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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고졸 Mar 16. 2022

돈이 없어서 마이스터고를 갔다.

사실 그렇게 없는 것은 아닌데...

 며칠 전, 친구를 만났다. 초등학생 때부터 같은 아파트의 바로 앞집에 살던 친구인데, 고등학교를 다르게 선택해서 그 뒤로 왕래가 줄어든 친구였다. 그 친구는 인문계고를 진학했고, 나는 집에서 자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의 마이스터고에 진학을 했다. (대학교 개강까지 했는데, 롤챔스보러 서울까지 기어 왔다고 한다...)


 나는 평범한 공기업에 입사를 했고, 그 친구는 지방 거점대학의 기계과에 진학했다. 그렇게 비싸지 않은 미슐랭 1 스타 음식점에 데리고 가서 밥을 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대학교 공부도 맞지 않고, 진로가 고민이라는 친구에게 나는 나처럼 마이스터고나 가지 그랬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신도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셔서 가지 못했다는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며칠 전에 밥을 먹은 친구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중,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교육의 최전선에서 마이스터고 제도나 고졸 취업을 몸소 체험하며, 긍정적인 부분들을 충분히 봤었을 선생님들이 왜 그렇게 결사반대를 하셨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고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부모님 두 분이 선생님이면 금전적으로도 여유롭고, 재정적으로 지원이 가능해서 대학을 가면 되는데, 굳이 왜 '고졸 취업'을 하려고 하냐는 게 부모님의 주장이었다고 한다. 




 내가 마이스터고를 진학했을 즈음엔, '마이스터고와 실업계고의 고졸 취업'이 상당히 핫했다. MB정부의 지원을 힘입어 각종 대기업, 공기업, 금융권에서 고졸 인재를 채용하기 시작했고, 마이스터고의 입결이 높아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주위에서 '농땡이 치던 OO이가 한국전력에 들어갔데~', 'OO 이는 포스코 들어갔대~'라는 말을 굉장히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진로를 결정할 시점에 '인문계를 갈까', '마이스터고를 갈까' 많은 학생들이 고민했다. 그런데 유독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마이스터고나 실업계를 선택했던 기억이 난다.

나 또한 그랬으니 말이다. 돈이 문제였다. 근데 그렇게 못 사는 것은 또 아니다.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주부였다. 나는 사교육비가 너무 아까워서 그냥 마이스터고에 진학을 했다. 어머니는 극구 반대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난 어찌 돼었든 마이스터고에 진학했다. 


 내가 나왔던 초등학교는 위장전입의 천국이었다. 해당 도시에서 좀 산다는 사람들이 죄다 와서,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반에 3,4명의 부모님은 전문직 직업을 가진 분이었고, 잘 사는 친구들이 꽤나 많았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그런 친구들을 보기가 손에 꼽았다. 절반 이상은 나랑 비슷한 가정환경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온 친구들뿐이었다. 아버지가 일용직 근로자이신 분, 덤프트럭 운전하시는 분, 편부모 가정, 차상위계층 등의 가정도 30~40프로 되었다. 각자의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 스토리가 있는 친구들이 꽤나 많았다. 




  그래도 '한국에서 고졸로 산다는 것' 사실 꽤나 나쁘지는 않다. 잘만 풀린다면 말이다. 솔직히 제도적으로 보호받고, 이득을 보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고졸 친화적인 공기업, 공무원과 일부 대기업(삼성전자, 포스코 등)이 꽤나 많다. 생애 소득이나, 대학을 가면서 손해 보는 기회비용을 따져보면 오히려 고졸이 이득인 부분도 분명히 있다. 물론, 단순히 금전적인 부분만 봤을 땐 말이다.  


 오히려 요즘 같이 근로 소득의 의미가 크게 없어지고, 학벌이 무의미해진 이런 시대에는 고졸 취업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들 대학 가서 공부하며 돈 쓸 때, 20살부터 악착같이 돈 모으고 재테크한다면 나름 먹고는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요즘 굉장히 감사하고 행복하다. 내가 한 선택이 운 좋게 맞아떨어져서 밥은 먹고 사니까 말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고졸 취업한 놈이 고졸 취업하라고 하지, 대학교가라고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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