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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사라 Nov 09. 2021

직장에서 나를 만나는 공간

전쟁터 속 안식처

 팽팽하게 잡아당긴 실, 그 가운데를 가위로 자르는 것처럼 긴장이 풀어지게 되는 곳. 하루 종일 긴장하다 잠깐 숨 쉴 틈 주는 곳. 이곳에 있으면 가운에 담긴 무게를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임사라 선생님이 아닌 그냥 인간 임사라가 된 것 같다. 바로 병원 안 스타벅스이다.


 우리 병원에는 스타벅스가 두 군데 있다. 1층 정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1층 스벅, 그리고 하늘이 환하게 보이는 곳에 본동과 멀리 떨어져 위치한 5층 스벅. 1층에 위치한 스타벅스는 그야말로 시장통이다. 병원의 거의 모든 커피 바이어를 상대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만큼 직원 분들도 어림잡아 7명은 돼 보인다. 이른 출근시간, 점심시간이 되면 기다리는 사람은 말도 못 하게 많다. 하다못해 우리 병원 스타벅스 출신이라고 하면 시급을 더 쳐준다는 소문이 들리랴. 그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은 만큼 회전율도 참 좋다.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근하는 날에는 종종 이용하는데, 지하철 역에 내릴 때부터 사이렌 오더를 날리는 것이 현명하다. 병원 로비에 딱 도착하여 1층 스벅에서 테이크아웃하는 동선도 참 편리하고 좋다.


 그런 반면 5층 스벅은 여유롭다. 바깥 풍경이 고스란히 보이는 뷰 맛집으로 이번에 새로 생겼는데, 5층에 있기 때문에 빨리빨리 테이크아웃만을 원하는 사람도 적고 앉을자리도 많다. 반면에 점심시간처럼 시간이 여유로운 때에는 나처럼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비교적 많아진다.


 “점심은 따로 먹을게요.” 가방에서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고, 출근길에 듣던 노래를 이어 듣는다. 가운은 입었지만, 날 옥죄이던 머리끈은 잠시만 풀어헤치고 5층 스벅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노라면 ‘아 나는 인간 임사라다.’ 하고 잠시나마 자유를 느낀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에어팟을 방패 삼아 오늘도 5층을 향한다. 간편하게 먹기에는 샐러드나 샌드위치 중에 샌드위치가 좋다. 한 손에 샌드위치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론 핸드폰을 잡을 수 있으니까. 그 점심시간 한 시간이 내가 직장에 머무는 동안 유일하게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이곳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 나는 ‘신입은 절대 늦어선 안 돼!’라는 부담감 때문에 출근시간보다 1시간 남짓 먼저 도착했다. 이는 우리 집과 직장이 먼 것도 있지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은 아빠의 영향이 컸다. 나는 태생이 게으르다. 그러나 아빠의 잔소리가 내 태생을 이겼다. 아침마다 늦겠다는 아빠의 잔소리엔 도저히 면역력이 생기지 않아 더 이상 듣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침 일찍 도착하여 부서 문을 열고 불을 켰을 때의 그 적막은 좋았지만 꽤 긴 시간을 내가 매일 일하는 곳에 있자니 내가 무상 노동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퍽 좋진 않았다. 대신 내가 찾은 곳은 스벅. 한창 책을 읽던 시기라 내가 만든 아침 한 시간이 책을 읽고 여유를 찾는 시간으로 쓰이는 게 참 좋았다. 우당탕탕 신입시절 하루의 시작을 차분한 마음으로 예열하기에도 좋은 시작점이었다. 가운 없이 책만 챙겨 부서를 빠져나올 때의 그 홀가분함이란! 아직도 상상만 해도 좋다.


 따뜻한 커피를 내가 좋아하는 텀블러에 담고, 내가 고른 책을 들고 홀연히 앉아 있는 공간. 분명 잠시 빌린 자리인데, 월세 내지도 않았는데, 그때만큼은 이곳에 나만을 위한 자리가 있다는 착각을 한다. 마치 시험기간마다 내가 찜꽁해놓은 도서관 열람실 자리처럼? 하교길 떡볶이 행 지름길인 담벼락 개구멍이 우리들만의 개구멍이었던 것처럼? 분명 다른 이도 사용했을 텐데 마치 나를 위한 자리로 느껴진다는 건 내가 이 공간에 애착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는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직장에서 ‘나’라는 사람이 주체성을 가지고 온전히 자기 자유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지도. 철저히 나의 선호로 정신적 평화까지 이뤄내다니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고서야 뭐냔 말이지.


 내가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 곳이 그렇다. 갈 때마다 기분 좋고 어딘가 편안해. 괜스레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주변 시선 신경 안 써도 되는 그런 공간.

인간에겐 심리적 피난처가 필요하다. 힘들 때 언제든 찾아가 위로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존재. 직장 안에서 내 심리적 피난처는 스벅이었다. 위로까지는 아니어도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잠시나마 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자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 당신에게도 이곳을 소개해주고 싶다.


당신에게 그런 공간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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