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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사라 Nov 21. 2021

92년생 유방암환우

삶의 유한함에 대하여


 병원에 있노라면 다양한 환자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중 아침 8 투약구 문을 열면 유독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을 많이 만난다. 이는 항암 주사

pre medication으로 경구용 약제가 자주 처방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항암제가 부작용으로 구역감을 갖고 있어 이를 예방하기 위해 아킨지오 혹은 에멘드가 처방된다. 항암치료는 단회성이 아니기에 아킨지오를 받는 환자들은 자주 오게 마련인데, 유독 나와 같은 나이대인 여자 환우가 오면 마음이 쓰인다.


 92년생 Breast cancer.

그녀의 삶을 가늠할  없으나 비단  삶과 그리 별반 다를  없었으리라.  가정에서 태어나  집안의  노릇을 하며, 유난히 출산율이 높았던 잔나비띠의 어마어마한 입시 경쟁이 있던 학창 시절을 보냈으리라. 열심히 살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진입한 여성 둘이 마주 보고 있으나, 나에게는 없는 유방암이 그녀에게는 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유대감을 느낀다.


 나와 비슷한 점이 있는 환자에게 복약지도를  때면 괜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환자에게는  친절하려고 목소리 톤을 낮추고 천천히 말하곤 하는데, 괜히 차분한 음성이 그녀의 기분을 다운시키진 않을까 혹은 기운을 드리려 밝게  인사가 괜히 그녀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진 않을까 . 복잡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와 그녀 사이의 공통점이라곤 1992년이라는 같은 해에 태어난 잔나비띠라는  그리고 여자라는 것에 불과한데, 아킨지오를 건넬  가까워진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도 그때만큼만은 가깝다고 느껴진다.


  삶은 유한하다. 우리는 누구나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매 순간 인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좋아하던 유튜버  항암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유명 여자 연예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심장에는  파동을 일으켰다.  이유를 곱씹자면 계속 건강하게  것이라 믿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환하게 웃던 모습, 씩씩하게 항암치료를 받아들이던 그녀만큼은 지긋지긋한 병마를 반드시 이길 것이라 나는 믿었나 보다.


 사람들은 살면서  순간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 믿곤 한다.  또한 그렇다. 나의 건강이 언제까지고  상태 그대로일 거라는 자만은 어디서 왔을까? 고백하건대, 나는 사실 최근 약을 먹기 시작했다. 일터에서 갑작스레 발생한 어지럼증 때문인데, 의사는 편두통의 일종으로 의증 하였고,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나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모든 병은 우울을 함께 데려오나 보다. 나는 잠깐 어지러웠을 뿐인데(사실 잠깐은 아니었지만..) 막상 이렇게 진단명을 받고, 약을 시작하자고 들으니 기분이 울적해졌다. 약의 부작용 중에 맥박이 느리게 뛰는 것도, 이에 따른 피로감을 느끼는  포함되었겠으나 그냥 그런  상관없이 나는 그냥 우울했다. 그러면서  느꼈다. 아니 다낭성 난소증후군 때문에 먹던 야즈 끊은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새로운 약을 먹기 시작하냐고. 너무 억울해!   병은 누구도 아닌 나를 찾아왔는지. 반갑지 않은 손님이 문을 두드리는데 열어주고 싶지 않아도  수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로 느껴진다.


 우리의 삶은 여러 면에서 영화와 같다. 하루는 사진처럼 단편적으로 기록되지만, 그 한 컷이 연속적으로 배치되면 영화가 되는 것이  삶은 하루의 집결체인 것과 같다. 영화마다 러닝타임도, 장르도, 등장인물도 모두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시작한 영화는 반드시 끝나는 점도 말이다.


 질환을 단순히 슬픔이라는 하나의 감정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다잡게 되는 계기로 보는 것은 어떨까?


 삶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나면 하루하루가 더욱이 소중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보낸 하루는 누군가에겐 그토록 바라던 하루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느 시의 문구처럼 말이다.



 오늘 하루를 마감하며 찍을 사진은 무엇으로 정했나요?



ps. 내가 단독 주인공인 영화의  컷을 어떻게 찍을지 고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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