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모습 보이지 말자
유튜브에서 뜬 수리남 1시간 요약본을 보고 넷플릭스 결제를 했다. 1시간 넘게 영화를 보는 것을 그리 즐겨하지 않아서 10~20분 내외로 편집된 요약본을 선호하는데 수리남은 극 중에서 전개되는 쫄깃한 긴장감을 전체 분량으로 보고 싶어졌다.
사람들은 조우진이나 황정민의 연기가 좋았다고 감탄했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정우였다. 목숨이 2개도 아니고서야 어찌 그렇게 대담하게 코카인 대부인 황정민과 그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드라마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
극 중에서 하정우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자 쓰리잡까지 하지만 현실은 아파트 전세만 간신히 구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가족들을 부양하고자 홍어 사업을 하기 위해 수리남으로 떠나게 된다.
뒷돈을 원하는 군인, 마약상으로 몰려 억울하게 한 옥살이, 친구의 죽음 등을 겪으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타지에서 감옥살이를 마친 후에 다시 수리남으로 날아간다.
마약상으로 몰려서 타지에서 옥살이를 할 때, 아내가 전세를 빼서 변호사를 구해준다는 얘기를 듣고도 필요 없다며 전세는 절대 빼지 말라고 했다. 거기서 아내에게 징징거리면서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마약상으로 둔감하여 황정민과 거래를 하는 도중, 당장 총에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하정우는 가족에게 강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자녀의 교육에 신경 쓰고, 아내에게 별일 없다며 돈 많이 벌어간다고 가장으로서 안정과 확신을 주었다.
동물의 세상은 냉정하다. 우두머리 고릴라는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밑에 있는 부하 고릴라들이 깝죽거리면서 자리를 넘본다. 우두머리는 암컷을 독차지할 수가 있지만, 부하들의 도전, 싸워야 하는 리스크가 동반된다. 그래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덩치를 커 보이게 하며 가슴을 치는 등의 액션을 취한다.
내 아버지도 마찬가지. 가족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어머니에게나 자식들에게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 그냥 한숨만 좀 쉬시다가, 그냥 회사에서 별 일이 좀 있었다는 식으로 간략하게 말을 할 뿐이었다.
2년 전쯤, 아버지께서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단기적으로 기억 상실이 왔었다. 부랴부랴 뇌 MRI를 찍어 보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휴식을 취했지만 아버지는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UFC 여성 파이터는 한 팟캐스트에서 자신의 남자 친구(UFC 선수)가 KO 당하는 모습을 보고 정이 떨어졌다고 했다. 단순히 경기에서 졌기 때문에 정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여성은 자신의 남자 친구가 다시 일어나서 싸우는 투지 있는 모습을 원한다고 했는데, 보통 KO를 당하게 되면 그로기 상태가 되어 몸이 일시적으로 굳어 버린다. 의지 없이 나약하게 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정이 떨어졌다고 한다.
남자는 자신감이 전부라고 한다. 쥐뿔도 없어도 자신감이 있고 미래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면 현재가 시궁창이어도 남자의 미래에 배팅을 한다. 당장 자신의 남자가 실패를 해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으면 곁을 떠나지 않는다.
나와 함께 사는 가족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가족 구성원들이 가장을 뭘로 볼까?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징징거리며, 힘들다고 하는 행동은 아버지는 하지 않았다.
나도 아빠가 되면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어디 가서 내가 겪는 힘든 얘기를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여자친구에게는 힘든 일이 있어도 대충 얼버무리는 편이다.
아버지께 전화하니 골프친다고 나중에 전화하라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