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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글 Jan 02. 2024

아까운, 가족 글쓰기의 성과 확인...

온 가족이 글쓰기를 시작할 때, 아이의 나이는 초등학교 5학년. 그때부터 햇수로는 4년이 지나 이제 예비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의 고등학교 진학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하던 중 선택한 학교는 서울형 자사고. 그곳을 지원하게 되면 필수로 써야 하는 것이 '자기소개서'다. 글로 나를 소개하는 내용을 써야 하는 것. 4년간 해 온 글쓰기의 성과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생각했다.


자사고를 지원하게 되는 경우, 원서 접수는 12월 초에 진행을 한다. 서울형 자사고의 특징은 일반 전형에서 모집 인원의 1.5배수 이상이 지원을 할 경우, 1.5배수로 지원자 수를 줄일 때는 랜덤 추첨을 한다는 것이다. 성적, 출결, 학생부, 이름, 지원자 거주지 등 전혀 안 본다. 그냥 말 그대로 추첨. 즉 뽑기로 1.5배수로 인원을 줄인 후 면접 전형으로 이어진다. 면접을 봐야 하니, 개개인에게 맞춤형 질문이 필요하고, 그 질문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소개서다.


이왕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가족 글쓰기를 할 때 아이가 직접 자기소개서를 여러 번 작성을 했다. 뭔가 표현력이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많이 보였고, 엄마 아빠가 보는 강점이나 약점을 잘 적지 못한 것 같아서 이렇게 저렇게 써 보라는 조언도 많이 했다. 자기소개서가 점점 더 완성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급기야 엄마와 아빠도 직접 자기소개서를 써 보기로 했다. 아이가 이미 쓴 글을 보고 조언을 해 줄 때는 쉬웠는데, 막상 내가 쓰려고 하니 500글자를 채우기도 힘들었다. 그 동안 아이의 글쓰기 실력이 크게 향상되어 있었던 것이다. 


12월 초가 되어, 진학을 해 보려고 하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경쟁률은 거의 1.7대 1. 모집 정원의 20% 정도인 65~6명 정도가 자기소개서 입력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랜덤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설마 운이 정말 없어서 떨어지는 12%에 우리 아이가 들어가겠어? 안 떨어질 확률이 88%인데? 이렇게 생각하며 랜덤 추첨 발표가 있기 전 주말까지 우리 가족은 열심히 글쓰기를 했다.


그러나...


발표하는 날 오후 5시에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면접 대상자 번호를 확인하는데, 아이의 접수 번호가 없다. 10% 남짓하는 비율이 떨어지는 것이니 접수 번호 기준으로 앞뒤 번호는 다 있는데, 우리 아이 접수 번호만 없는 것이다. 면접 보고 떨어지는 것보단 충격이 훨씬 덜하지만, 열심히 해 왔던 우리 가족은 그저 허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이 열심히 해 왔던 가족 글쓰기의 성과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날아갔다.


그렇게 아쉬워 하며 보내는 중, 아이와 아이 엄마에게 굉장히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윗집에 사는 아이 친구도 같은 학교를 넣었는데, 랜덤 추첨에서 탈락을 했다. 아이 엄마의 직장 동료 중에도 두 집에서 같은 학교를 지원했는데, 둘 다 뽑기에서 떨어졌다. 너무 신기해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해 봤더니, 무려 0.02%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너무 놀랍지 않은가.


아이의 고등학교 진학을 통해 가족 글쓰기의 성과 확인을 해 보려는 계획은 틀어졌다. 하지만, 요즘 가글을 계속 쓰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아이가 제법 글을 잘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청소년기에 들어 머리가 굵어지고 생각하는 능력이 향상되어 그런지 요즘 쓰는 글들은 부쩍 잘 썼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고, 가보고자 했던 자사고가 아닌 다른 학교를 가더라도 아이가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이 든다. 


이게 다 4년을 이어, 이제 5년째 접어드는 가족 글쓰기의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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