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터뷰가 이상적인 대화의 특징을 고루 담고 있는, 꽤 아름다운 소통법이라고 생각한다. 1년 전 웹진 동아리에서 인터뷰어로 활동할 기회가 생겼고, 그때 인터뷰가 상상 이상으로 섬세함과 집요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임을 알게 됐다. 인터뷰어를 선정하고, 섭외 요청을 하고, 일정을 잡고, 사전 질문을 만들고, 좋은 대화를 나누고, 녹취를 풀고, 윤문하고, 수정하고, 서문과 맺음말을 작성하는 지난한 과정. 그건 누군가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겨우 좋은 대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과정이기도 했다.
작가 안담은 인터뷰가 인터뷰'이'를 알 수 있는 매체인 듯 보이지만, 사실 인터뷰'어'가 누구인지를 더 드러낸다고 말한 적 있다. 정말 그렇다. 소재, 질문, 뉘앙스 등에서 저자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목소리를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인터뷰 대상은 그 자체로 저자의 시선이나 역사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타투 소유자, 퀴어 프렌들리 바, 비거니즘 동아리, 동네 서점, 성인용품과 비건 음식을 파는 가게. 내가 취재했던 인터뷰이다. 그들로 말미암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역추적하는 것은 굉장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은 그들에 대한 이해이자 나에 대한 이해이기도 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 시리즈의 초석이 되었던 당시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다. 돌이켜 보면 대상을 알아가기 위한 목적 외에도, 어떤 유형의 대화를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지독함도 소통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감추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면서, 여럿이 나누는 대화만이 지닐 수 있는 힘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누구보다 나에게 절실했던 이야기들을 어여삐 봐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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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사람들이 좀 더 예의가 발랐으면 좋겠지
뭔갈 물어볼 때 ‘저기요’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지
손가락으로 찌르거나 밀치지 않았으면 좋겠지
아마 그게 너의 리듬
엄마도 이해 못하고 친구들도 가까운 애완동물도
이해 못하는 아마 그게 너의 리듬
- 이랑, 너의 리듬 中 -
내 몸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다.
이 얼룩, 그러니까 타투는 기억하는 한 나의 역사에 최초로 새겨진 무모함의 흔적이다.
눈으로 보이게 된 충동 혹은 당돌함의 표상은 은은한 영향력을 뽐내는데, 가령 ‘나의 리듬’을 떠올리게 하는 수단이 된다. 모든 노래에 고유의 리듬이 있듯 생김새와 생각과 자라나는 환경이 제각각인 인간의 삶 역시 저마다의 리듬이 있기 마련이다. 나름의 속도와 방향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엔 어느 정도 규정된 법칙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사회의 흐름과 견주어 보며 고유한 색채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고, 그때 세상의 리듬은 함께 공명하는 파동이 되기도 진로를 방해하는 잡음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 사는 나는 유독 많은 잡음을 느낀다. 개인의 리듬에 대한 존중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유사한 패턴만이 반복되길 요구하는 곳이기에.
이랑이 노래하듯 나의 리듬을 찾는 건 저항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해서 표현하지도, 털어놓지도, 감히 생각으로 품지도 못했던 고집과 취향. 그 모난 뾰족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판이 될 수 있다. 타투는 여러 의미의 저항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지표처럼 느껴진다. 범람하는 사회의 리듬에 발버둥친 흔적. 그래서일까. 타투 소유인들은 내겐 마냥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만의 리듬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벌새고, 사라지는 것이 무서운 겁쟁이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낭만가고, 사실 그 무엇도 아닌 아무개다.
가을의 초입,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타투 소유인에게 대화를 청했다. 당신은 왜 기꺼이 그런 얼룩을 만들어야 했는지 그렇게 당신은 조금 더 당신에 가까워졌는지 목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서로를 탐색했던 우리의 대화가 무엇이었는지 오래도록 고민했다. 기어이 이 대담에 이름이 있어야 한다면 이렇게 불리길 바란다.
여린 것들의 분투이자 당신의 뾰족함을 향한 연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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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터뷰보단 대화라고 생각하고 편안히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일전에 타투를 주제로 대화해 본 적 있을까요?
‘예쁘다’, ‘어디서 했니’, ‘내 주변에 타투 많은 사람은 너밖에 없어’ 정도의 말만 들어보고 깊게 얘기한 적은 없어요. 사실 타투 한 지 오래돼서 이제는 한 몸 같고 별다른 생각이 없는지라…. 어느 정도냐면 최근 수업의 일환으로 타투이스트를 리서치 해 갔는데, 교수님이 타투가 많은데 좋아하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때 새삼 깨달았죠. ‘아 맞아 나 타투 진짜 많았지!’ 이번 인터뷰 역시 그렇고요.
그만큼 익숙한 것이군요. 처음엔 분명 낯설었을 타투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제 성향이 크게 작동한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충동적이고 별생각 없이 큰일을 잘 벌이거든요. 스무 살 때 미국에서 활동하는 타투이스트 사촌이 잠시 한국에 왔었는데, 원하면 하나 해주겠다고 제안하더라고요. 성인이 되고 탈색, 피어싱, 타투를 다 해보고 싶어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죠. 일주일 만에 결정하고 받은 게 손목에 있는 저희 집 고양이 타투예요.
신기하네요. 첫 타투가 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이든 처음은 어렵잖아요. 주변의 시선이나 후회할 것에 대한 걱정, 불안이 강한 시기니까.
잘 보이지 않는 부위여서 괜찮을 거란 생각도 했고요. 타투 때문에 안 뽑는 회사는 내가 안 간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웃음)
그 당당함 너무 부럽다. 저는 걱정이 많고 미래도 불투명하지만 우연히 본 타투이스트의 인터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동물과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그분의 가치가 와 닿았고 도안도 너무 아름다웠죠. 비건 타투라는 개념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강하게 끌림을 느꼈던지라 저 역시 무모하게 질러버린 것 같아요. 처음엔 어느 정도 무모함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무모하지 않으면 시작을 할 수 없죠.
타투는 의미를 담아서 새기는 편일까요.
그냥 그때그때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 새겨요. 예를 들어 취미로 그림 그리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그린 토끼가 너무 예쁘게 느껴지더라고요. 타투로 새기고 싶다고 말했더니 흔쾌히 자기가 아끼는 그림에 의미를 담아 선물해줬어요. 가장 애정이 가는 타투죠.
저도 타투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평소엔 모든 것에 의미부여를 잘하거든요. 너무 과몰입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런데 무언가 존재하는데 의미를 따지는 게 어느 순간부터는 피곤해지더라고요. 사실 삶의 대부분은 큰 의미 없이 흘러가잖아요. 이유를 찾고 따지는 게 꼭 바람직한 건 아니다, 별 의미가 없어도 그 상태 그대로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어요. 그래서 타투만큼은 의미 바깥에 내버려 두고 싶었죠.
그렇구나. 저는 대체로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편이라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저도 다른데 비슷해서 재밌어요. 타투 작업은 각각 다른 타투이스트한테 받으신 걸까요.
사촌에게 받은 다섯 개 빼고는 전부 달라요. 제가 맥시멀리스트인 것과 일치하는 맥락인 것 같은데, 지금까지 옷이나 책이나 살림살이들을 정말… 많이 샀거든요. 통일감은 일체 신경 안 쓰고 갖고 싶은 건 다 수집하는 거죠. 지금은 금전적인 여유나 물질적인 공간이 부족해서 쉬고 있지만.
맥시멀리스트면 혹시 사람도 다양하게 만나는 거 좋아하나요?
체력적인 이유로 유지를 잘하진 못하지만 다양하게 만나는 거 좋아하죠.
타투가 정말 성향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드는 게 저는 꽤나 미니멀리스트거든요. 웬만하면 사지 않고 욕심도 잘 내지 않아요. 인간관계도 좁고 깊은 편이고요. 저는 다른 것들과 연결되는 게 버겁고 귀찮아요. 유행 따라가는 것도 싫고 쉽게 지치는 편이죠. 그래서 타투도 한 분에게만 계속 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에요.
(눈과 입이 커지며) 신기하다. 저는 한 번 타투 받으면 그 분에게 눈이 잘 안 가요. 도면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비슷한 거로만 채우기 아깝다는 느낌. 진짜 다르구나.
이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단 걸 아니까요. 요즘은 다양한 것과 연결될 기회가 많아져서 영역을 안 넓히면 손해라는 생각이 만연한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무엇과 연결될지와 함께 무엇에 덜 연결될 것인지 많이 고민해요. 그것도 중요하다고 느껴서.
*
계속 봤는데 타투 중에 인물이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이렇게 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요.
여러 작업자를 만났지만 공통적으로 인물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요?
음… 당시에는 마음에 드는 영화 캐릭터나 도안을 새긴 건데요. 좀 더 생각해보면 본질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울하거나 힘들면 사람이 싫어지기도 하는데 결국 사람이 없으면 더 우울해지더라고요. 자취도 대부분 같이 했고, 혼자 살 땐 매일 가족들과 페이스 타임을 켜놓고 할 일을 했어요.
그 정도면 사람이 싫어질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웃음)
그래서 사람이 안 좋다는 건 말 그대로 정신 상태가 안 좋다는 단순한 신호인 것 같기도 해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생경해요. 듣고 보니 사람 타투는 두 명이 같이 있네요. 홀로인 타투마저도 서로를 바라보고 있고요.
그러게요. ‘사람 싫어’ 사람만 볼 수 있는 디테일인데요. (웃음)
저는 사람을 좀 크게 인식해요. 예를 들어 인류가 세상에 온 게 죄라고 느끼는 거죠. 자연에게, 동물에게 못됐고 서로에게도 너무 폭력적이잖아요. 세상이 어지러운 건 인류의 탓이라고 쉽게 퉁쳐서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분명히 사람이 있어야 살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류가 싫다는 생각을 버리긴 힘들더라고요.
저도 대학에 입학하고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해서 공감이 가요. 저는 신입생 때 교회에서 왜 LGBTQ+를 혐오하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2학년 때는 총여학생회에서 페미니즘 의제로 행동하기도 했어요.
저도 너무 공감하는 부분인데 대단해요. 찐 운동가였다.
지금은 좀 타협하게 됐어요. 그런 생각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올바르다는 생각은 여전히 갖고 있지만 평소엔 거시적으로 생각 안 하고 끊어버리게 되었어요. 관련해서 한 번 호되게 일을 겪었는데 그 후로 연결이 끊어진 느낌이에요.
저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상생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갖는다고 세상이 갑자기 변하지 않을 거란 걸 매번 느껴요. 결국 이걸 공감할 수 있는 소수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이 대체로 싫고 자연을 더 좋아해요.
*
아무래도 타투는 특정한 이미지를 풍기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이미지와 스스로 생각하는 이미지가 일치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제가 한 타투와는 일치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타투하면 떠오르는 강하거나 무서워 보이는 이미지를 얻고 싶었어요. 저는 안 강하고 말랑말랑한 귀여운 이미지잖아요. (웃음) 타투 말고도 피어싱 같은 노력들을 했지만 결국 외적인 것보단 저라는 사람 자체의 이미지로 평가 되더라고요. 제가 고정관념이 있고 오히려 사람들은 고정관념이 없다는 걸 이때 깨달았죠.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전형적인 남성성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어릴 적부터 나랑 안 맞는다고도 느꼈고 여전히 많은 부분을 선호하지 않거든요. 제 타투는 흔히 말하는 여성적인 느낌이 강해요. 제가 아름답게 느껴서 새긴 게 가장 크지만 고정적인 남성, 여성 이미지를 뒤틀고 싶다는 욕심도 조금 섞여있어요. 물론 제가 건장한 남성이랑은 거리가 멀지만. (웃음)
자기만 괜찮으면 전혀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요? 지금은 대학생이니까 이렇게 안락한 상황에서 대화하고, 표현하고, 존중할 수 있지만 현실은 마냥 포용적이지만은 않잖아요. 당장 몇 년 만 지나도 사회에서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고.
암담하네… 요즘 문화예술 계열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데, 특성상 다양성을 추구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대한 분위기인 것 같더라고요. 다른 곳 가서 깨지는 것보다 수용될 수 있는 곳만을 찾으려 할 것 같아요. 같은 대상이라도 어디에 속해있는지에 따라 정말 다른 경험을 하니까. 외면하고 회피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고 다치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어쩌면 자기를 지키는 좋은 방향인 것 같아요. 저도 엄청난 대책이 있진 않아요. 지금으로써는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저의 경우는 좋아하는 사람, 친구, 가족이 될 수 있겠네요.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면 사회에서 와장창 깨져도 좋지 않을까. 물론 저도 어느 정도 생각을 비우고 외면하고 차단하면서 버텨야겠죠.
듣고 보니 타투를 향한 불편한 시선들 때문에 피곤한 적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다행히 남의 시선을 정말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오히려 관심받는 걸 좋아해서 내가 누구인지 인식해주는 게 좋아요. 예전에 수영을 열심히 다녔는데 어르신들이 타투로 절 기억하고 관심을 많이 가지셨어요. 이거 지워지는 건지, 왜 했는지 계속 물어보시곤 했죠. 아, 언제는 이런 거 왜 했냐면서 탈의실에서 궁둥짝을 맞기도 했어요. (웃음) 그런 일만 아니라면 웬만한 시선은 불편하지 않아요.
나체로 궁둥짝이라니…. 웃기게 들리지만 분명 당황스러운 경험이었겠어요. 아무래도 타투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날 것 같아요.
살짝 웃긴 게 선입견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고정관념이 있는 편이거든요. 고정관념은 다양한 것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용이하게 판단하기 위한 틀이죠. 타투 많은 사람은 충동적이거나 저항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거란 선입견이 사실 맞잖아요. 저 타투 많고 충동적이고 저항적이니까!
그렇죠. 부정할 수만은 없죠.
저도 고정관념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편에 갖고 사는 것뿐이에요. 재밌는 건 사실 고정관념이 빗나간 경우를 만난 적이 별로 없어요. 예를 들어 아저씨들은 보통 어린 여성들한테 무례할 것이다. 대부분 맞잖아요.
보통이 아니라 거의 항상….
아닌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거고, 아니어도 크게 나쁠 이유가 있나. 고정관념은 대부분 맞지만 아니면 반가운 서프라이즈인 느낌이에요.
슬프다. 너무 타협해 본 사람의 말 같아서.
개인적으로 고정관념 자체보단 자본주의적인 논리로 차별과 배제가 이뤄지는 게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사고를 치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모든 아이들이 항상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잖아요. 노키즈존은 소수의 케이스 때문에 발생할 비용을 지불하기 싫으니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고 가정하고 배제하는 거죠. 그러니까 특정한 부류에 대한 선입견 자체보다 그것을 바탕으로 배제하겠다는 가치 판단과 행동들이 문제인 게 아닌가.
자본주의의 폭력성도, 고정관념에 대한 의견도 너무 공감해요. 정말로 고정관념에 들어맞는다고 해서 그 자체가 병리적인 건 아니네요. 그냥 하나의 특성인 거니까. 그걸 바라보는 시선과 행동이 오히려 더 중요하게 이야기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타투가 언제 하고 싶어지는지 알고 싶어요.
이건 확실해요. 삶이 공허할 때요. 대부분의 타투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힘든 시기에 몰아서 했어요. 한번 시작하니까 그 이후로 힘들 때 종종 생각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도안 열심히 찾아보고.
저는 요즘도 매일 도안 확인해요.
그럴 때가 있죠. 그래도 요즘엔 너무 행복해서 타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타투 도안을 안 찾아본 지도 거의 일 년이 되어가네요.
그거 진짜 쉽지 않은데… 그 변화가 너무 좋네요. 왜 힘들 때 타투 생각이 날까. 항상 궁금해요.
그러니까요. 저도 확실히 알진 못하지만,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타투를 하고 나면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보고 또 보고 맨날 봐요. 몰두할 게 필요한 것 같기도 해요. 공허하니까. 지금처럼 삶이 충만하면 타투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거랑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요.
저도 인생이 헛헛하고 힘들면 생각나요. 저는 언제 공허해지는지 생각해보면 갈피를 못 잡을 때예요. 이 정도 나이 됐으니까 진로 생각하고, 스펙 쌓고, 이거 하고, 저거 안 하면 답이 없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낄 때. 그러니까 끌려다니기 급급해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고 지금을 살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없을 때죠. 그럴 때 타투는 지금을 감각하는 수단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현재적인 행위잖아요. 직관적으로 지금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 새기는 거니까.
맞아. 지금 내가 좋아하는 걸 가시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
사실 이런 얘기가 염려되기도 해요. 타투를 힘들고 공허해서 한다고 하면 왠지 어둡고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것으로만 연결 지을 것 같아서요. 솔직히 현대 사회에 정신병 없는 사람이 더 드물고 이것도 하나의 살아가는 방식일 뿐인데. 오히려 아름다운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거든요.
누구든 언제나 한번은 공허하거나 힘들 텐데 말이죠. 사실 그럴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하면서 건강하게 힘듦을 이겨내지는 않잖아요.
맞아. 보통은 술 왕창 먹고.
행복할 때 술을 먹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행복할 때 타투를 하는 사람도 있는 거고요.
일단 저희는 아닌 것 같지만. (웃음) 문득 순간의 감정 때문에 새긴 타투가 영원히 남는 게 염려된 적 없는지 궁금해졌어요.
저는 원체 충동적이고 남 신경 안 쓰는 사람이니까요. 후회하지 않을 거란 믿음보단 내가 저지른 것에 대한 후회도 감내하자고 생각해요. 지금 타투를 하고 나중에 후회하면 그걸 감당하는 것도 내 몫인 것이죠. 수업 안 가서 F 받고 재수강하는 느낌.
사실 산다는 게 과거에 싼 똥을 그때그때 치워가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해요. 어쩔 수 없이 선택에 대한 후회는 남는 거고 감당은 그 사람이 하도록 내버려 두면 되고. 다른 사람이 왈가불가할 게 없죠.
걱정해 줄 거면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져서 진짜 못 하게 말려주던가. (웃음)
그 정도는 해야죠. 사실 ‘지금이야 좋지, 계속 영향을 미칠 건데 어쩔 거니’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긴 해요. 근데 저희가 타투를 공허할 때 한다고 했잖아요.
그럴 때면 ‘인생 얼마나 살 줄 알고?’ 이런 생각하잖아요!
제가 딱 그 말을 하려고 했어요. 지금 공허해서 못 살겠으면 내일이 없고 내년이 없는데. 왜 당연하게 80살, 90살까지 산다고 생각하지?
언제까지 살 줄 알고 그러지?
우리가 너무 많은 걸 미래로 유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이 없으면 미래는 없는데. 물론 어느 정도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건 맞지만 어떤 걸 미룰 것인지, 지금 해볼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면밀히 생각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타투는 그 순간을 버틴 노력과 용기의 흔적 정도가 아닐까.
타투 할 때는 그냥 이 두 가지를 가장 고민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튜닝의 끝은 순정이니까 타투 이전의 몸이 보고 싶지 않을까 하는 걱정, 둘째는 일본 온천을 가고 싶진 않은지.
진짜 너무 맞다.
현실적으로 그거 말고 못 할 게 뭐가 있어!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면서 타투와 저항이라는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아요. 저희 모두 나름의 저항을 해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기를 막론하고 저항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는 열심히 사는 삶에 저항하고 싶어요. 요즘 모두가 너무 열심히 살잖아요. 저는 대충 살고 싶거든요. 잠도 8, 9시간 자면서 건강하고 싶고, 좋은 직장 가려고 취준 열심히 하라는데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어요. 사실 고등학생 때도 스카이 관심 없었거든요. 그렇게 보면 어떻게 이 학교를 왔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나치게 열심히 살고 싶지 않고 행복하게만 살고 싶어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하려면 돈이 필요하지만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너무 공감했어요. 저도 욕망하는 것에 저항하고 싶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욕심, 욕망이 정말 없어요.
너무 부럽다. 전 욕심은 있는데 지나치게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냥 예쁘고 귀여운 거만 가질 수 있으면 좋은 거죠. 근데 보통 그러면 비싸고 그러면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면 열심히 살아야 하고….
지금은 욕망 사회잖아요. 어느 정도 성취하면 다음 스텝이 있고, 이거 했으니까 이젠 이것도 해보고 가져보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맞아요. 다음 스텝이 있는 게 싫어요. 저는 넓고 얕게 좋아하거든요. 레벨업 안 하고 그냥 탐색만 하고 싶어.
저희는 그냥 편안한 데 머무르고 싶을 뿐이잖아요. 동물의 숲처럼. 저는 제가 욕심내지 않은 것을 가졌을 때 크게 행복하지도 않고 오히려 불편할 때가 많아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자기만의 바운더리를 지키거나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있나요?
특별한 루틴은 없어요. 다만 뭔가를 좋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뭐든 하나는 좋아하려고 해요. 그 대상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 바뀌고요.
중요한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도 능력이고 기술이라는 말에 너무 공감하거든요. 요즘은 뭐를 좋아하고 있을까요.
최근엔 롤을 굉장히 즐겨 하고 있어요. 명상이나 산책, 요가가 나올 것 같은데 의외죠.
네… 롤은 전쟁터잖아요. 사실 스트레스를 받고 오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다행히 스트레스 안 받더라고요.
채팅창만 안 보고 자기 게임을 즐길 수만 있으면 사실 그게 명상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어떤 형식이든 잡념을 지우고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면 다요.
맞아요. 전 그래서 수영도 정말 좋아했어요. 물 안에 들어가면 소리도 잘 안 들리고 숨 쉬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거든요.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정신이 안 좋고 힘들면 항상 수영을 선택해요.
저희 엄마도 최근 수영을 시작했는데 너무 좋다하더라고요. 언젠가 수영을 해봐야겠네요. 오늘 많은 얘기 나눴는데 혹시 추가적으로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제가 관심받는 것도 좋아하고 웬만하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얘기했는데, 시각적인 것은 그렇지만 내면을 드러내는 것엔 정말 용기가 없어요. 오히려 말하지 않고 숨기고 싶죠. 저의 무지가 드러나는 게 무섭다고 해야 할까요. 내가 뭘 좋아하고, 난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선언하는 게 정말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 용기가 부족하고 그래서 타투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아요. 숨기고 싶은 부분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럼 오늘의 대화가 굉장히 상극이었겠네요. 우려에 비해 저는 충분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느꼈거든요.
아닐걸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은 여전히 담아두었을 거예요. 요즘은 글을 쓰거나 여러 곳에서 저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어서 나아지고 있지만요. 어렵지만 용기를 내고 있어요. 극복하기보단 익숙해지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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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마친 후 보기보다 여린 우리의 삶이 걱정된다고 하자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든 살아질걸요. 너무 높은 곳만 보니까 힘든 게 아닐까요.’ 다양한 삶의 군상을 목격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시인 이훤은 “섬려하고 부드러운 영혼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들키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감춘 속내를 다 알 순 없지만 유려한 영혼의 흔적을 나는 분명히 목격했다. 그런 그녀의 무지가 가닿는 대상이 늘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이의 무지, 그로 인한 침묵이 겸손한 이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철저히 그녀에 대한 고정관념에 입각한다. 그 사실이 기쁘다. 그이에게 배운 대로라면 고정관념은 이해의 멈춤이 아니라 시작이므로.
아무리 애써도 우리는 결국 서로의 삶에 무지할 수밖에 없다. 무지는 오해의 시작이지만, 뒤엉키는 오해 속에서 새롭게 해석될 여지 역시 함께 생겨난다. 오해 없인 이해도 피어나지 않으므로 이해와 몰이해 사이에 우리가 존재할 것이다. 이날의 대화가 어떻게 그 사이를 오고 갔는지 나는 다 알 수 없다. 그저 어떤 형태로든 삶을 이어 나가려 애쓰는 당신을 상상하며 이 대담을 그렸다. 무엇이 좋고 싫다는,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명제를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도 함께 상상하며. 용기와 관용이 가득한 그곳을. 더 많은 리듬이 솟아나는 그 어딘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