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럽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콜드플레이가 마침내 내한을 왔다. 비록 내한 공연은 못갔지만 당시 핫하단 표현만으론 모자랐던 체인스모커스와 낸 콜라보곡 something just like this가 그룹에게 있어선 정말 오랜만에 빌보드 싱글 3위라는 대성공을 가져다줬었던 게 기억난다. 그것이 바로 2017년이었다. 두아 리파가 New rules로 초대박을 내기 직전, 에드 시런이 댄스곡으로 엄청난 흥행을 내고 로드가 멜로드라마라는 역작을 냈던 연도. 그리고 2017년은 내 20대가 꺾이기 시작한 지점이었다.
아직 20대가 한참 남아 끝을 전혀 생각도 못했던 그 즈음, 공덕역에 잠시 머물렀던 시기에 자주 갔던 빵집이 있다. 내 픽은 슈크림이 들어간 페이스트리였다. 겉이 바삭거리고 안에는 우유와 계란, 바닐라 풍미가 가득한 디플로마 크림이 빼곡히 채워져, 한 입 물면 파이지는 휘날리고 속 안에 가득 찬 크림은 해방의 쾌재를 부르며 온데 묻던 그 맛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깨끗하고 과하지 않은 단맛이었다. 꾸미지 않아도 원재료가 좋기에 빛나는 그 맛. 꾸미지 않아도 젊음에서 나오는 피부의 광채로 빛나는 젊음처럼.
그 아름다웠던 것을 맛보는 호사는 그닥 오래 누리지 못했다. 삶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막연하고 막막해보이는 미래를 거부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뒤로 그 맛을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아무리 학교에서 가까웠대도 굳이 찾아가지 않고서는 볼 일이 없는 곳이었기에. 그렇게 바쁜 현실의 단짠단짠에 바닐라향 가을의 기억은 묻혀버렸고 6년이 넘게 그 곳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 그 사이에 콜드플레이는 앨범을 두 개 더 냈고, 두아 리파의 역작 future nostalgia가 나왔다. 로드의 solar power는 전작에 비해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을 자각하여 시간을 내서 가 본 그 곳. 그 집은 그대로 있었으나 그 메뉴는 남아있지 않았다. 아쉬움에 그때 귀엽다고 좋아했던 빵을 든 고양이가 그려진 포장지는 그대로 남아있는지 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20대의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던 시점에 반추해본 반십년의 순간이 곁에 남아있지 않듯이.
나의 20대 후반은 불확실성 속 기대로 시작하여 불안과 방황으로 점철되었다. 그 어느 것도 계획대로 이어지지 않았고 실날같은 기대와 희망을 본 바늘구멍 너머에 남아있는 것은 다른 결과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것도 확정되지 않은 미래였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이 척박한 나의 땅에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 있었고 그 댓가는 불안과 방황이었다.
페이스트리는 예쁘게 먹을 수가 없다. 온데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흩날리고 번민의 흔적을 남긴다. 방황하고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흔들리며 길을 찾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나이였던 것처럼. 그렇게 파스스 부서지며 피우는 혼란의 꽃부스러기 사이에서 찾은 것은 너무나도 부드럽고 연약해서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손가락 사이 틈새로 시간과 함께 흘러 떨어져버린 바닐라향 속내. 아무리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기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줘도 나는 내 손가락 사이로 중력의 가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가버린 내 시간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좀 더 단단한 마음을 가졌다면 나는 그것들을 손 안에 품을 수 있었을까? 그 아름다웠던 병아리색 달콤함을 맛볼 수 있었을까. 떨어진 그것들은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기억할 끄나풀조차 남겨놓지 않고 그리도 빠르고 야속하게 흘러가버린 내 감정과 시간들은 그렇게 공허 안으로 사라져버린 걸까.
Coldplay, The chainsmokers - Something just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