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 금요일의 일기
오늘은 체육 대회가 있는 날이다. 그런데 날씨가 영 심상치 않다. 오후 세 시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그래서 안심했는데. 예보를 다시 확인해 보니 오후 다섯 시부터 비그림이 표시되어 있다. 시간이 늦춰져서 다행이긴 한데, 하늘빛은 의심스럽기만 하다. 제발 계획대로 행사가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바라본다. 오늘은 주차 금지의 날이다. 차가 꼭 필요한 사람들 외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했다. 나의 일터의 주차 공간은 매우 협소하다. 그래서 운동장 한쪽에 차를 대기도 한다. 어쨌든 오늘은 운전 금지의 날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7시에는 출발해야 버스 안이 좀 여유로울 텐데 말이다. 집을 나선 시각은 7시 15분. 예상대로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시의 끝자락, 곧 그 말은 버스의 종점이 가깝다는 이야기, 해서 대부분의 경우는 좌석에 앉을 수 있다. 버스 좌석은 여유로웠고, 나는 뒷문 뒷좌석에 자리잡았다. 뒷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버스 안 공기를 바꿔줄 테니까. 그 공기를 내가 제일 먼저 마실 테니까. 대중교통 이용 시 간혹 숨이 막혀서 중간에 내려야만 하는 내가 터득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이 또한 인기척을 되도록 느끼지 않기 위한 일종의 생존형 행위다. 유튜브 앱을 열어 오프라인 저장 동영상을 클릭했다. 최근에 저장해 놓은 영상이 로이킴 노래였으니 알아서 나오겠지 생각하며 대충 맨 위의 영상을 눌렀다. 어라? 노래가 나오는데 한참 걸리나 보다. 만 5년이 되어가는 아이라 그런지 앱 알림도 카톡 메시지도 좀 늦게 뜬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노래까지 천천히 재생되려나 보다. 앗, 예상치 못한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뒤이어 낯선 듯하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보안필름을 붙여 놓은 데다가 햇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화면 밝기를 가장 환하게 해 본다.
"4학년 2학기 9단원 4차시, 3년 전 영상"
‘오프라인 동영상’을 누른다는 것이 ‘내 동영상’을 눌렀나 보다. 2020년 12월 16일에 만들어진 영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구촌이 난리가 났던 시기였다. 아마 만 4년이 되어야 4년 전 영상으로 표시되나 보다. 부끄러운 영상이지만 지울 수는 없었다. 100개가 넘는 영상이 아직 잘 저장되어 있다. 각 영상은 5분에서 11분 정도의 분량이다. 눈을 감고 4년 전으로 기억을 돌려본다.
2020년 2월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었다. 한두 명 확진자가 나왔을 때만 해도 그러다가 말겠지 싶었다. 2월 중순, 당시 2학년 아이들과의 종업식 즈음, 아이들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코로나 확진자 누군지 아니까 괜찮은 거죠?"
"일단 조심해야지! 그 사람들에게 전염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 입이 오두방정이었을까? 그 후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었다. 3월 중순까지는 학교에 출근해서 새로 만난 아이들이 집에 잘 있는지, 건강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 전화하고, 알림장 앱으로 소식 보내고, 인사하고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분위기가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자 본격적으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아 우왕좌왕했었다. 마이크도 없었고, 카메라도 없었다. 모든 건 다 내 휴대전화에 의지해야 했다. 내 휴대전화는 만 6년이 다 되어가는 아이폰6였다. 용량도 부족했고, 어느 순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고 나서는 자꾸 에러가 나고 있었다. 웬만하면 좀 더 버티려고 했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바로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급한 대로 PPT에 그날 공부할 주요 내용만 입력해서 사진 파일로 저장했다. 나름 가독성 있게 만든다고 글씨체나 색깔, 그림 파일 등을 이리저리 바꾸어도 보았다. 그리고 그 사진 파일들을 알림장 앱에 올렸다. 교과서를 찍고, 필요한 부분 잘라내서 붙이고, 텍스트 입력하고. 한 차시 수업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참 많이 걸렸다. 하지만 플랫폼에 올려진 결과물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몇 년 전부터 "거꾸로 수업" (수업 전에 미리 영상을 통해 차시별 내용을 익히고, 학교에 와서는 탐구나 심화 과정을 위주로 수업 진행)이 유행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이 난리부르스를 예측이라도 했던 걸까? 각종 플랫폼들은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 플랫폼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거꾸로 수업을 실제 수업에 적용하고 있던 교사들이었을 거다. 커뮤니티에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그 정보에 따라 움직이며 조금씩 수업 자료가 보완되었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과목을 나눴고, 국어나 수학처럼 차시가 많은 과목은 2인 1조로 움직였다. 함께 협의했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물어가며 배워가며 찾아가며 채워 나갔다. 그리고 4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나 메인은 PPT였다. PPT로 자료를 만들었고, 슬라이드쇼를 실행하며 화면을 녹화했다. 집에서 가져온 헤드셋을 이용해 내 목소리를 덧붙였다. 어찌나 버벅댔던지, 녹음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우리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이렇게 열심히 자료를 만들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결과물도 역시 초라할 뿐이었다.
우리들을 울리는 기사 제목이 보였다.
'온라인 수업 질 떨어져...'
'교사들, 왜 학원 강사만큼 못하나?'
'유튜버들 영상보다도 못해'
대충 그런 제목이었다. 세상에, 이미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었던 사람들과 비교하다니. 영상 찍는 사람도 있고, 편집자도 따로 있는 대형 유튜버들과 우리를 비교하다니 기가 찼다. 영상 만들기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수정은 한없이 반복됐다. 영상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PPT화면에 우리 학교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표시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들" 문구를 매 화면마다 실었다. 누가 뭐라 하든 '우린 너희들을 위해 이렇게 자료를 만들고 있단다'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알아주기를 바랐다.
6월 중순쯤부터 아이들이 홀짝으로 나뉘어 등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홀수 번호 아이들이 등교하면 짝수 번호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등교 수업도 준비해야 했고, 온라인 수업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행복하게 맞이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는 일이 그렇게 감사한 일인지 몰랐었다. 그 당시 아이들 역시 그랬다. 실물로 처음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을 보고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밥을 먹을 때만 마스크를 벗는 아이들의 얼굴을, 게다가 홀짝 돌아가며 일주일에 두 번 등교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알림장으로 학부모님께 부탁을 했다. 마스크 벗은 모습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당시 센스 있게 마스크를 쓴 모습과 마스크를 벗은 모습의 사진 두 장을 나란히 보내 주신 학부모님들이 계셔서 진짜 눈물 나게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이 병행되다가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방학 후에는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달라진 건 없었다.
2학기가 시작되었고,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은 계속 오락가락하면서 이어졌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온라인 수업에 적응해 갔다. 아침에 조회 형식으로 구글미트를 열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로만 수업을 받는 아이도 있었다. 데스크톱은 있지만 카메라가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는 아이들도 서너 명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게시판의 덧글을 통해서 안전하게 있음을, 수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선생님이,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구글미트 요이준비땅을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게시판에 덧글을 달고 있었다. 구글미트 주소창을 올리면 아이들은 순식간에 접속했다. 그 와중에도 편하게 늦잠을 자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구글미트 조회가 끝나면 그 아이들에게 전화를 해서 아픈 건 아닌지 확인을 해야 했다. 혹시라도 통화가 안 되면 부모님께 연락을 시도했고 그도 안 되면 여기저기 문자를 보내면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온라인 수업에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꽤 있었다. 개인적으로 질문이 들어올 때도 있었고, 수업 자료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질문이 쏟아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충 수업 자료를 모두 확인하는 12시쯤이 되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후, 아이들이 올린 학습 결과물을 확인했고, 다음 시간 수업을 준비했다. 9월 말쯤에는 유튜브에도 제법 영상이 많이 올라와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예체능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홀수, 짝수 번호로 번갈아가며 등교를 하다가 평가 시간에는 한 번에 모이기도 했는데, 그때 아이들이 서로를 확인하며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한 친구들과는 부둥켜 안기도 했는데, 그 마음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방역 수칙 지키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등교 마지막 날, 어떤 여학생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마스크 한 번만 벗어 주세요!"
"방역 수칙을 어기면 안 되는데!"
"선생님 얼굴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요!"
세상에, 생각해 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었다. 서로 유일하게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이었지만 나는 당시 급식을 먹지 않았다. 혹시나 내가 감염됐을 경우,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담임 때문에...'라는 말을 들을 자신이 없었다. 구글미트로 보는 얼굴은 실제로 보는 모습과 꽤 달랐으니까. 그리고 나는 웬만하면 구글미트 시간에도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당시 또 한쪽에서는 교사 얼굴평을 하는 기사가 도배되어 있었으니까. 나는 멀찌감치서 마스크를 벗었고, 아이들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확인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2월의 종업식 날, 마지막 구글미트에서 아이들이 내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겠다고 나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교실 정리를 해야겠다고 핑계를 대니 아이들은 괜찮다며 구글미트를 열어놓고 정리를 하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2020학년도와 작별을 했다. 그리고 2021년 3월, 나는 지금의 학교로 옮겨 왔다.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한 영상이지만, 내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어서 혹시라도 오늘처럼 실수로 누르게 되면 닭살이 돋지만, 나는 그 영상을 결코 지울 수 없었다. 제목을 보면서, 영상이 만들어진 날짜를 확인하면서 그때의 상황을 잠시 떠올려 보곤 한다. 그리고 그때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그려 본다.
그 아이들은 지금 중학교 2학년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지만 그해는 예외였다. 마지막에 나의 휴대전화 번호를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번호를 공개했고, 한동안은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특히 나에게 마스크를 벗어보라고 말했던 여학생은 올해에도 소식을 전해 주었다. 4월까지 연락이 왔었구나. 작년엔 휴직 상태였기 때문에 올해 복직하면 학교로 놀러 오라고 했는데, 아마 공부하느라 바쁜 것 같다.
갑자기 그때 아이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오늘은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다. 하늘은 잔뜩 흐리다. 체육대회가 처음부터 불가능할지, 하다가 중간에 플랜 B로 변경되어 운영될지 알 수 없다. 윗분들과 체육부장님은 지금 애가 타고 있겠지.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학교로 가고 있다. 교실 문을 열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우리 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오겠지. 명랑 쾌활하게 나에게 다가오겠지. 4년 전을 잊지 말자. 절대로 잊지 말자.