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날들> 강아지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면, 나는 이 넓은 우주에서 우리가 만나 이렇게 서로에게 특별해질 수 있게 만든 힘이 무엇일지 궁금해지곤 했다. 우리의 존재가 서로에게 깃들고, 이렇게 서로를 비춰주는 조그만빛이 될 수 있게 해 준 그 힘이. 말도 통하지 않고 종마저 다른 둘 사이에 사랑의 시간이 쌓여 서로가 서로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기적이 아닐까?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중에서
→ 작가가 반려견 봉봉을 키우게 된 과정과 봉봉의 성장 과정을 잘 담아냈고, 봉봉이로 인해 사랑을 배울 수 있었음을 여실히 느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도 "내 마음속 움직이지 않는 별이 된 봉봉에게 무한한 애정이 담긴 감사의 입맞춤을 보낸다. 이 책에 실린 내 글이 조금이라도 사랑이 깃들어 있다면 그건 온통 봉봉이 가르쳐준 것이다."라며 마무리를 맺는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친정에서 키우다 별이 된 강아지 2마리, 그리고 내가 결혼 후 독립해 오롯이 키우고 있는 사랑스러운 반려견 초코와 베리를 통해 특별해진 우리의 인연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 본다.
'초코야, 베리야. 너희는 어느 별에서 왔니?' '우리는 정말 처음부터 만날 인연이었을까?'
'이 예쁜 아이들이 나에게 오려고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났나?'
내 안의 수많은 물음표를 남긴다.
우연같은 기막힌 이야기를 인연으로 이어나가는 결말이란.
사람과 강아지의 유대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과 반려견 간의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함이라는 것이 생긴다.
서로 기대며 서로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내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반려견들.
"초코야, 베리야. 오늘도 여전히 한결같이 너희들의 사랑을 받아서 엄마는 너무 행복하단다."
<슬픔이 가르쳐준 것> 모든 것에 예민해지고, 촉각과 시각과 청각이 잠에서 깨어난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은 전에 없이 날카로운 촉수를 얻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모든 존재는 단 하나의 부재로 하루아침에 낯설어진 세상의 변화를 온몸에 아로새긴다.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중에서
→ 반려견 봉봉의 죽음으로 인해 작가의 깊은 사색이 담긴 언어들은 내 과거의 경험들을 떠올리게 하여 코 끝을 시리게 했다.
소중한 존재의 부재란 감히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상을 살면서도 문득문득 그 존재에 대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면, 한동안, 아니 평생을 그 존재의 부재로 인해 슬픔과 그리움의 응축된 감정을 우리 몸 안에 아로새기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11년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작은 이모 생각이 났다. 남겨진 사촌언니의 애처롭고 어쩔 줄 모르던 그 눈빛. 이모를 보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보았던 아름다웠지만 슬프게만 보였던 이름 모를 꽃들.
그 풍경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예뻐 보였던 꽃들이었는데, 이모의 부재로 하루아침에 세상의 모든 것들과 작별해 버릴 수 있을 것처럼 나와 등을 돌리게 된 세상 속 이야기랄까.
마치 그림 같은 하얀 뭉게구름을 드리운 아름다웠던 하늘이 이모라는 존재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이토록 슬픔으로 가득 찬 잿빛 하늘로 변모할 수 있을까?
너무 낯설고 무섭도록 슬프다.
나에게는 그런 소중한 존재들과 작별하는 시간이 조금은 더디게 왔으면.. 하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단절된 삶을 살고 싶지 않기에.
<무용의 아름다움>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들뿐인 걸까. 하지만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들뿐인 걸까.'는 작가의 자조 섞인 고백에 가깝다.
세상의 모든 무용의 것들도 우리 모두에게 선택받고,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비록 볼품없어 보이는 무용의 것들도 주인의 활용도에 따라 유용의 아름다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떨어지는 꽃잎 하나도 허투루 보지 말랬다.
나는 이 작은 것들도 관찰할 만큼 넓은 아량을 갖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작품이었다.
특히 작가의 마지막 마무리는 제일 인상적이었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작은 것 하나도 쉽게 지나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노력과 섬세한 감성이 돋보인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무용의 것들을 포용하는 언어로서 결국 그 무용의 것들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게 하고, 행복에 이르게 해 준다는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