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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여행자 Sep 03. 2023

어머니 자궁 속으로의 초대(2)

숨쉬기의 중요성 

해먹에서 얼마동안 잤을까. 사람들이 한 둘 나오기 시작했다. 2시간에 거친 테마즈칼 의식이 끝난 것이었다. 주술사들은 서서히 꺼져가는 모닥불 옆에 수박, 포도를 담아 갖다주었다. 땀에 흠뻑 젖은채로 누워서 과일을 먹었다. 멕시코 다른 지역에서 테마즈칼을 여러번 해봤다는 다른 수련자는 견딜 때는 어렵지만, 다 끝나고 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고 했다. 사우나를 한 것처럼 시원하기는 했지만, 어둡고 좁은 곳에 갇혀있었다는 느낌과 숨을 쉴 수 없는 공포를 느껴서인지 격앙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지쳐서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 중간에 잠이 깨기도 했지만 일어날 힘도 없어 깨면 깬 대로 있다가 곧 또 잠이 들었다. 


고대 메조아메리카 사람들에게 테마즈칼은 일종의 다시 태어나는 정화의식이었다. 주술사가 아버지를 상징하는 뜨겁게 달궈진 돌 덩어리를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하는 불가마에 넣고, 의식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이 의식을 통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남은 수련기간 동안 세 번의 테마즈칼을 더 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좀 쉽게 해볼까 하는 요량으로 테마즈칼 안으로 들어가는 순서를 계산해서 가급적 문 옆에 앉으려고 했다. 주술사의 안내에 따라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이 테마즈칼의 오른쪽부터 채워야하므로, 가장 먼저 들어가거나 가장 나중에 들어가면 문 근처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계산하기 어려운 변수는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가며 앉아야한다는 규칙이었는데, 순서를 아무리 계산해도 성별 비율까지는 계산하기 어려워서 결국 두번째 테마즈칼에도 가장 안쪽의 숨막히는 자리에 앉게 됐다. 두번째이니 반만 견뎌보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주술사의 진행으로 돌아가면서 지난 한 주는 어땠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번 테마즈칼에 임할지 참가자 모두가 한 마디씩 하는 것으로 의식을 시작했다. 스무명이나 되다보니 한마디씩만 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불가마 안 화력이 약해질때마다 주술사는 밖에 있는 다른 주술사를 불러 뜨거운 돌을 더 넣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돌이 가마 안으로 들어오면, 물과 향료를 뿌려 가마 안을 또 뜨겁게 달궜다. 뜨거운 습기가 가마 안에 가득차자, 주술사는 출입구를 두꺼운 천으로 가렸고, 그렇게 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한마디씩 하고 나자, 주술사는 각자의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했다.  주술사의 북소리와 노랫소리를 시작으로 다음 세션이 시작되었다. 동료 수련자들은 갖가지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누군지 끝까지 말해주지 않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사랑, 20대 초반에 임신했을 때 아이를 지우라고 강요하라고 한 엄마에 대한 미움, 요가의 길로 소위 ‘출가’를 하는 결정을 해서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 등 테마즈칼 가마 속은 열기와 습기 뿐 아니라 격한 감정까지 더해져 폭발할 것 같았다. 숨 쉬기가 어려웠다. 조금만 집중력을 잃어도 숨을 쉬기 어려웠다. 가마 속의 에너지가 고조될 수록 숨쉬기에 집중했다. 테마즈칼의 핵심은 체력도 아니고, 뜨거운 것을 견뎌내는 능력도 아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중심을 잡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 호흡 페이스를 잃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었다. 

다들 감정이 격해지다보니 저마다의 언어로 이야기를 했다.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절절한 사연 만큼은 구구절절 공감이 되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큰 어려움 없이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했다. 

몸속의 수분이 모두 빠져나간 듯 했을 때쯤, 드디어 의식이 끝났다. 간신히 테마즈칼 밖으로 나왔을 때, 꽤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반가울수가. 그대로 땅에 누워 빗물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모닥불 옆에 담긴 과일 접시에는 이미 빗물도 흥건히 담겨 있었다. 그렇게 계속 수박을 먹었다.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였을까, 동료 수련자들도 기진맥진한 채로 한참동안 빗속에 누워있었다. 


멕시코 정글 속 한달 간의 수련은 일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하루하루가 선명하다. 가끔 생각해본다. 꼭 다시 그 곳에서 가서 그때의 가벼움과 맑음을 다시 가져보고 싶다고. 그 한 달이 나를 정확히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새롭게 알게된 점이 있다면, 시간에 쫓겨 업무를 할 때마다 숨을 참고 있는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급한일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지 않는다.  ‘단숨에’ 무언가를 한다는 말처럼 숨을 참고 한번에 다 하려고 한다. 일터로 돌아온 요즘, 의식적으로 숨을 쉬기 위해 노력중이다. 테마즈칼 가마 속에서 배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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