 되면 모두 각자의 방에서 뭘하는지 조용했다. 저마다 명상도 하고, 일기도 쓰고, 복습도 한다고 했다.
어려웠다. 외롭다. 축 처지는 기분이다. 나는 뭘 해야하지.. 견딜 수 있을까 이시간들..
(다음 글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