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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사라 Feb 16. 2022

꽃을 사는 밤

하루의 시작은 괜찮았다.

오늘은 한 시간 늦게 출근이니 조금 더 늑장을 부려도 되겠지.

편안한 몸으로 정수기의 미적지근한 물을 받아 마시며 아침을 깨웠다.

오늘의 아침은 바나나를 먹을까 고구마를 먹을까. 고민하며 여유를 즐긴 편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꽤나 다를 수 있다.

누가 예상이라도 했으랴. 이렇게 하루가 고되었을지.     


회사는 업무가 끝이지 않았다.

녹초가 되어 시계를 올려다보았을 때는 오후 3시 남짓.

아직 퇴근까지는 4시간이나 남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업무 마감시간이 될 때까지 일은 끊임없이 몰아쳤고, 숨 한 번 고를 틈도 없이 저녁 7시가 되었다.     


18:59

19:00     


전광판 속 시계가 저녁 7시가 되기를 계속 확인하고는 미련 없이 인사하였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고됐어. 힘들었어. 

퇴근길 지하철 역사에는 꽃집이 있었다. 

지하철 한편. 작지만 내 눈길을 끄는 곳. 그곳으로 간다.


꽃집에서 꽃을 고를 때면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것을 고르자면 꽃이 아닐까.

노오랗고 마알간 색으로 소담하게 가만히 기다린다. 

푸릇한 이파리에 둘러싸여 발그라한 얼굴이 더 잘 보인다.

은은하게 조용히 앉아있는 안개꽃도 있다. 소소하니 편안하다.     


각각의 꽃들이 팻말을 메고서 기다리고 있노라니 

무엇을 사갈까 고민하는 순간이 길어져도 좋다.

오늘의 고민 중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이 꽃집의 특징으로는 각기 꽃마다 이름과 꽃말을 적어뒀다는 점이다.

  메리골드 -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너를 고를 수밖에 없다. 

메리골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보면 마치 내게도 반드시 언젠가는 행복이 올 것 같아서

메리골드 몇 송이와 그 주변에 있어줄 유칼립투스 잎, 냉이 풀 등을 골랐다.      


지친 내가 당장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

사랑과 응원의 말을 꽃을 통해 내게 들려준다.


언젠간 내게도 행복이 오기를

꽃 한 아름에 나를 위로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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