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그 공간에 담긴 나와 우리의 이야기
인품과 성품을 두루 갖추신 우리 시어머니
오늘 매일 글쓰기의 주제로 글을 쓰려고 생각해 보니 마침 나와 간단히 전화통화를 마친 우리 시어머니 생각이 문득 났다.
시댁 얘기를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 편인데, 막상 글을 쓰려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마음먹었으니 이야기를 꺼내보련다.
나는 남편과 올해로 연애는 18년 차, 결혼은 11년 차를 맞이했다.
내가 20살이 되던 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기에 함께한 세월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인생의 절반이나 함께해 온 셈이다.
그 세월 동안 내가 남편에 대해 느낀 점은 한결같이 자상한 점과 성실함만큼은 가히 최고라 여기고 있다.
내가 어떤 자리에서든 누군가를 자랑하는 것에 매우 인색한 편이지만, 이러한 사실은 내가 남편을 18년째 곁에서 지켜보면서 항상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남편의 올바른 성품을 그대로 물려주신 시부모님을 생각해 봤을 때, 물론 시아버님도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분이시지만, 남편은 본인 입으로 "나는 완전히 외탁했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시어머니 성향을 많이 닮은 듯하다.
우리 시어머니는 성품과 인품이 매우 좋으시다.
이 한마디로 어머님을 표현하는 것이 무척 죄송스럽지만, 싫은 소리를 한 번 못하시는 성격 탓에 당신은 교회를 다니고 계시는 모태신앙이지만, 굳은 소리 한 번을 안 하시고 여태까지 시할머니 생신은 물론이거니와 시할아버지의 기일 제사, 명절 제사는 물론 예전에는 작은 집 제사까지도 직접 챙기셨다.
아버님의 직장생활로 부산에서 터를 잡고 계시기에 전라도에 계신 시할머니를 모시고 계신 상황은 아니지만, 할머니께서 허리를 크게 다치셔서 부산에서 병원 생활을 하실 때면 어머니는 항상 친정 엄마인 것처럼 그렇게 살뜰히 챙기신다.
오죽했으면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이 어머니를 보시곤 "딸인 줄 알았다"라고 추켜세울 정도이다.
올해 92세가 되신 시할머니는 입맛이 까다롭고, 특유의 고집이 있으시다. 그런 할머니를 끔찍이 여기고, 항상 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하는 어머님의 모습을 볼 때면 정작 며느리인 나는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과 전라도 시할머니댁에 명절 때마다 매해 함께 갔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전까지 시어머니께서 명절을 쇠는 모든 과정을 보자니 같은 며느리로서 나는 한 번씩은 숨이 턱턱 막힐 때가 많았다.
손주며느리인 나는 이런 심정인데 우리 어머니는 어떠실까?
집안의 맏며느리인 시어머니의 고단함과 애씀은 내 눈에는 당연하게 보일리 없다.
사실, 우리 시어머니는 젊어서부터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허리 수술을 3번이나 하셨다.
내가 남편과 결혼했을 때는 이미 세 차례의 대수술을 마친 상태셨다. 어머니의 성치 않은 모습을 보면 자식 입장에서는 한 번씩 화가 날 수밖에 없나 보다.
우리 남편은 속상한 마음에 "엄마, 허리가 너무 아프면 이번 명절은 건너뛰고 좀 쉬어도 되잖아. 그렇게 꼭 가야 되는 거야?"라며 따지듯이 물으면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할 도리니까 당연히 하는 거야."라고 하염없이 얘기하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서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어머니는 3번의 허리 수술에 이어 몇 해 전에는 갑상선 암까지 이르게 되셨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셨다.
수술한 이후 현재까지도 아침, 점심, 저녁 단위로 약을 꼬박꼬박 챙겨드셔 야만 한다.
그리고 양쪽 어깨통증으로 인해 병원을 찾는 일은 어머니의 중요한 일상 중 하나이시다.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도 본인 역할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미루거나 투정하시지 않고 매번 최선을 다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볼 때면 존경해 마지않을 수 없다.
또한 우리 시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두뇌가 명석하셨다고 한다.
글솜씨도 정말 빼어나시고, 손재주가 좋으셔서 웬만한 이불, 커튼 같은 것은 다 미싱기로 직접 만들어 사용하신다.
필요한 옷도 직접 만들어 입으실 정도이다.
손주들의 낮잠 이불, 베개, 옷가지들도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일구어내신 작품이다.
게다가 전라도 출신이시라 각종 김치 담그기는 물론, 국과 반찬류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면서 덕을 본 건 바로 며느리인 나이다.
나는 무슨 복을 타고난 건지..
한 번씩은 이런 생각도 든다. '매번 자식들을 위해 김치를 담그시면서도 정말 자식들에게 무언가 바라는 마음은 없으셨을까?'
손주들 잘 먹는 모습만 봐도 그렇게 좋으신지 애들이 먹고 싶다고 하는 건 꼭 기억해 두셨다가 다음에 아이들이 갈 때면 꼭 손수 만들어 주신다.
어머님표 상차림을 보자면 매번 감탄과 감동이 밀려온다.
같은 여자로서 이렇게 손수 음식을 차려내기까지의 과정과 수고로움, 무엇보다도 그 정성과 사랑을 알기에 나는 매번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린다.
나는 비록 이러한 시어머니의 성품과 인품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사실 어머니의 성격과 나의 성격은 매우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어쩌면 어머니의 상황이 같은 여자로서 이해될 때가 많다.
사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텐데'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당신 몸이 안 따라주고 힘들 때는 사람이다 보니 이번만큼은 힘들다고 하실 수도 있을 법한데, 그 많은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티 내지 않고 꿋꿋이 제 역할을 해내고 계신다.
우리 시어머니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항상 모든 역할을 대충 하시는 것을 못 봤다.
모든 역할을 허투루 하시지 않고, 매번 꼼꼼하게 때로는 열성적으로 해내고 계신다.
과연 나였다면 어머니 자리에서 그렇게 해올 수 있었을까?
단연코 난 아마 못 했을 것이다.
'나는 며느리로서 시부모님께 잘하고 있는가?'라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면 나는 잘한다고 절대 표현할 수가 없다.
마음은 항상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죄송함도 있고, 많은 세월을 봐왔지만 표현에 서툰 나는 여전히 시부모님이 항상 어려운 존재이다.
속으로만 '잘해야 하는데...' 생각으로만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듯 나는 살가운 며느리이지도 못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그저 그런 며느리인 것이다.
그렇기에 시부모님께는 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시부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정성, 따뜻함 모두 가슴에 되새기며 며느리로서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러한 다짐이 반드시 행동으로 행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며느리가 될 것이다.
우리가 최근에 이사 오고 난 후 시댁이 10분 거리에 있어 좋은 점들이 너무 많다. 남들은 '힘들 텐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근처에 시부모님이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마음이다.
오늘은 어머님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메밀부추 전으로 저녁을 차린다. 어머님표 배추김치, 물김치, 그리고 각종 밑반찬들....
매번 이 감사함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