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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사라 Dec 08. 2021

친절함에 대하여

         

 나는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눈물이 난다.

오늘은 호두과자 가게 사장님 때문에 눈물이 났다.

며칠 전 일터에서 갑자기 어지럼증이 나타나 간이 휴게실에서 누워있었다.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어서, 같은 돈 받고 나만 일 안 해서, 누군가는 뒷담화를 할까 봐 등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마음 한구석이 매우 안 좋았다. 나는 내 한 몸도 돌보지 못하는 멍청이 인가(?) 하는 커다란 논리적 비약까지 선보였고, 신체적 아픔에 굳이 추가로 죄책감과 불안함을 덧붙였다.   


그런 내 마음이 모인 것이 호두과자였다. 회사 출근길 지하철 역사에 있던 호두과자.     


사근사근한 말소리로 나를 맞이하셨다. 이것을 고를까 저것을 고를까. 우리가 몇 명이더라. 아차 실습 학생도 있지. 어느 세트 구성을 사야 모두가 적절하게 또 부담이 덜하게 나눠먹을 수 있을까. 나의 고민들은 가게의 호두과자 세트를 여러 번 들었다 놓았다 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사근사근한 말소리로 나에게 이야기하셨다. 괜찮고 더 둘러보아도 좋다고. 이런저런 구성이 있는데, 아마 이걸 사는 게 더 저렴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아이 참. 친절하셔서 훨씬 더 많이 살 뻔했어요.’라고 문득 말할 뻔했다. 수줍은 미소를 마스크에 숨기고 내 마음도 숨겨버렸지만 왠지 모르게 울컥해지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이런 마음은 이 전에도 있었는데, 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나는 맞벌이 가정의 둘째 딸로 외할머니의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는데, 그런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치매를 앓던 할머니는 10년 가까이 누워 계셨고, 실질적인 이별이 오기 전에 할머니를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는 존재라고 인식한 건 우리 할머니가 정말 야위어갔던 입원 5년째였다.     

  

그래서 할머니의 작고 소식을 들었을 때도 어느 정도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슬펐고, 슬픈 와중에 엄마의 슬픔이 얼마나 클까 가늠이 되지 않아 엄마의 눈치를 보기 바빴고, 그 와중에 둘째 딸의 책임 및 직장에서의 책임을 생각하느라 바빴다. 장례를 치를 때 어떤 조건으로 하는 것이 나을지,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음식상을 차려야 하고, 적절한 인사치레를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몸도 피곤하고 머릿속으로 생각이 끊임없이 돌아가니 감정이 활동할 틈은 없었다.     


그렇지만 슬픔은 분명했고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구성하는 어떤 한 조각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여느 날처럼 해는 떴고,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아뿔싸. 너무 눈치가 보였다.      


 원래 내가 일하는 직종은 업무강도가 세며, 그 당시 부서 상황은 인력이 충분하지 못하여 다들 휴가도 제한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입사한 지 일 년 남짓한 신입 직원의 외조모상이라는 것이 괜스레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까 봐, 타인에게서 수군거림을 들을까 봐, 어디서 큰 소리를 들은 것 마냥 걱정이 스멀스멀 커졌다.  


 커피를 대략 스무 잔 정도 샀다. 각자의 취향을 생각하여 아이스 아메리카노, 뜨거운 아메리카노, 라떼까지 각양각색으로 아주 다채롭게 구성하여 주문하였다. 일찍 출근한 건 물론이거니와 다들 볼 수 있는 곳에 커피를 내려놓고 저 없는 동안 고생하시느라 죄송하다는 말을 하였다. 마음 한편이 이상했다.     


 나에게 외할머니는 그냥 할머니가 아닌데. 동료의 모친상에 괜찮냐는 위로는 당연할 테지만, 동료의 외조모상은 괜찮냐는 당연한 질문도 당연하지 않은 건가? 그냥 조모상도 아니고, 외조모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평가절하되는 기분이었고, 내게 엄마와 비슷한 위치에 있던 할머니의 죽음이 동료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할머니에게 미안했다. 나는 되게 슬픈데 슬픈 걸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동료 한 명에게 문자가 왔다.  

  사라야. 고생 많았겠다.      


 물 잔에 물 한 방울만 더 떨어뜨리면 물이 왈칵 잔을 넘치게 흐를 것 같은데 그 한 방울이 언제일지 모를 때처럼. 포동포동하게 익은 꽃 몽우리가 언젠가는 터질 텐데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는 것처럼. 내 마음엔 언제부터 슬픔이 켜켜이 쌓여 차곡차곡 차오르고 있었나. 동료의 별 뜻 없는 문자 하나에 이토록 눈물이 왈칵 쏟아지다니.

  맞아. 나 사실 고생 많이 한 것 같아.      


꼭 말하고 싶었지만 목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말을 삼킨다.      

그러니까 저에게 함부로 친절하지 마세요.

눈물 나잖아.     


내 지친 마음에 나 사실 지쳤음을 알게 해주는 건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관심임을 한번 더 상기한다. 함부로 친절한 호두과자 사장님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내 동료처럼.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사람이 된 적이 있을까 하며 조금은 부끄럽게 글을 맺는다.      


나도 함부로 친절할게. 우리는 모두가 말 못 할 슬픔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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